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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전국일주 캠핑

[전국일주 1일차] ② 안동 군자마을

by 막둥씨 2012. 7. 29.

탁청정에서 바라본 군자마을 전경. 공터가 넓고 잔디밭도 많아 절로 쉬어가고픈 마음이 드는 마을이다

 

안동 시내에서 35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달렸다. 군자마을로 가는 길에서 안동은 마을마다 주민들이 쉴 수 있도록 정자를 많이 지어 놓았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이 날만이 아니라, 정자는 우리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유인즉, 정자에 텐트를 치면 비를 피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바닥도 축축하지 않아 더할 나위 없이 좋기 때문이었다. 첫날인 오늘 이렇게 많은 정자를 보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정해진 루트가 없는 장기 캠핑여행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어쨌든 잠자리였으니. 

 

안동 군자마을을 처음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은 별명이 '곰'이었던 한 고등학교 친구 덕분이었다. 덩치가 정말 곰만 했던 이 곰의 고향 집은 청량산 자락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었고, 곰을 포함해 당시 친했던 친구 4명이 주말을 이용해 그곳으로 놀러가 적이 있었다. 구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우리는 먼저 안동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이동했고, 다시 안동에서 시내버스에 올라 청량산으로 향했다. 그렇게 봉화 청량산을 향해 가던중 군자마을 자락이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곰에게 저기는 뭐하는 곳이냐고 물었고 그 당시 곰은 군자마을을 '수몰지역에서 문화재를 옮겨와 만들 마을'로만 설명했었다. 그렇게 군자마을은 나의 기억에서 스쳐갔다.

 

시내에서 도산서원 방향으로 20km정도 벗어나자 산자락에 위치한 군자마을이 보였다. 실제 마을은 약 500~600년 전 광산김씨(光山金氏) 김효로가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에는 약 20여 채의 고가가 있는데, 일부는 원래 있던 것이고 또 일부는 1974년 안동댐 조성으로 수몰을 피해 옮겨 온 것이다. 그 옛날 친구 곰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었다.

 

평일의 군자마을은 정말이지 조용했다. 한여름의 매미 소리만이 여기저기 자라는 나무에서 들려 올 뿐이었다. 처음에는 주민도 관리인도 없는 그런 유령 마을인가 싶기도 했다. 마을을 둘러보기 전 우리는 너무 더운 날씨에 일단 땀을 식힐 곳을 찾았다. 마침 마을 아래쪽, 내천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이상하리만치 벤치를 많이 만들어 놓은 게 보였다. 계곡의 중심 골처럼 지대가 살짝 낮은곳에 설치된 이 벤치들은 앉자마자 아래쪽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마을에서 바람이 가장 많이 부는 자리인 것을 직감했다. 벤치들의 군락도 이해가 되었다. 분명 마을을 잘 아는 사람이 벤치의 위치를 정했으리라. 마침 점심때인지라 배가 고파져 집에서 준비해 온 고구마를 먹고 있으니, 마을 주민분이 약을 치러 밭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유령마을은 아니었던 것이다.

 

탁청정 종가의 뒷마당. 안마당 만큼은 아니지만 꽃과 나무가 어우러저 아름답다

 

간단히 요기를 한 후 마을을 둘러보는데 한 아주머니께서 어디선가 돌아와 집 문을 열고 계셨다. 물이 떨어져 목 메며 고구마를 먹은 터라 아주머니께 물을 청했다. 아주머니는 흔쾌히 물을 내어주시겠다며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ㅁ자 구조의 마당이 매우 아름다운 집이었다. 알고 보니 그곳이 조선 중종 36년(1541) 탁청정(濯淸亭) 김유(金綏)가 지어 살던 집인 탁청정 종가였다.

 

사진은 없지만 앞선 사진의 오른쪽 건물 안쪽이 ㅁ자 구조의 안마당이다. 주인집에서 ㅁ자 모양 마당을 따라 꽃을 아기자기하게 심어 놓아 포근하게 감싸안는 분위기가 방문자를 사로잡았다. 최순우 옛집의 ㅁ자형 마당도 감탄할만하지만 나는 탁청정 종가의 ㅁ자형 마당이 더 마음에 들었다. 아마 좀 더 손길이 스며든, 사람 사는 풍경이었기 때문이리라.

 

아주머니는 천연지하수임을 강조하며 우리의 물병을 채워주신 뒤, 옆에 정자가 있으니 올라가서 쉬다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정자가 바로 이 마을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탁청정이다.

 

탁청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영남지방에 있는 개인 정자로는 가장 웅장하고 우하한 건물이다. 원래는 현 위치에서 2km가량 떨어진 와룡면 오천리 117번지에 있던 건물로 광산김씨 오천소종택(烏川小宗宅)에 딸린 정자라고 한다. 하지만 안동댐의 건설로 인해 1975년 이곳으로 옮겨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료를 접하기 전이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상함을 느낄 것이 분명했다. 나 또한 그러했던 것이 정자가 본채와 너무 가까웠고 수평적으로 정렬이 잘 된 곳에 위치해 있었다. 게다가 앞에 파 놓은 연못도 주위 지세와 어울리지 않았다. 이런 의혹은 탁청정에 올라 풍경을 바라보면 더욱 자신감을 갖게 된다. 마을 밖 풍경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을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 탁청정이다.

 

탁청정 현판. 한석봉의 글씨며 마루의 다른 측면에는 퇴계 이황등의 시판이 걸려있다

 

탁청정에 오르니 이미 마을어르신 두 분께서 자리를 잡고 주무시고 계셨다. 우리는 조용히 반대편 구석으로 가 앉았다. 마루가 매우 넓어 동네 주민들 모두가 올라와 쉴 수 있을만한 크기였다. 잠시 뒤 아까 물을 주신 아주머니께서 더운데 하나 먹으며 쉬라고 오이를 씻어다 주셨다. 작지만 정말 감사한 시골인심이다. 우리는 오이를 먹고 잠시 누워 휴식을 취했다. 여행 첫 날, 첫 방문지부터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아직은 피로에 찌들기 전인 여행 첫 날이라 잠은 오지 않았다.

 

도산서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군자마을을 나섰다. 그런데 마을로 들어오는 시멘트길 바닥으로 상수도시설이 설치되어 있다는 표시가 보였다. 아까 천연지하수임을 강조하시며 우리에게 물을 채워주신 아주머니가 생각났다. 물론 나는 우리가 먹은 물이 지하수임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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