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4일 수요일. 오전 11시 안동터미널에서 푸딩을 만나기로 했다. 나는 집에서 차와 텐트등 각종 짐을 가지고 이곳으로 왔고, 푸딩은 수원에서 출발 고속버스를 타고 안동으로 올 것이다. 출발지를 안동으로 정한 것은 여러가지 사항을 고려해서였다.
먼저 우리집에서 너무 멀지 않고 또 동시에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을 정해야 했다. 왜냐면 일단 차와 무거운 짐을 가져가는 나는 집에서부터 차를 몰고 출발할 수 밖에 없는데 거리가 먼, 예를 들어 강원도에서 출발을 하면 거기 까지 홀로 운전을 해서 가야하기 때문이다. 함께 하는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되기 때문에 이는 여러모로 낭비였다.
두번째 이유는 안동여행을 몇번인가 한 적이 있는데 아직 도산서원 루트를 가보지 못한 까닭이었다. 이 기회에 우리가 놓친 안동의 명소를 답사해 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여행에 필요한 식품등을 제대로 출발하기 전 함께 사야 했는데, 대량으로 사야 하기 때문에 마트가 이득일 것 같았고 마침 안동터미널 근처에 마트가 있어 유리했던 것이다.
날씨는 무더웠다. 하지만 그것보다 내일부터 최고 120mm의 비가 온다는 예보에 더욱 신경이 곤두섰다. 비오는 날은 캠핑에는 쥐약이기 때문이다. 텐트를 치기 전 비가 오면 바닥이 젖고, 텐트를 치고 나서 비가 오더라고 다음날 아침 젖은 텐트를 접고 이동하기가 힘들다. 나는 젖은 텐트를 그대로 접어 넣으면 텐트가 썩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학생 방학이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터미널엔 아저씨 아줌마들 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내일로 여행자 룩(Look) - 젊은 나이에 밀짚모자, 반팔반바지, 내일로티켓명찰등을 하고 2~3명이 몰려다님 - 을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다 문득 이곳은 기차역이 아니라 버스터미널임을 깨달았다. 안동버스터미널이 원래는 기차역과 함께 시내에 있었는데 몇년 전 도시 외곽으로 옮겨왔던 것이다. (그런데 여행중에도 내일로 여행자를 거의 보지 못했다. 계절학기 때문인지 장마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푸딩이 도착했다. 일순위로 마트를 들러 필요한 물품들을 샀다. 식품으로는 참치캔, 3분요리류, 다시다, 라면 등이 있었고 기타 용품으로는 빨래비누, 모기퇴치제, 부탄가스등이 있었다. 뱀을 쫒기 위한 나프탈렌등을 목록에 넣어 왔으나 사지 않았다.
가장 많이 고민을 한 부분은 주방세제였다. 처음에는 주방세제 없이 설겆이를 하기로 했으나, 라면등 기름기가 다소있는 냄비를 닦을 때면 아무것도 없이는 힘들것 같았다. 다음 끼니에도 그 냄비를 써야 되니 말이다. 결국 주방세제 코너를 샅샅이 뒤진 끝에 우리는 사람이 먹어도 된다는 친환경 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베이킹소다에 생강등을 넣어 만든 가루제인데 나중에 써보니 효과는 예상보다 좋았다.
이렇게 장을 보고 우리는 도산서원 방향으로 떠났다. 사실 여행루트를 정해 놓지 않아 막막했다. 의논 끝에 일단 출발 한 뒤 밤마다 검색을 통해 다음날 갈 곳을 함께 정하자고 합의해 둔 상태였다. 하지만 그날그날 잠잘곳도 찾아야 하고 또 여행 자체에 적응할 시간도 필요할 것 같아 처음 이틀간의 루트는 대략 생각해 왔다. 오늘은 군자마을과 도산서원을 답사하고 청량산 아래에서 잘 것이다. 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없는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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