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첫 주말 서울 종로구 누하동 환경센터 앞마당. 파란 가을 하늘, 선선한 바람 그리고 따스한 볕 아래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였다. 오는 손님도 손님을 맞이하는 이도 모두 입가엔 햇살 같은 눈부신 미소를 머금었다. 환경센터와 마당을 보고는 ‘여기가 뭐하는 데야?’ 표정 역력했던 사람들도 이내 평온을 찾고 흡사 학창시절 소풍 같은 풍경에 흡수된다.


오늘의 주인공은 장슬아 씨 부부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자신의 발로 환경연합을 찾아 회원이 된 장슬아 씨는 이날 회화나무 아래에서 세상 가장 아름다운 약속을 통해 한 쌍의 부부로 거듭났다.


‘진짜가 나타났다!’


어떻게 그녀는 회화나무 아래에서 백년가약을 맺게 된 것일까? 그녀의 결혼 이야기가 궁금했다. 며칠 뒤 장슬아 씨를 다시 회화나무 아래에서 만났다. 신혼여행에 가 있을 줄 알았더니 안 갔단다. “매일 가는 여행이 신혼여행이죠. 뭐.”하고 시큰둥하게 말했지만, 그녀는 신혼여행 대신 월말에 시부모님과 넷이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외국 여행을 많이 못 다녀보신 시부모님을 생각해 같이 가자고 졸랐단다.


이렇게 마음 씀씀이 따뜻한 그녀와 환경연합의 인연은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슬아 씨는 신문을 보며 환경을 걱정하고 또 환경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후 스무 살 대학생이 되면서 경제적 자립을 하게 됐고,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환경연합 회원이 됐다. “독립심이 강해요. 부모님이 그렇게 키우셨어요. 대학 갈 때부터 집을 나가라고 하셨는데, 결국 스물여섯 즈음에 나왔어요.” 스무 살의 경제적 자립이 쉽지는 않았을 터, 중간중간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았을 때는 회비를 거른 적도 있다고 오히려 그녀는 겸연쩍어한다.


13년간 환경연합과 함께 많은 활동을 했지만, 대학생 시절 동물지킴이 하호 활동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탐조 활동을 많이 했어요. ‘서울 하늘에도 새가 날고 있어요’란 책자도 내고. 그때는 1~2주에 한 번씩 탐조를 하며 공원별로 탐조 가능한 새를 정리했어요. 시민들이 근처 공원에서도 새를 관찰할 수 있게끔 지도를 작성했지요.”


생활 속 실천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녀조차 자기 자신을 “너무 피곤하게 살아서 문제”라고 말할 정도다. 먼저 비닐봉지를 최대한 안 쓰는 건 일반적인 일이다. “시장갈 때 어쩔 수 없이 생기면 그걸 모아 다시 장을 봐요. 신랑도 되게 착한 게 남자들은 그런 거 시키면 되게 싫어하잖아요? 창피해 하고. 저는 장바구니에 봉지를 몇 개씩 넣어줘요. 장을 볼 때 이 장바구니 쓰고 봉지 꼭 필요하면 이걸로 쓰라고.”


휴지를 거의 쓰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놀라움은 극에 달한다.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안 쓴단다. “웬만하면 걸레를 쓰거나 손수건을 쓰거나. 아예 안 쓸 순 없겠지만 거의 쓸 일이 없어요. 화장실에서도 안 쓰고. 진짜 쓸 일이 없는데… 대체 언제 쓰지?” 그녀는 오히려 이렇게 되물어 상대방을 당황케 하곤 한다. 틀린 말도 없고 또 솔선수범 실천까지 하니 그녀를 만나본 이라면 누구나 속으로 외칠 수밖에 없다. ‘진짜가 나타났다!’고.


특별한 신부의 특별한 결혼식


본론으로 돌아가 이런 그녀가 결혼을 했다. 그리고 결혼의 주인공은 모름지기 신부가 아니겠는가. 그래서일까? 10월 초 치러진 결혼식은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그녀의 손과 고집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전통혼례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신부들이 새하얀 드레스를 꿈꾸는 것과는 상반된다. “드레스는 너무 낯간지럽고. 별로 입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 결혼식은 의미 있게 하고 싶었어요. 부모님 결혼식도 어머니 고향 집 마당에서 했어요. 지금 결혼식은 너무 간편하잖아요? 다 같이 참여하는 결혼식을 만들고 싶었어요.”


신부 곁에서 신부를 도와주는 전통혼례의 수모 역할도 친한 언니들이 해줬다. 그 가운데 한 명이 환경연합을 통해 알게 된 홍콩에서 온 마리아 씨다. 마리아 씨는 전날 밤 자정에 왔다가 다음날 새벽 비행기로 갔는데, 바쁜 와중에도 온전히 슬아 씨의 결혼식을 위해 짬을 냈다. “만난 지 6년 정도 됐어요. 당시 언니가 홍콩에서 WWF(세계자연보호기금)에 다녔었는데 한국으로 출장 올 일이 있었고, 환경연합의 요청에 저와 함께 탐조 활동을 했어요. 그게 인연이 됐죠.” 지금은 가족과도 모두 친해져 슬아 씨 가족을 ‘한국에 있는 가족’이라 부를 정도다.


하지만 그녀는 사실 결혼식 자체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간소하게 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지금은 모든 게 너무 편해요. 음식 버리는 것도 너무 편하고. 돈 주면 다 되고. 그래서 돈으로 하는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실 애초에 결혼식을 아예 안 하려고 했어요. 신랑이랑 관계도 참 좋고. 그래도 좋은 사람 만나서 살겠다는 거 보여드리고 싶어서 작게 준비를 하게 됐는데 커졌어요.” 환경센터와 마당이 일반 결혼식장처럼 편의 시설이 잘되어 있는 것도 아닌지라 정말 뜻을 같이하고 싶은, 인생의 소중한 사람들에게만 알렸고 친구도 딱 5명만 불렀다. 하지만 양가 부모님의 손님들은 의지대로 되지 않아 150명 정도 예상했던 하객은 400명을 넘어 환경센터 마당에 다 설 수 없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평소 신조대로 그녀는 결혼식에서 일회용품을 쓰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물컵이나 술잔도 일회용 대신 모두 하나당 비용을 지불하고 대여를 했다. 결혼식에서 버려지는 장식을 최소화하기 위해 화환 등 꽃 대신 화분으로 장식한 것은 물론이다. 청첩장도 황토색의 재생 종이를 썼다. “남편도 그렇고 시어머님도 그렇고 무슨 청첩장 색깔이 이러냐며 싫어하셨어요. 그런데 앞면에 회화나무 그림을 넣었는데 오히려 잘 어울려서 좋았어요.”


그녀는 하객들이 많이 불편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만큼 정성으로 손님을 맞았다며 뿌듯해 한다. “부모님이 찾아오기 힘들다고 현수막이라도 달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셨는데, 2~3시간 쓰고 버리자니 쓰레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대신 동생 친구들이 곳곳에 배치돼 안내를 도와줬어요. 그리고 술은 제가 활동하는 식초모임이 있는데, 그분들이 이화주, 석탄주, 홍주 등 귀한 전통주를 제 결혼식을 위해 직접 담아 주셨어요. 잔치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술인데, 기업에서 영혼 없이 만드는 몸에 해로운 것들을 대접해 드리긴 싫었거든요.” 비록 장소는 좁고 편의는 부족했지만, 자신의 결혼식을 찾은 손님에 대한 마음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그녀다.


나만 알기 아까운 환경연합


장슬아 회원의 결혼식이 특별한 이유는 결혼식 자체에만 있는 건 아니다. 그녀가 결혼식 장소로 환경센터 마당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더욱 특별하다. “환경연합이 너무 작으면 어떤 일을 하고 싶어도 한계에 많이 부딪히잖아요? 그래서 환경연합을 많이 홍보하고 싶어서 이곳을 택하게 됐어요. 나만 알고 있기 너무 아깝거든요.”


환경연합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환경연합이 사회적인 이슈에 대응할 때 열심히 뛰는 건 맞지만, 사실 실천에 대한 활동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그런 강좌를 개설한다든지. 저처럼 일부 고집 있는 사람이 아니면 사람들이 얼마나 실천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거든요. 시민들이 직접 할 수 있는 것들을 연합이 많이 알려줬으면 해요.”


인터뷰가 끝나고 그녀는 환경연합 전국사무처를 방문했다. 결혼식에서 친구나 지인들에게 받은 돈을 환경연합에 기부하기 위해서다. 슬아 씨는 친구나 지인들에게 단순한 현금 대신 직접 고른 선물 아니면 기부금을 달라고 했다며 귀띔한다. “너무 바쁘고 또 제가 무얼 좋아하는지 몰라서 돈으로 주시는 분들도 이해가 가지만, 통과의례가 어느새인가 다 돈으로 너무 쉽게 해결되잖아요? 선물을 받으면 누가 해준 건지 기억이 남지만, 돈을 받으면 나중에 누가 왔고 이런 것보단 돈만 남아요. 제가 살림이 넉넉했으면 아예 안 받았을 텐데 그렇게는 못 했고, 부모님이 받은 건 부모님이 갖고 저희가 받은 건 기부하려고요.”


상식적인 사람이 드문 현시대에 알고 느끼는 대로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녀를 바라보는 내내 그 아름다움에 넋 나가고 또 한편으론 부끄러웠다. 이런 그녀의 모습이 널리 알려져 많은 이들에게 감동 주기를. 그래서 더 많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탄생하기를. 결혼식은 끝났지만, 그날 그녀가 회화나무 아래 남겨둔 아름다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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