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여름이 한창인 8월, 도로의 아스팔트는 땡볕에 녹아들 기세고 인간이 촘촘하게 들어찬 콘크리트 상자는 밤낮으로 후덥지근하다. 선풍기나 에어컨을 돌려보지만 한때뿐, 달아오른 도심의 열기 속에서 불쾌지수는 한없이 솟구친다. 일이나 학업 능률도 떨어지고 별것 아닌 일에 짜증을 내는 등 모두가 지치고 힘드니, 아! 정말이지 여름휴가와 방학은 괜스레 생긴 게 아님이 자명하다.

 

재충전의 시간, 올해는 어디로 향할까? 푸른 바다에 뛰어들어 물놀이하는 해수욕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누가 부정하랴, 바다는 역시나 그리고 언제나 좋다! 하지만 매년 되풀이되는 상투적인 선택에 무언가 아쉬운 마음이 든다면, 이번 여름은 냉장고만큼 시원하지만 전기는 필요 없는, 맛과 역사와 자연의 경이가 서려 있는 장소 3곳을 들러 보는 건 어떨까?

 

 

감 와인 익어가는 100년 터널

청도 감 와인 저장터널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담 만찬주이자 2010년 G20 재무장관회의 건배주였으며 2008년과 2013년 대통령 취임식 건배주였던 술은 흔히 공식 선상이나 주요한 행사에서 사용하는 포도주가 아니었다. 수차례 국가 행사를 빛내준 술은 청도의 특산물인 반시 감으로 빚어낸, 특유의 은은한 금빛이 아름다운 감 와인이었다.

 

감 와인의 재료인 반시(盤枾)는 흔히 상주나 영동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길쭉한 모양의 곶감용 둥시와 달리 생긴 모양이 납작한 접시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청도반시는 육질이 연하고 당도가 높으며 비타민, 아미노산 등의 성분이 많고 비타민C가 딸기나 감귤에 비해 월등히 많은 것이 특징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생산되는 씨 없는 감이다.

 

이런 감으로 만든 와인 자체도 생소하지만, 이 와인을 발효, 숙성시키는 장소는 더욱 특이하다. 철도 터널을 개조해 저장고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와인터널이라 불리는 이곳은 대한제국 시기인 1904년에 완공된 옛 남성현 터널을 개조해 만들었다. 옛 남성현 터널은 1905년 경부선 철도로 개통되었지만, 산 중턱에 있는 터라 경사가 급하고 운행 거리가 멀어 1937년 평탄하고 직선인 지금의 남성현 상행선 터널에 자리를 내주며 사용이 중지되었다. 이후 용도 없이 버려져 있던 폐터널은 10여 년 전 와인 제조사에서 정비하며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길이 1킬로미터 남짓, 폭 4.5미터, 높이 5.3미터의 와인터널은 콘크리트로 뒤덮인 오늘날의 터널과는 달리 천정은 붉은 벽돌로 쌓고 벽면은 화강암 등 자연석을 쌓아 만들었다. 연중 내부 온도가 13~15도씨로 서늘하고 습도는 70퍼센트를 유지하기 때문에 와인을 발효하고 숙성하기에 알맞다고 한다. 현재 15만 병이 이 저장고에서 숙성되고 있으며, 숙성이 끝나는 데는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감 와인은 화이트 와인이면서도 떫은맛을 내는 탄닌이 적포도주보다 풍부한 것이 특징으로, 향은 산뜻하고 은은하며 맛은 부드러워 인기를 얻고 있다. 터널 내부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시음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으니 이용해볼만 하다.

 

무료 입장 / 경북 청도군 화양읍 송금길 100

문의 054-371-1904

 

 

한여름에 피어나는 얼음의 신비

밀양 얼음골





ⓒ밀양시


 

지금이야 바깥 온도가 아무리 높은들 냉동고 문만 열면 얼음이 쏟아지는 시대지만,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인간은 겨울에 채취한 얼음을 여름까지 붙잡아두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며, 더위 먹지 않고 건강하게 여름을 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모색하곤 했다. 그런 이들에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곡, 특히 무척이나 차가운 바람이 나오거나 심지어 한여름에 얼음이 어는 모습은 자연의 경이 그 자체였을 것이다.

 

여름에도 늘 서늘한 바람이 불어 나오는 구멍이나 바위틈을 지칭해서 풍혈지대라 부른다.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풍혈지대는 기후변화에 취약한 민감종이 서식할 수 있어 오늘날에도 중요하게 여긴다. 국내 총 50개가 넘는 풍혈 가운데 25곳 가량의 주요 풍혈이 있으며 산림청과 국립수목원은 일대를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천황산 북쪽 계곡 중턱에 위치한 밀양 얼음골은 이런 풍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 잘 정비된 계곡 길을 따라 결빙지라 쓰인 표지까지 오르면, 바위틈에서 냉동실 문을 열 때나 나옴직한 냉기가 끊이질 않고 쏟아진다. 이 바람의 평균 기온이 0.2도씨라 하니 얼마나 차가운지 짐작이 갈 것이다. 안경 낀 사람이라면 바위틈에서 나오는 공기와 외부 공기와의 온도차로 김이 서리기 십상이다. 이곳에 얼음이 어는 시기는 4월부터 8월까지로, 더위가 심하면 심할수록 얼음이 많이 얼어 ‘밀양의 신비’라고까지 불린다. 동의보감의 저자이자 명의로 추앙받는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시신을 통해 해부학적 지식을 얻은 장소가 바로 밀양 얼음골이라는 설도 전해지는데, 모두 얼음골의 낮은 온도로 인해 생긴 이야기다.

 

얼음골은 35도씨를 넘나드는 무더위 속에서도 어떻게 얼음을 만들어내는 걸까? 과학 사회인 현재까지도 이 원리는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다. 지난 1997년 한일 공동조사가 이루어진 이후 여러 가지 설이 제기되었으며 현재도 조사는 계속되고 있다. 다만, 겨울이 추울수록 여름철 얼음이 견고하게 어는 점 등을 고려하면, 겨우내 형성된 무겁고 차가운 공기가 바위 아래로 내려오고, 더 차가운 공기를 만난 얼음이 기체로 승화하면서 기온이 떨어지는데, 이 과정을 반복하며 여름에 더 많은 얼음을 만들어 낸다는 가설이 신빙성 있어 보인다.

 

그런데 아쉽게도 얼음이 언제나 얼어 있는 것은 아니다. 얼음이 얼지 않는 해도 종종 있으며 평소보다 이른 때인 6월에 얼음이 녹은 후 더 이상 얼지 않는 경우도있다고 한다. 얼음골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 고온 현상으로 차가운 공기 축적이 부족해 얼음이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얼음골 주위 환경이 훼손되면서 주변 기온이 상승한 탓이라는 다른 전문가들의 주장도 있다. 어느 쪽이든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로, 후손들은 이런 자연의 경이를 경험하지 못할까 한편 씁쓸하다.

 

비록 얼음을 보지 못했더라도 바위틈에서 나오는 냉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또한, 일대를 흐르는 계곡물이 매우 차니 발 담가보길 권한다. 한여름에도 5도씨 정도로 차가운 계곡 물은 10초 이상 발을 담그면 아릴 정도다.

 

입장료 1000원 / 경남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산95-1번지

(천연기념물 제224호)

 

 

탄광에 깃든 대한민국 현대사

태백체험공원



 


ⓒ한국정책방송원

 

평균 도로 표고 704미터, 주민 거주 해발고도 900미터, 지역 평균 해발 965미터로 국내 최고지대에 위치한 고원의 도시 태백은 과거 검은 진주라 불렸던 석탄으로 유명하다. 한때는 전국 석탄 생산량의 30퍼센트를 생산하면서, 국가 산업 발달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태백의 석탄은 과거 급속도로 성장하는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하지만 탄광에 깃든 노동자들의 삶은 고됐다. 일각에서는 막장 드라마, 막장 토론 등에서 사용하는 ‘막장’의 어원을 탄광에서 찾곤 한다. 본디 갱도의 막다른 곳을 뜻하는 막장은 오늘날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정도로 갈 데까지 간 상황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이면에는 석탄 광산 노동자들에 대한 비하가 숨어 있다. 갱도의 가장 깊은 곳, 그래서 가장 위험한 곳에서 푼돈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던 사람들을 ‘막장인생’이라 지칭했다는 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막장은 오히려 인생의 새로운 발판이자 한 줄기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시커먼 탄가루로 폐를 채워가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가족, 그리고 자식에게는 자신의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갱도를 가득 채웠으리라 짐작한다. 그들을 비하했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는 사람들은 과연 누군가에게 뜨거웠던 적이 있었을까?

 

하지만 국가의 동력이었던 석탄이 석유와 가스로 대체되고, 핵발전의 기이한 구조로 사회가 전기중독에 빠지면서 석탄은 사양산업의 길을 걸었다. 석탄의 몰락과 함께 태백도 급격한 인구감소를 겪으며 침체되기 시작했다. 한때 50여 개나 되던 광산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태백체험공원은 폐광된 광산 가운데 하나인 함태수갱 일대에 만들어졌다. 수갱은 갱도가 수직으로 뚫려 있다는 뜻이다. 과거 사용하던 갱도시설과 사무실로 사용하던 건물을 그대로 살려 시설을 만들었다. 석탄 채굴이 한창이던 때의 모습을 재현한 사무실과 탈의실, 샤워실 등 관련 시설을 통해 관람객들은 당시 광산 근로자들의 하루를 유추해 볼 수 있다.

 

태백체험공원의 백미는 실제 갱도 내부로 들어가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반팔 옷을 입고 가면 직원이 긴 옷을 입고 오길 권한다. 갱도 안으로 들어가면(입갱) 서늘한 기온이 감돌다가 이내 추위가 엄습한다. 안내원의 말에 따르면 갱도 내부는 10도씨의 온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석탄을 실어 나르던 탄차의 레일을 따라 내부로 향하면 철골 구조로 된 승강 시설이 보이는데, 이곳이 수직갱도의 시작이며 관람객이 갈 수 있는 곳은 아쉽게도 여기까지다. 관람객이 거의 없는 시간에는 폐탄광 특유의 으스스한 분위기가 절정인데, 갱도 내부의 추위에 더해 오금이 저릴지도 모르니 주의하자.

 

입장료 1000원 / 강원 태백시 소도동 3번지

문의 033-553-7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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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eok 2017.03.24 10:26 신고  주소  수정/삭제  답글

    사진 구경 잘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