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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기고

서울 한복판 죽음의 땅, 어찌할 것인가?

by 막둥씨 2013. 10. 6.

2016년 반환을 앞둔 서울 용산 미군기지는 1998년 기지 내 초등학교 인근 기름유출 이래 오염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밝혀진 것만 해도 십수 건에 달한다. 하지만 주한미군이 환경부에 통보한 것은 불과 단 한 건으로, 2002년 5월 발생한 캠프 코이너 기름 유출 사건뿐이다. 미군은 토양오염으로 90년대부터 지하수를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알리지 않아 담 너머 인근 주민들이 최근까지도 지하수를 마셨다는 사실은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이렇게 15년 가까이나 이어져 온 용산 미군기지 오염문제가 아직도 제자리걸음인 이유는 무엇일까?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이 낳은 갖가지 문제부터 우리 정부의 곤혹스런 대처까지, 우리 땅 곳곳을 죽음으로 내모는 문제점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하나, 내부 오염 조사조차 불가

서울시가 확인한 용산 미군기지 토양 오염 면적은 녹사평역 주변과 캠프 킴 일대 등 최소 1만2235제곱미터(약 3700평)다. 하지만 이는 기지 내부 조사권이 없는 서울시가 기지 담을 돌며 조사한 결과로, 실제 토양오염 면적은 훨씬 넓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심각한데도 행정당국은 발만 구르고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군이 기지 내부 오염조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미군의 동의 없이는 기지 내부 조사가 불가능하다.

약속된 정화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역시 확인이 불가능하다. 2001년 녹사평역 인근 기름유출 사고의 경우 기지 내부는 미군이 자체적으로 정화하기로 했으나, 정화를 완료했다는 미군의 통보와는 달리 여전히 기름이 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 사기로 드러난 위해성 평가

2009년 정부와 주한미군은 공동환경평가절차서(JEAP)를 합의·채택했다. 주요 내용 중 하나는 SOFA에 규정된 미군 측의 오염 측정 기준인 ‘인간의 건강에 대한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KISE)’ 해당 여부 판단을 보강하기 위한 ‘위해성 평가’ 방식의 도입이었다. 그러나 위해성 평가와 실제 오염 정도의 간극은 매우 커 보인다. 2009년 JEAP에 따라 반환된 첫 사례인 부산 하야리아 기지는 반환 이후인 2011년 ‘토양정밀조사’가 이루어졌다. 부산시 계획에 따라 부산시민공원으로 개발되기 위해서는 토양환경보전법에 따른 토지 정화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하야리아 기지의 정화비용은 애초 2009년 위해성 평가에서 책정된 3억 원이 아닌 142억 원으로 드러났다. 무려 50여 배의 차이였다.

결국, 정부가 채택한 위해성 평가는 미군에게 환경오염에 대한 면책권을 부여하는 조항일 뿐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용산 미군기지를 포함해 앞으로 반환될 모든 미군기지에 이런 위해성 평가가 포함된 JEAP를 적용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지며 논란이 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셋, 정화비용? 배 째라는 미군

2003년 이후 80개의 미군기지가 반환이 결정되었고, 48곳이 반환 완료되었다. 이 중 37곳에서 오염이 확인되었으나 미군이 정화 비용을 부담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미군이 용산기지 내부의 오염 조사를 허용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혹여나 정화비용을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기는 것을 철저히 피하기 위해서다.

또한, 위해성 평가 결과 오염이 확인됐더라도 미군 측이 KISE를 초래하는 오염 즉,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으로 해석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 오염정화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오염에 대해 주관적인 해석이 가능하니 책임질 일은 없는 셈이다. 결정권자도 주한미군 사령관이다. 반환 후 추가적인 오염이 발견되어도 역시 미군은 책임지지 않는다. 이미 반환 완료된 기지의 소유권은 한국에 있으니, 오염 정화도 한국의 몫이라는 주장이다. 오염자부담원칙은 온데간데없다.


넷, 개발 위해 반환 서두르는 정부

정부는 미군기지 평택 이전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 용산 미군기지를 개발해야 한다고 공언했다. 용산공원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을 보면 용적률 800퍼센트까지 허용하며 개발을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성급하게 반환이 추진될 우려가 크다.

앞서 언급한 부산 하야리아 기지는 2009년 위해성 평가에서 오염이 드러났음에도, 미군의 정화 없이 반환됐다. 당시 외교부는 “기지 반환이 장기간 지연돼 시급한 지역 개발 및 주민 불편 해소를 위해 조속한 반환이 필요하다는 부산시의 요청” 등을 근거로 오염이 확인된 하야리아 기지를 미군의 정화조치 없이 반환시켰다. 미군은 정화의지가 없고 정부는 당장 개발이 시급하니 오염된 기지를 그대로 반환시켜버린 것이다.

국토부는 이미 용산 미군기지 정화비용으로 1030억 원을 책정해놓고 있다. 하지만 3억 원이 143억 원이 된 부산 하야리아의 경우를 보면, 실제 정화비용이 얼마로 불어날지는 미지수다. 그리고 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환경주권 되찾아야

“아무리 미군기지가 면책특권이 있고 SOFA에 의해 규제된다고 하더라도 서울의 땅과 지하수가 이렇게 오염되고 있는데 출입도 못 하고 조사도 못 하고 따라서 본질적인 대책도 세울 수 없다니!” 지난 6월 서울 용산 미군기지 주변 기름유출 오염에 관한 보고를 받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토로했다. 그리고 앞으로 서울시는 용산 미군기지 인근 유류오염 해결을 위해 SOFA 환경분과위원회를 통해 한미 공동실무협의체를 구성·논의하기로 했다. 비록 실제 기지 내부조사가 이루어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나 환경주권을 찾기 위한 노력에는 큰 의미가 있다. 

주한미군을 포함한 일각에서는 아직도 SOFA 제4조 제1항의 ‘미군은 원상복구 의무가 없다’는 명시에 따라 환경오염에 대한 원상복구 역시 의무가 없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2001년 헌법재판소도 SOFA 제4조 제1항에 대해 ‘이 규정은 미군에게 공여지(기지)를 오염시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거나 환경오염을 방치한 상태로 시설과 구역을 반환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못 박은 바 있다. 주한미군은 그들의 행동이 환경범죄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간 SOFA를 핑계 삼아 미온한 대처를 해온 정부와 지자체들은 이를 잊지 말고 적극 환경주권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다시는 죽음의 땅이 돌아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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