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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잡설

20100612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by 막둥씨 2010. 6. 12.

아침에 빗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누워 이것저것 생각하다 문득 나의 의식적 시점을 1년 뒤의 나로 옮겨 지금 현재를 바라본다. 마성(魔性)의 날이 아니라 마성의 해가 되겠고, 한 쪽 눈을 가리고 한 쪽 귀를 막는 문제도 분명 새로운 시각에서 혹은 지금의 나를 뛰어 넘어 느껴질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 그 인연이 계속될지조차 의문이다.

뜻 밖의 너무나도 고마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편지. 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신뢰의 문제. 신뢰 없는 인간관계는 사상누각이 될 뿐... 적어도 나의 인간관계론에서는 그러하다. 현재를 살라는 아포리즘은 아포리즘일 뿐 현실 그 자체의 진리는 아니다.

오늘 남자로서 최악이 되었다. 미움을 사게 될지도 모르겠다. 혹은 내가 너무 큰 짐을 지운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이 흘러 결과적으로 주위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든 스스로 행복을 발견할수 있었으면 한다. 더불어 나의 행복 또한.

새벽 두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세 잔의 커피에 잠은 오지 아니하는데 사랑도 아직 오지 아니한다.

사진 // 월드컵 경기가 있던 날의 대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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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먼저 행복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 보면 그 정의는 다음과 같다.


행복02(幸福)[행ː-]〔행복만[행ː봉-]〕
「명사」
「1」복된 좋은 운수. ≒행우02(幸祐)「1」.
「2」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행우02「2」ㆍ휴복(休福).

이 중 두 번째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행복의 정의라 할 수 있겠다. 즉 행복은 충분한 만족과 기쁨이 선행되어 충족되면 발생하는 것이다. 만족과 기쁨은 욕망의 현실화 정도에서 발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욕망의 실현이 단순한 행운으로 가능했는지 아니면 노력이였는 지는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욕망이라는 것은 지극히 의식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는 -더 나아가 그것을 위해 내가 해야 할 행동도- 다분히 의식의 영역인 것이다. 따라서 행복은 지극히 의식적 영역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떻해야 할까? 방법 가운데 하나는 욕망을 낮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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