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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49

[전국일주 8일차] ⑤ 국립 부여박물관 부여로 방향을 잡은 우리는 보령 성주사지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얼마 가지 않아 개화초등학교가 나왔는데, 학교 앞에 과속단속용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운전자라면 알듯 학교앞은 시속 30km 아래로 서행해야 한다. 따라서 이 과속단속용 카메라도 시속 30km에 맞춰져 있었다. 경력이 오래되는건 아니지만 운전대를 잡은 이래 처음 보는 카메라였다. 시속 30km를 단속하는 카메라라니! 나는 신기하면서도 동시에 이 장치가 마음에 들었다. 학교 앞에서는 서행해야 한다지만 정작 이 규정속도가 지켜지는 것은 드물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학교 앞 마다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그렇게 도착한 국립 부여박물관. 주차장에 들어서며 꽤 기분 좋은 것을 발견했다. 바로 경차 전용 주차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2012. 9. 24.
[전국일주 8일차] ④ 보령 성주사지의 허망함과 놀라움 네비게이션이 말썽을 부린 것인지 아님 사용자가 말썽을 부린 것인지. 성주사지를 향해 달려온 우리는 정작 엉뚱한 곳에 도착했다. 네비게이션은 아무것도 없는, 안개만이 자욱한 산 중턱에 우리를 데려다 놓은 채 이곳이 목적지라고 소리쳤다. 나는 잠시 당황해서 어쩔줄을 몰랐다. 차에서 내려 바깥 공기를 한번 들이마신 후 다시 성주사지를 검색했다. 다행이 몇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흔히 보령이라면 대부분 보령 머드축제를 떠올릴 것이다. 그 외에 이 고장에 무엇이 있냐고 하면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나 또한 그랬다. 성주사지를 향하면서도 이 절터가 어느 지방에 속해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그래서 이런 다소의 무지를 조금이나마 채워 볼 요량으로 보령시청 홈페이지를 찾았다. 그런데 문화유적은 생각보다 많.. 2012. 9. 24.
[전국일주 8일차] ③ 간월암, 동자승을 만나다. 간월암은 처음부터 계획에 있던 방문지는 아니었다. 해미읍성을 나온 우리는 보령에 있는 성주사지로 바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시간은 아직도 아침인지라 너무 일렀고, 성주사지까지는 60km가 넘는 거리로 마냥 달리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불과 어제만 해도 200km가 넘는 장거리 이동을 했기 때문이다. 여행도 무려 8일차나 되었지만 바다 한 번 보지 못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서해 바다가 코앞인데 다시 육지로만 파고든다는 여행자의 도리도 아닌듯 했다. 그렇게 찾은 것이 간월암이다. 우리가 서산에서 출발했다면 649번 지방도를 타고 부석면을 지나 간월암을 본 뒤 서산A지구방조제를 건너갔을 것이다. 그런데 출발지가 해미였던 탔에 홍성군으로 내려가 방조제를 건너 간월암을 본 뒤 다시 방조제를 건너올 수 밖에.. 2012. 9. 23.
[전국일주 8일차] ② 해미읍성과 천주교 박해 아침에 일어나니 온 세상이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다. 무척이나 넓은 해미읍성 무료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주차장 입구엔 관광안내센터가 있었는데, 때마침 직원으로 보이는듯한 아저씨 한 분이 들어가고 계셨다. 우리는 어제 해미로 오는 길에 인상깊게 보았던 넓은 목장지대를 가볼 수 있는지 여쭤보았다. 그런데 아저씨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구제역 때문에 외부인의 출입을엄격히 통제한다는 것이었다. 흔히 서산목장이라고도 불리며 예전에는 JP의 목장이었고 현재는 농협중앙회 가축개량사업소로 이용되고 있다고 했다. 충남 서산시 해미면에 위치한 해미읍성은 높이가 5m, 둘레가 1.8km의 성곽으로 돌로 쌓은 석성이다.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전북 고창의 고창읍성과 함께 원형이 잘 보존 된 조선시대 3대읍성.. 2012. 8. 25.
[전국일주 8일차] ① 난항 속 정박 해미읍성에서 출발해 익산 금마면에서 하루를 마무리한 8일차. 우리는 이 8일차의 전후로 캠핑을 하지 못하고 실내취침 연달아 두 번이나 했다. 마음것 씻을 수 있는것은 좋았지만 여러모로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먼저 전 날, 즉 7일차 밤은 이랬다. 마애불을 보고나서 해미읍성까지 도달하니 벌써 시간이 저녁이었다. 캠핑할 곳을 알아보기엔 비가 너무 많이 왔고, 그간의 피로도 폭발하는것 같았다. 그래서 이날은 망설임 없이 캠핑을 포기했다. 비가 오는 중엔 바닥도 다 젖어 텐트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지붕이 있는 정자를 찾는다 해도 비람이 불면 몽땅 맞을 수 밖에 없고, 텐트가 젖으면 다음날 이동에도 지장을 준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이미 여행 이삼일차 정선 아우라지에서 체득한 바였다. 판단은 정확했다.. 2012. 8. 25.
[전국일주 7일차] ④ 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여래삼존상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수덕사에서 내려 온 우리는 덕산을 지나 609번, 618번 지방도를 연이어 달렸다. 이렇게 북쪽으로 향하다 보면 고풍저수지앞에서 좌회전 길이 나온다. 이 길은 국립 용현 자연휴양림이 있는 가야산 계곡길로서, 양쪽으로 백숙등을 파는 식당이 자리잡고 있다. 이 식당무리를 지나 휴양림 방향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얼마 안가 마애여래삼존불상 입구에 다다른다. 흔히 우리 문화재의 이름을 보면 너무 어려워 보이는 것들이 많은데, 풀이해 보면 매우 실리적이면서도 단순명료하다. 예를들어 마애여래삼존불에서 마애불은 자연의 암벽, 구릉, 동굴 벽 따위에 새긴 불상을 뜻하며, 여래는 진여의 세계 곧 열반에 다다른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삼존은 중앙의 본존과 그 좌우에 모시는 두 .. 2012. 8. 13.
[전국일주 7일차] ③ 수덕여관과 고암선생 수덕사 일주문 지나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초가집이 하나 보인다. 바로 수덕여관이다. 그리고 이 수덕여관을 중심으로 이응로 화백과 그의 본부인 박귀옥 여사, 만공스님, 일엽스님 그리고 나혜석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재 서울경제신문 부회장으로 있는 임종건의 글을 읽으면 수덕여관에 얽힌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는데 도무지 원출처를 찾을 수가 없다. 그의 글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한국 최초의 신시 여류시인 김일엽은 1928년 나이 33에 속세를 접고 수덕사 탄옹스님으로부터 수계를 받고 불가에 귀의했다. 한편 1934년 이혼 후 극도로 쇠약해지고 지쳐있던 나혜석은 수덕여관에 짐을 풀고 김일엽과 회포를 푼다. 여성을 옥죄는 사회에 한없이 원망스러웠던 이혼녀 나혜석은 일엽에게 본인도 중이 되겠다고 하지.. 2012. 8. 12.
[전국일주 7일차] ② 예산 수덕사 수덕사가 가까워지자 지금까지의 여행에서는 보지 못한 넓은 논지대가 우리를 에워쌌다. 이곳이 바로 내포평야임이 분명했다. 이중환의 에 의하면 내포란 과거에 예산, 당진, 홍성, 서산 일대를 일컫던 지방명으로 아직도 예산군 삽교읍에 자연부락명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덕숭총림 수덕사는 해발 495미터의 덕숭산 중턱즈음에 자리잡은 백제시대의 절이다. 혹자는 백제시대의 절이라고 해봤자 건물도 모두 그 당시의 것이 아닐테고, 현대에 와서 지은 건물이 전부라 해도 100년 뒤 후손들에겐 백제시대의 절로 불릴테니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볼수는 없다. 시대를 관통하며 지나쳐간 사람들이 있고 문화가 있으며 사상이 있기 때문이다. 덕숭총림에서 총림은 강원(스님들의 전문 승가대학), 선원(.. 2012. 8. 12.
[전국일주 7일차] ① 장거리 이동 오늘은 이동이 주 목적이 되는 날이었다. 문경의 소야솔밭에서 출발할 당시 네비의 목적지를 수덕사로 설정해보니 160km나 떨어져 있었다. 이래저래 다 합치면 200km는 달리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하루에 이동할 양 치곤 엄청난 셈이다. 게다가 문경을 제외하고서도 충북 괴산, 증평, 세종, 천안, 아산 등 4개의 지역은 그냥 지나치게 된다. 애초에 여행을 기획할 당시 우려했던 부분이 이런것이기도 했다. 초창기의 계획은 하나의 군 단위로 이동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할 경우 전국을 일주하는데 너무 시간이 들었다. 아니 너무 돈이 들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그래서 최소한의 이동을 원칙으로 하며, 그 양은 그때그때 정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이동은 우리가 허용할 수 있는 기준을 조금은 넘어선 셈이었.. 2012.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