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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기고

잘 들어오지도 않는 집을 왜 삽니까? :: 집을 묻다

by 막둥씨 2013. 12. 29.

한국에는 어딜 가나 아파트가 있다 ⓒJoongi Kim

일전에 고향 친구를 만났다. 아파트를 샀단다. 배가 아프다. 그런데 이야기하다 보니 가격이 장난이 아닌 게 ‘억’ 소리가 몇 번이나 난다. 자세히 보니 녀석의 표정도 밝지만은 않다. 열심히 일해서 대출금을 갚아야 한단다. 다큐영화 하나가 오버랩 된다. 2013년 10월 EBS국제다큐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작은 집에 산다는 것』. 영화 속 청년은 큰 집을 샀던 부모님이 대출금을 갚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는 것을 보며 자랐다. 그는 묻는다. “잘 들어오지도 않는 집을 왜 삽니까?


불행이 되어버린 집

우리는 늘 더 넓은 집을 꿈꿔왔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2년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우리나라의 가구당 주거면적은 78.1제곱미터로 6년 전인 2006년 67.3제곱미터보다 10.8제곱미터(3.2평)가량 넓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 9제곱미터(2.7평)에 불과했던 1인당 주거면적은 지난해 31.7제곱미터(9.5평)까지 늘어났다. 가족 수는 줄어들고 집은 계속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집은 투자 대상이기도 하다. 덕분에 무리해서 집을 사게 되거나 필요 이상의 집을 소유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집값 등락에 따라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다.

사실 큰 집도 좋고 투자 대상으로서의 집도 좋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우리는 때로 너무 많은 희생을 해야 한다. 잘 살기 위한 집인데 정작 잘 살지 못하는 주객전도가 벌어지기 쉽다. 한국은행의 201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2012년 현재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고 있는 가구는 전체 가구의 57.1퍼센트였다. 절반이 넘는 가구가 대출을 받고 있는 셈인데, 대출의 주요 용도를 보면 거주주택마련이 34.3퍼센트로 가장 많았고, 생활자금 25.4퍼센트, 전월세보증금 12.6퍼센트, 사업자금이 12.2퍼센트 순이었다. 대출을 받는 사람들의 절반이 집 때문에 돈을 빌리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난해 4월 열린 도시정책학회 세미나에서 전국적으로 7만2000가구가 상환위험가구(하우스푸어)라고 추산했다. 잠재적 위험 계층인 상환부담가구까지 포함하면 32만8000가구에 달한다. 김 교수는 이런 하우스푸어 문제가 주택 가격 하락 때문이 아니라 대출 시점에서 무리했던 대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2013년 12월 MBC 프로그램 『100분 토론』에서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은 정부가 떨어지는 집값을 올리기 위해 국민들에게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을 종용하고 있다며 지적했다. 좋은 집을 보유하고 있지만 삶은 더욱 궁핍해지고 있다.

큰 집을 유지하기 위하여 들여야 하는 노력과 비용도 너무 크다. 교외에 주말용 별장을 산 어느 가족이 있었다. 크고 호화로운 별장이었다. 처음에는 만족했다. 그런데 가족은 주말에 별장을 들를 때마다 청소를 비롯해 별장 관리에만 온 주말을 할애해야 했다. 집에 사는 건지 집을 모시고 사는 건지 분간이 안 갔다. 결국, 그 가족은 큰 별장을 팔고 더 작은 집을 장만했다. 처음 샀던 큰 집도 분명 좋은 집이었으나 이 가족에게 맞는 집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에게 맞는 집이란? ⓒNicolás Boullosa


무엇을 원하는가?

이런 현실에 집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에게 맞는 집, 내가 원하는 집에 대한 고민이다. 8년 전쯤 건축가 이일훈 씨에게 한 고객이 찾아왔다. 자신의 집을 짓고 싶다고 했다. 이일훈 씨는 물었다.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나요?” 그의 질문은 우리가 흔히 ‘집’ 하면 상상하는 ‘방이 몇 개가 필요한지’, ‘거실은 얼마나 커야 하는지’ 따위가 아니었다. 건축주는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질문에 처음으로 집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사람들의 바람은 각자 다양할 수 있다. ‘적은 돈으로 도심에 살고 싶다’, ‘집에 딸린 마당을 갖고 싶다’, ‘층간소음 스트레스 없이 살고 싶다’ 등은 당장 쉽게 떠오르는 것들이다. 지난 2012년 『SBS스페셜』 ‘내 생애 처음 지은 집’ 편에 출연한 이규엽 씨 부부는 경기도 고양시에 단독주택 ‘비상하우스’를 지었다. 네모난 상자 같은 일반적인 집이 아니라 이름과 어울리는 비상의 상승조형미를 지니고 있는 이 씨 부부만의 집이다. 바닥면적은 불과 58제곱미터(17평), 연면적은 107제곱미터(32평)다. 그리 큰 집은 아닐지 모르나 1층 거실과 주방 사이 칸막이벽을 모두 없애 탁 트인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그는 아파트에 살던 때 가장 꿈꿔왔던 공간인 영화관을 집안에 만들었다. 마당이 있어 반려동물도 키울 수 있게 됐다. 시공비는 2억5000만 원가량. 땅값과 설계비 등은 2억7000만 원이 들어 총 5억2000만 원이 들었다. 당시 서울시 아파트매매가격 평균이 5억 원대, 수도권은 3억5000만 원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선택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 씨는 “옷을 입어도 나에게 맞는 옷을 입을 때가 가장 편하고 좋다. 이 집 자체가 우리에게 꼭 맞는 집이다.”라고 말하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경기도 양평에 부킹하우스(Booking House)를 지은 김준산 씨 가족의 집은 바닥면적 41제곱미터(12.5평), 연면적 82제곱미터(25평)로 아담하다. 무려 일곱 식구가 사는 집이지만 좁다는 생각은 누구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집 이름이 부킹하우스인 이유는 1층부터 다락까지 연결된 커다란 책장 때문이다. 책과 매일 씨름하는 교사라는 집주인의 직업에 맞게 집을 지었다. 1000권이 넘는 책이 드디어 자리를 찾았다. 땅값부터 세금까지 다 합쳐 2억3000만 원 정도가 들었다. 그는 직접 살아보니 더 작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파트 보다 불편한 점도 많고 손이 가는 일도 많다. 그러나 이렇게 본인의 집을 지은 사람들은 그건 당연한 부분이라 말한다. 그리고 아파트에서 벗어나며 잃는 것 보다 얻는 것이 더 크다고 강조한다. 건축가 이일훈 씨가 인터뷰에서 말했다. “집을 짓고 뭐하나? 우리가 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릇 먼저 만들어 놓고 무엇을 담을까? 거기 뭐 신통한 게 담기겠는가?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그릇을 만들면 삶의 방식과 건축이 아주 잘 조응하는 조화된 공간, 그런 삶이 만들어진다.”

트레일러 위에 지어진 10제곱미터 내외의 스몰하우스 ⓒTammy Strobel


10제곱미터의 실험

새로운 집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고민은 대부분 크기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방향으로 자연스레 흘러간다. 크기를 포기하면 본인이 원하는 다른 요소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여유와 재원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아니, 그 이전에 왜 자신들이 큰 집을 고집해왔는지 나중에는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대부분 얕거나 맹목적인 목적으로 큰 집을 고집해왔던 것이다.

다소 극단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1999년 미국의 제이 셰퍼(Jay Shafer) 씨는 10제곱미터가 채 안 되는 스몰하우스(Small House, 영어권에서는 Tiny House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를 지었다. 주차장에서 자동차 한 대를 위해 선이 그어진 면적보다 작은 크기였다. 셰퍼 씨는 많은 물건과 넓은 공간에 신경 쓰는 게 귀찮았다고 말한다. 그가 설계한 집은 미국 건축법이 정하는 집의 최소크기에 못 미쳤다. 그래서 그는 트레일러 위에 집을 지었다. 재료비는 1000만 원 정도밖에 들지 않았다. 그의 작은 집은 한 잡지로부터 상을 받으며 순식간에 미국 전역으로 알려졌다. 스몰하우스 운동의 시작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집이 많은 미국에서 스몰하우스 운동이 촉발되고 또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가장 큰 집에 살기 위해 가장 많은 것을 잃었다.

집이 작아지니 많은 것들이 줄어들었다. 먼저 관리비가 비약적으로 줄었다. 난방은 소형 가스스토브 하나로 충분했다. 삼면으로 낸 큰 창문으로 햇빛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집이 작으니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해 전기를 사용하는 사람도 많다. 화장실은 물을 사용하지 않고 배설물을 퇴비로 만드는 자연발효방식. 물론 이런 것들은 집주인의 선택에 따른 것으로, 일반 변기를 설치하거나 계통 전기를 끌어다 써도 무방하다. 좁은 면적이지만 생활을 가능하게 만드는 비법은 복층구조에 있다. 중간에 다락과 같은 로프트(loft)를 설치해 침실을 마련했다. 그 외에도 수납장이나 주방, 가스레인지와 싱크대, 작은 냉장고까지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추고 있다.

혹여나 집이 너무 작아 활동이 줄고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건 아닐까? 다카무라 토모야의 저서 『작은 집을 권하다』에 소개된 거구의 남자 존슨 씨는 오히려 살이 빠졌다고 말한다. 스몰하우스에 살기 전 150킬로그램이었던 그는 이후 50킬로그램이나 감량했다. 자동차를 팔고 자전거를 이용하는 등 ‘인생을 통째로 다이어트’한 덕이다. 이렇게 작은 집에 산다는 것은 단지 집 자체가 작다는 의미가 아니다. 삶 자체가 변하는 것이다.

당신에게 집은 어떤 존재인가? ⓒTomas Quinones



고민하라!

그럼에도 나는 작은 집을 권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파트를 벗어나라는 이야기도 할 수 없다. 아파트가 주는 편리함을 사랑하는 사람도 많고, 큰 집에 사는 것 자체가 목적인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나는 이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 도시 사람들이 모두 자기만의 주택에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어느 쪽으로도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자신만의 정답을 찾기 위해 부단히 고민하라고는 이야기하고 싶다.

‘어떤 집에 사십니까?’라는 질문에 ‘강남 30평에 산다’며 지역과 면적을 알려주거나 특정 아파트 브랜드만 언급하면 현대의 사람들은 더 이상 본인의 집에 대해 말할 것이 없다고 어느 건축가가 지적했다. 일리가 있기에 잔인한 질문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집에 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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