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수야 팥빙수야, 사랑해 사랑해. 빙수야 팥빙수야, 녹지마 녹지마.” 2001년 발매된 가수 윤종신의 9집 히트곡 『팥빙수』의 한 구절이다. 당시 청춘을 보낸, 현재 30·40대 즈음의 독자들은 분명 멜로디까지 붙여 따라 불렀으리라.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 노래가 나온 시기는 사시사철 빙수를 판매하는 전문 업체가 생겨나 빙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때였다.


이후 한동안 잠잠했다. 흥행하던 사계절 빙수 가게들은 하나둘 사라지며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 오늘 다시, 빙수의 시대, 팥빙수의 계절이 왔다. 새로운 이름, 조금 다른 콘셉트를 표방하는 빙수 전문점들이 몇 년 사이 우후죽순 생겼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등 커피에 내줬던 디저트 시장이 다시 빙수로 돌아오고 있다. ‘빙수의 귀환’이다.

 

 

원형이 남아있는 경주 석빙고 ⓒJunho Jung

 

 

 

여름, 빙고가 열리면


빙수에 대한 대중의 사랑이 뜨겁다. 유명한 빙수집을 찾으면 대기는 기본일 정도다. 어느새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은 빙수, 궁금해진다. 우리는 언제부터 빙수를 먹은 걸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빙수의 역사는 얼음의 역사와 그 궤도를 같이한다.


조선 시대, 나라의 서울인 한양에는 얼음을 관리하는 관청이자 창고인 빙고(氷庫)가 있었다. 현재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에 있었던 서빙고와 서울 성동구 옥수동의 동빙고 그리고 창덕궁 안 내빙고가 있었다. 총 12만4974정의 얼음을 저장할 수 있었던 서빙고가 가장 커 동빙고의 12배, 내빙고의 3배 규모였다고 한다. 얼음은 12월 한강에서 채취해 저장했다가 이듬해 춘분에 처음 꺼냈다.


빙고별로 얼음의 용도가 달랐다. 동빙고의 얼음은 국가 제사용으로, 내빙고의 얼음은 궁중전용으로 사용했다. 서빙고의 경우 궁중에서도 사용했지만, 문무백관, 환자 등에게 나누어줄 얼음도 보관했는데, 서빙고의 얼음을 받은 관원들이 얼음을 잘게 부수어 화채를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얼음 저장은 신라 시대 지증왕 때부터 했다고 하나 빙수의 원형에 가까운 음식에 대한 기록은 이때가 처음이다.


지금처럼 팥과 잘게 부순 얼음의 조합인 팥빙수를 먹게 된 건 최근의 일로서, 일제강점기 일본의 ‘얼음팥’이란 음식이 전해진 것이 지금의 팥빙수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 1910년대 즈음하여 서울 시내에는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빙수 가게가 많았다고 한다. 얼음을 구하기 힘든 시대였으니 빙수는 단연 고급 음식이었을 것이다.

 

 

국산 팥에서 수입 팥으로


빙수가 널리 퍼진 건 1970년대 이후다. 냉장고 보급이 시작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처음 성행한 건 갈아낸 얼음에 현란한 빛깔의 색소 시럽만 뿌린 빙수였다. 길거리 노점상에서 많이 판매됐는데, 위생 관리가 안 되는 대표적인 불량식품이었다. 이후 제과점을 중심으로 팥과 젤리 등의 고명을 얹은 빙수가 판매되며 ‘팥빙수’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유행하는 빙수는 이른바 눈꽃 빙수다. 작년 여름 윤종신이 『팥빙수』 이후 제2의 빙수 노래를 발표한 사실을 아는가? 모 제과업체와의 공동 작업으로 선보인 노래 『눈송이 빙수』는 “그 우윳빛 눈송이 온몸으로 퍼져 나를 축복해”라든가 “부드러운 너의 눈빛과 부드러운 눈송이 빙수”라는 가사처럼, 부드러운 빙질의 우유 빙수를 소재로 하고 있다. 기존 빙수가 덩어리 얼음을 갈아 만들었다면, 요즘 유행하는 빙수는 전용 기계에서 우유를 얼려 이를 곱게 긁어내 눈꽃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빙수다. 얼음이 맛을 입자 고명도 파격적이 되어 딸기빙수, 망고빙수 등 팥이 아예 들어가지 않는 빙수도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아직 빙수 대부분에서 팥은 빠지지 않는다. 팥빙수라는 음식의 문화적 연속성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깊은 단맛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팥은 여러 가지 면에서 효능도 뛰어난데,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이 들어 다이어트 식품으로 애용되고 있다. 또한, 팥은 비타민B1을 가장 많이 함유한 곡류로, 흰 쌀밥을 주로 먹는 국민들이 부족한 비타민B1을 보충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빙수의 인기는 치솟은 반면 팥 자급률은 크게 떨어졌다. 지난 1990년 60퍼센트를 넘던 팥 자급률은 2000년 31.8퍼센트로, 2005년에는 19.7퍼센트로 곤두박질쳤다. 이후 2010년과 2012년에도 각각 13.2퍼센트, 13.4퍼센트에 머물렀을 뿐이었다. 생산량도 급감해 1만1000톤이 생산되던 2000년과 비교해 2005년에는 6000톤이 생산되었으며 2010년에는 3000톤이 생산되었다. 그나마 2012년 5000톤의 팥이 생산되며 생산량이 다소 증가하는 추세지만, 빙수 등 팥 음식의 인기와 더불어 실제 자급률 증가는 미미한 것으로 분석된다. 생산 증가가 소비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이유로 국산 팥을 고집하는 빙수집들은 좋은 팥을 구하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Yeonseong Joe

 

 

백문(百聞)이 불여일미(不如一味)


책상에 엉덩이 붙이고 있어 봐야 덥기만 하고 감흥도 없다. 과감하게 문 박차고 세간에 맛있기로 소문난 팥빙수 가게 세 곳을 직접 방문해 빙수의 맛을 비교해 보았다.


먼저 방문한 곳은 서울 강남구에 있는 ‘밀탑’ 본점이다. 3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밀탑의 대표 메뉴는 ‘우유빙수’로, 옛날 방식 그대로 얼음을 갈아 빙질이 다소 거칠다. 갈아낸 얼음에 연유의 단맛이 은은하게 감기는 우유 시럽을 붓는다. 시중의 제품들보다 빙수 자체는 덜 달지만, 올린 팥은 아주 달며 푹 삶아 부드럽다. 8000원이란 가격에 비해 양이 적어 1인 1그릇씩은 먹어야 기별이 가는 게 흠이다.


‘옥루몽’은 팥을 가마솥으로 조리한다는 특색으로 유명한 프랜차이즈 업체로 전국의 많은 도시에서 맛볼 수 있다. 대표 메뉴 ‘전통 팥빙수’의 빙질은 밀탑이나 이후 방문할 동빙고에 비해 훨씬 부드러운 눈꽃 빙수로, 앞서 언급한 우유를 얼리는 방식으로 만들었으리라 추정된다. 고운 얼음에서는 물맛이 아닌 우유맛이 은은하게 풍긴다. 팥은 밀탑보다 조금 덜 달고 알갱이가 비교적 살아 있어 꽤 씹히는 편이다. 가격은 8000원. 놋쇠그릇에 담겨 나와 복고적이다.


조선 시대 얼음 저장고 가운데 하나의 이름을 딴 ‘동빙고’는 서울시 용산구에 있다. 주말에 방문했더니 무려 40분을 기다려야 먹을 수 있었다. 6500원인 대표 메뉴 ‘팥빙수’는 밀탑처럼 옛날 원리 그대로의 빙삭기를 사용해 빙질은 역시나 거칠다. 우유와 연유를 섞어서 끓인 시럽을 얼음 위에 부어주며, 밀탑이나 옥루몽에 비해 팥 알갱이가 모양 그대로 가장 살아 있고 씹는 맛도 크다. 팥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는 느낌이 드는데, 기호에 따라 이런 팥이 싫을 수도 좋을 수도 있다. 게다가 요즘 판매하는 우유를 얼려 만든 팥빙수는 입안에 텁텁한 느낌이 남기 십상인데, 오로지 물로 만들어진 얼음이 이 텁텁함을 잡아 시중에 판매하는 여느 빙수보다 식후 개운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비교적 요즘 아이들이 좋아할 맛은 아니었다.

 

 

귀한 재료에 정성 깃들어


손가락으로 꼽힌다는, 기자가 직접 다녀온 앞선 맛집들의 공통점은 국산 팥만을 고집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난달 방송된 tvN 프로그램 『수요미식회』에서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팥의 특성상 국산 팥과 수입 팥의 맛 차이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국산 팥을 사용한 가게들이 더욱 정성 들여 팥을 고르고 음식을 만들기에 맛 또한 뛰어나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자급률 문제를 맛으로만 풀 수는 없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이유로 맛도 국산을 고집해도 된다는 의미다. 정성 담뿍 담긴 팥빙수라는데, 그 누가 마다하리. 더위가 괴롭힌다면 그저 한 그릇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