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당 현판. 도산은 옛날 이곳에 옹기 굽는 가마가 있었다하여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군자마을에서 나와 35번 국도를 타고 다시 올라가다 보면 안동댐 상부를 지나가게 된다. 높은 다리를 두어개 지나게 되는데, 아직 장마기간이 시작되기 전 가뭄 탓인지 아니면 일부로 방류를 한 것인지 다리 밑은 메말라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럴 때는 물로 색이 변해버린 다리 기둥의 아랫부분의 위치로 만수위를 짐작할 뿐이다. 물이 빠졌을 때는 충분히 사용가능한 땅 같았지만, 만수위를 기준으로 댐을 설정하다 보니, 이곳에서 살고 농사짓던 사람들도 모두 이주해갈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나중에 말할 기회가 생길지 모르겠지만, 나의 고향 땅은 만수위의 경계 바로 윗 마을이라 살아남을수 있었다. 다행인지 아님 슬픈일인지는 아직도 해석이 분분하다.
도산서원은 이 35번 국도에서 우회전을 한 번 한 뒤 중앙선조차 없는 산길을 1.6km정도 더 들어가야 나온다. 차량 두대가 충분히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지만 2차선 넓이에는 못미치기 때문에 커브길이나 반대편에서 오는 버스를 마주하게 되면 항상 조심해야 되는 길이다. 이 길이 끝나면 주차장과 매표소가 나온다. 그리고 다시 이곳에서부터 약 400미터의 흙길을 지나면 도산서원이 나온다. 흙길은 누구나 걸어서 가야 하는 길이다.
우리는 여행의 첫 뱀을 바로 이 흙길에서 알현했다. 조금전 군자마을에서 첫날부터 운이 좋다고 했더니, 이곳에선 첫날부터 뱀을 본 것이다. 물론 우리를 공격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갈색의 이 뱀은 우리를 놀래킨 뒤 반대방향으로 유유자적 사라졌다. 놀란 마음은 누가 달래줄소냐.
도산서원(陶山書院)은 원래 퇴계선생의 사후에 지어진 것이고 그 전까지는 도산서당(陶山書堂)이었다. 그렇다면 서당과 서원의 차이는 무엇일까? 쉽게 말하면 서당은 교육만 하는 곳이고, 서원은 선현을 모시는 일도 하는 곳이다. 퇴계는 낙향후 1561년(명종16)에 도산서당을 설립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을 위해 힘썼다. 지금의 도산서원은 1570년 퇴계선생이 돌아가시자 1574년 사당을 지어 위패를 봉안했고, 그 뒤에 서원으로 완성되었다. 1975년에는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 편액을 선조로부터 하사 받음으로서 사액(賜額)서원이 된 것이다.
나의 도산서원 감흥은 여기까지다. 사실 서원보다 나는 그 앞의 고목과 강 그리고 시사단을 더 좋아한다.
정조는 평소 흠모하던 이황의 학덕과 유업을 기리고 지방 선비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특별 과거시험인 도산별과를 보았다. 시사단은 이런 과거시험을 기념하기위해 도산별과를 치뤘던 장소에 정조가 세운 것인데, 1974년 안동댐 건설로인한 수몰을 피해 현 위치에서 지상 10m의 축대를 쌓아 그 위로 옮겼다. 양반의 도시로 유적과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안동이지만, 대형 댐이 2개나 있다는 사실도 참 으외다. 이전이나 복원 등 많은 노력을 하기는 했지만, 댐 건설로 파괴되거나 원형이 사라지고 혹은 발굴조차 되지 않은 채 수장된 유적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이와 관련된 하나의 기억이 있다. 어릴적 도산서원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본 나의 기억속 시사단은 분명 강 중간에 존재한 섬이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물 위에 있는것이 아니라 뭍 위에 있었다. 기억이란 것이 이렇게 항상 왜곡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날은 비가와 안개가 자욱이 낀 날이었는데 그 때문에 이런 착각을 일으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안개위에 떠 있어 섬처럼 보였을테니 말이다. 아니면 장마기간이라 댐 건설 이후 물이 범람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어쨋든 수몰을 피해 높이 쌓은 축대가 오히려 눈길을 끌게 되었으니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강을 건너가는 길이 보였으나 입구도 찾지 못하겠고 또 첫날이라 잘 곳을 일찍부터 찾아보기로 한 탓에 시사단에 오르지는 않고 발길을 돌렸다. 다음을 기약한 채. 시사단 아래로 펼쳐진 넓은 들에서는 감자수확이 한창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장마철에 물이 범람한다면, 저 감자밭 또한 물 속에 잠길 가능성이 커보였다.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분주한 농부들의 손놀림이 마치 수해를 피하기 위한 노력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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