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오감 중 인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건 바로 시각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일찍이 색은 인간을 지배해 왔다. 그 영향력은 때론 상징으로 또 때론 의미로 성립되고 발현되며 우리와 함께했다. 일례로 피와 같이 붉은색은 정렬과 사랑의 뜻을 품게 됐고, 흰색은 빛으로 본 모든 색상의 총화로 순결과 순수를 내포해 왔다. 빛이 없거나 모든 빛이 잠식당한 어둠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장엄함을 상징하는 검은색으로 드러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간이 가진 본원적인 미적 갈증의 해소에 색이 큰 영역을 차지했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최근 건물 옥상을 흰색으로 칠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이들이 주목한 건 색이 가진 상징도 의미도 아니요, 색을 통한 통속적인 미의 완성도 아닌 색에 숨어있는 또 다른 비밀, 이른바 ‘반사율’이었다.

서울시의 옥탑방 쿨루프 캠페인 ⓒ서울시

 
 
주거 약자를 위한 흰색 지붕
 
반사율은 색을 심미적인 기능이 아닌 물리적인 기능으로 풀고자 하는 이들이 선택하는 용어다. 극과 극을 비교해 보자면, 검은색의 반사율은 3퍼센트인 반면 흰색은 무려 93퍼센트다. 이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에너지를 흡수하지 않고 다시 그만큼 반사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하필 옥상일까?
 
미국에서는 이미 10년 전 옥상을 흰색으로 칠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쿨루프(Cool Roof)’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이 사업은 반사율이 높은 색으로 옥상을 칠함으로써 뜨거운 여름 도심의 열섬 현상을 완화하고 냉방에 사용되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한 정책이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옥상을 흰색으로 칠하는 것만으로 지붕 표면 온도는 20~30도, 실내 온도는 3~10도가량을 내려 냉방 비용이 최대 40퍼센트까지 절감된단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13개 주에서 지붕 칠에 드는 비용을 융자해주고 있고, 14개 주에서는 전력회사에서 보조금을 주는 등 쿨루프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뉴욕의 경우 신축 건물은 지붕 면적의 75퍼센트 이상에 대해 흰색 옥상을 의무화하도록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와 댈러스 시 등도 마찬가지의 정책을 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작년부터 서울시가 이런 쿨루프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옥탑방 쿨루프 캠페인’을 통해 옥탑방 옥상에 무료로 흰색 차열 페인트를 칠해줄 예정이다. 9월 8일까지 신청을 받는데, 옥탑방이라면 집이든 사무실든 모두 신청할 수 있다. 뜨거운 태양열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열악한 주거환경인 옥탑방의 주거 약자들에 우선으로 주목한 것이다.
 
 
지구온난화도 막아
 
쿨루프와 비슷한 사업으로 옥상녹화도 들 수 있겠다. 더운 여름과 달리 추운 겨울의 경우 태양에너지를 축적하는 게 이득이므로, 사계절 태양빛을 반사하는 흰색 옥상보다 녹화된 옥상이 더 괜찮을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쿨루프 사업은 옥상녹화 대비 비용이 4분의 1 정도로 적게 들어 비용 대비 효과가 탁월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쿨 루프가 가장 효과적인 온실가스 저감 전략”이라 발언한 바 있다.
 
게다가 쿨루프는 옥상녹화처럼 에너지 사용 저감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을 넘어 더 직접적으로 지구온난화 방지에 이바지한다. 반사량 증가를 통해 직접 지구가 흡수하는 태양에너지 자체를 줄이기 때문이다.
 
인간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농도의 증가로 지구가 온난화되면서 극지방이나 고지대의 눈과 얼음이 녹는데, 이렇게 하얗던 눈과 얼음이 녹고 육지와 수면이 드러나면 지구의 반사율(알베도)이 줄어들어 더 많은 온난화가 일어나는 악순환이 생긴다. 이를 전문가들은 ‘얼음-알베도 피드백(ice-albedo feedback)’이라 부르는데, 도시의 옥상을 흰색으로 칠하면 이렇게 녹아내린 눈과 얼음을 대신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우리집 하얀 옥상이 지구를 직접적으로 식히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당신의 지붕은?
 
옥상은 도시 표면적의 25퍼센트로 40퍼센트인 도로에 이어 두 번째로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눈과 빙하가 녹고 있는 지금, 도심의 옥상에 인공 빙하를 세워보는 건 어떨까? 방법은 간단하고 비용은 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