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촬영이 있었다. 어젯밤 일기예보를 보니 많지는 않지만 점심무렵부터 비가 내릴거라 했다. 오늘 아침 모든 나갈준비를 마치고서 나는 고민을 했다. 나의 우산(장우산)을 챙겨야 하나 말아야 하나. 미룰수 없는 촬영이었기에 강행은 해야 하는데, 아직 비도 내리지 않는 아침부터 장우산을 챙겨가면 연출자인 ㄷㅎ형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치 비를 기대하는 사람 같지 않은가. 혹은 비가 반드시 내릴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같기도 하고. 게다가 예전에 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느 마을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 몇날며칠을 모든 마을사람들이 매일같이 교회에 모여 비를 내려주시길 신에게 기도드렸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어김없이 모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기도를 드리고 교회를 나오는데, 그 순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동네사람들은 교회밖을 나오지 못하고 문앞에 서 있었는데, 오직 한 소년만이 우산을 쓰며 건물을 나왔다고 한다. 오직 소년만이 우산을 챙겨온 것이다.
이런 고민들과 회상끝에, 결국 나는 우산을 포기하고 약속장소에 갔다. 그런데 약속장소에서 만난 ㄷㅎ형의 종이가방에는 우산이 2개나 들어있었다.
!!!
그리고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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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공원에서 보냈다. 빛 물든 낙엽이 바람에 몸을 맡겨 눈앞을 가렸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확실히 왔다고 생각했다. 이내 겨울이 올 것이다. 하지만 겨울준비는 도무지 모르겠다. 사실 무언가를 꼭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렇게 이런 저런 고민을 하는 사이 계절은 스스로 알아서 변할 것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변했듯, 그리고 가을에서 겨울로 변할 것처럼.
사진//영화 <500일의 썸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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