루트에너지 윤태환 대표 / 사진=브루스리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 전문가가 제시한 해결책은 A, B, C 안으로 총 세 가지. A안은 혁신적이면서도 이상적인 반면, C안은 보수적이면서 현실적이다. 해결책을 제시한 이는 혁신적인 A안을 선호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정부나 기업이나 열 중 여덟은 C안을 선택한다. “기존에 있던 대로 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특히, 공무원은 순환보직이어서 뒷사람에게 욕을 먹기도 싫고 승진에도 영향이 없으니 그런 것 같습니다. 대기업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소극적입니다.” 시민 주도로 에너지 체제 개편을 꿈꾸는 이, 루트에너지 윤태환 대표가 경험담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루트에너지와 에너지히어로 탄생의 서막이다.

 

 

에너지 전문가가 된 청년


대학 졸업 후 2008년부터 3년 정도 환경 관련 컨설팅 회사에서 일했던 윤 대표는 세상을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를 꿈꾸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과는 달리 기존의 하향식(Top-down) 의사결정 체계에서는 원하는 변화가 어려웠다. 컨설팅해준 고객들이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은 C안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례 조사과정에서 발견한 덴마크라는 나라는 달랐다. “덴마크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게 70~80년대부터 시민들의 주도로 성공적인 변화를 만들어낸 나라였어요. 어떻게 가능했는지, 어떻게 변화를 만들어 냈는지 알고 싶었지요.” 윤 대표는 덴마크에 있는 유엔환경계획 기후에너지 분야 연구소에 일자리를 얻으며 덴마크로 옮겨갔다. 연구소가 덴마크 공대 안에 있었던 덕에 일과 학업을 능률적으로 병행할 수 있었다.


그러던 2013년 어느 날 한국에서 밀양 송전탑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급부상했다. 당시 덴마크 공대에서 초고압 송전망을 전공하던 윤 대표에게 녹색당이 기술 자문을 요청했다. 그는 3가지 기술적인 대안을 만들어 제공했다. “밀양 송전탑의 기술적인 대안들은 이미 다 있습니다. 사례들도 충분하고요. 송전탑을 꼭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제시한 대안이 사실은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선진국의 경우 당연히 국가가 부담하도록 정책이 만들어져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요.” 대안을 제시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때 그는 덴마크로 처음 왔을 때의 문제의식, 하향식 의사결정 거버넌스 체계에서는 변화가 힘든 한국의 상황을 떠올렸다.


2013년 10월 윤 대표는 큰 목표를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정치적인 방법도 아니요, 시민운동도 아닌 비즈니스를 통해 한국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에너지히어로의 탄생


지금은 회사 이름으로 인식된 ‘루트에너지’는 사실 우리나라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덴마크에서 만들어 온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일반 시민들의 투자를 통해 대규모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소를 짓은 것이 골자였다. 하지만 장벽은 높았다. 한국의 제도적인 뒷받침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처음 세웠던 사업을 보류하게 되면서, 윤 대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에너지 절감을 유도하는 ‘에너지히어로’로 눈을 돌렸다. “본래 에너지히어로는 루트에너지를 준비하며 만든 이벤트식 프로젝트로, 어려운 곳에 태양광 발전소를 지어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루트에너지 모델이 보류되면서 에너지히어로 모델에 루트에너지 수익모델을 응용하여 자체적으로 수익이 나는 사업을 시작하게 됐지요.”

 

 

시민들의 절전 참여와 함께 에너지히어로는 산골마을 회관에 태양광 발전을 기부했다 / 사진=루트에너지


에너지히어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절전, 에너지 빈곤층 지원 그리고 기업의 에너지 절감과 사회 기여의 3박자가 모두 맞아 떨어진 사업이다. 가령 시민들이 에너지 절약에 동참하고 인증샷을 올리면 와트포인트(WP)라고 하는 절전 포인트가 적립되는데, 목표량이 달성되면 에너지가 필요한 이들에게 태양광 발전이 기부된다. 첫 번째 프로젝트의 수혜자는 서울시 은평구 산골마을의 마을회관으로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생활 가전의 에너지를 공급하게 된다.


설치비용은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주)코리아세븐으로부터 조달했다. 편의점 매장에서 행동 변화만으로 할 수 있는 에너지 절감법을 컨설팅해주었는데, 평균 20퍼센트나 전기 소비가 줄었다. 많이 줄어든 곳은 40퍼센트까지 된다. 필요 없는 간판 조명은 끈다든지, 냉장실에 상품을 진열할 때 3센티미터만 안쪽으로 놓는 등 매우 간단한 실천을 했을 뿐이다. “매장에서 평균적으로 한 달 100만 원정도 전기요금으로 지출하고 있었으니 매장당 20만 원 정도 준 셈이지요. 전기 요금은 회사와 점주가 반반씩 내는데, 회사가 내는 비용만 적립했는데도 1000만 원이 넘는 돈이 생겼어요.” 이는 100개 매장에서 6개월 동안 절감한 성과로 전국 76000개 매장으로 확대하면 더 많은 기금이 마련될 예정이다.

 

 

시민 주도의 에너지 자립을 위해


루트에너지의 최종 목표는 2070년까지 우리나라가 시민 주도로 100퍼센트 에너지 자립을 하는 것이다. “100퍼센트 에너지 자립을 한다는 건 단순하게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것뿐만 아니라 평소 생활 속에서 에너지를 절감하는 것도 20퍼센트 정도 차지합니다.” 현재 윤태환 대표가 만들어 가고 있는 에너지히어로 모델이 바로 이 20퍼센트를 충족하기 위한 것들이다.


그는 향후 에너지히어로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변화도 기대하고 있다. 현재 1.0버전인 앱을 개선해 회사가 보유한 노하우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노하우도 공유하게끔 만들 예정이다. 또한, 검색을 통해 원하는 분야의 절전 방법을 찾을 수 있게끔 개발하고 있다. 올해 11월말 공개가 목표다.

100퍼센트 에너지 자립 목표에서 에너지 생산 부분인 80퍼센트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현재 클린에너지 분야의 에어비엔비(airbnb, 남는 방을 빌려주고 대가를 받는 플랫폼)를 생각하고 있어요. 텅텅 빈 옥상이 많은데, 안 쓰는 그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지요. 태양광 사업을 하고 싶은데 집에 빛이 잘 들어오지 않거나, 세입자여서 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어요. 서울 인구의 92퍼센트가 이렇게 못 하는 분들이에요. 이런 분들이 양지바른 옥상을 장기적으로 빌려 태양광 발전을 설치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시민들이 주도하는 에너지 자립이 그를 통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