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 시간을 매일 3분씩만 줄여도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워터팜의 박찬웅 대표
전 세계를 통틀어 사람이 죽는 이유 1위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각종 암도 아니고, 잔혹한 살상이 벌어지는 전쟁도 아니다. 연간 500만 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가는 그것, 바로 오염된 물이다. 그런데 아직도 10억 명의 사람들이 안전한 식수를 마시지 못하고 있다. 그중 5세 미만 어린이가 1억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깨끗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수많은 국제 구호단체들이 생겼고, 그간 세계 각지에서 우물을 파 왔다.그런데 여기 조금은 색다른 우물을 파려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물로 지구 반대편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려는 소셜벤처 워터팜(Water Farm)의 대표 박찬웅 씨(31세)다. 그의 콘셉트는 단순하며 명쾌하다.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사용하는 물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절약하고, 이렇게 아낀 물을 깨끗한 물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는 것. 그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하나의 물통을 공유한다면
박 대표의 이야기는 3년 전 캄보디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교 4학년 때 캄보디아의 시골 마을로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흙탕물을 마시는 아이들을 봤어요. 그날 저녁 도시에 마련된 숙소에서 깨끗한 물로 샤워하는데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한국으로 돌아와 알아보니 물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20리터의 깨끗한 물이 부족해서, 20초마다 5세 미만의 아이가 한 명씩 죽고 있다고 했다. 특히 물 공급의 불균형 문제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 사람들이 물을 펑펑 쓰는 모습을 보니 이런 생각은 더욱 떠나질 않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한 사람이 위생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물의 양이 하루 50리터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는 사람들이 하루 평균 10리터 미만의 물로 생활하고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 사람이 하루에 177리터나 쓰고 있었다. 덴마크(114리터)나 독일(151리터) 등의 나라에 비해서도 높은 수치다. 우리가 마구 쓰고 버리는 물이 누군가에게는 귀중한 생명의 물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는 이런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처음에는 일본의 사회적 기업인 <테이블 포 투>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테이블 포 투>는 영양 과잉으로 전 세계에 10억 명의 비만인 사람들이 있다면,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도 10억 명이 있다는 점에서 출발했어요. 그래서 여유가 있는 선진국의 사람들이 한 끼 식사를 할 때, 일정 부분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자는 활동이에요. 물도 마찬가지로 불균형 문제가 심각해요. 전 세계 사람들이 하나의 거대한 물통을 나누어 쓴다면 잘 쓸 수 있을 텐데.” 워터팜이란 이름도 그런 의미에서 지었다. “팜(Farm)은 농장이에요. 농장은 같이 모여 서로 돕고 활동하는 곳이지요. 물을 낭비하는 사람들과 물이 부족한 사람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같이 사용하자는 개념을 담고 싶었어요.”
그런데 물은 이미 사람들의 굳어진 습관 탓에 소비를 줄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박 대표는 절수기를 통해 사람들의 참여와 물 절약을 이끌어낸다. “집에서 직접 실험을 해봤어요. 4인 가족 월평균 물 소비가 23톤이라 해요. 우리 집은 평균보다 적게 써서 15톤 정도를 썼어요. 절수기를 설치한 후인 지난해 12월, 10톤을 썼어요. 5톤 정도를 줄였고, 4000원의 수도요금을 아꼈어요. 절수기를 달고 신경을 쓰다 보니 생활 습관도 바뀌더라고요.” 그는 일반 가정에서 한 달 평균 5~8톤가량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절수기를 설치한 강동구의 한 가정. 절수기 제품은 세정력은 높이면서도 물은 적게 사용하게 만든다
어렵게 시작된 사전 테스트
워터팜은 현재 서울 강동구에 30가구를 선정해 사전 테스트를 진행중이다. 단순 명쾌한 아이디어였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는 쉽지 않은 과정을 겪었다. 특히 가장 힘든 부분은 홀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혼자는 아니었다. 사회복지학과 출신으로 본디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많았던 박 대표는 함께할 동료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두 번 정도 팀이 꾸려지기도 했지만 모두 오래가지는 못했다. 일부는 꾸준히 할 마음이 없었고, 또 어떤 이들은 각자 생업이 있어 활동에 전념하기 어려웠다.
지금의 사전 테스트는 강동구의 희망별동대 프로젝트 덕분에 가능했다. 희망제작소와 강동구가 함께 참여한 프로그램 ‘강동을 이노베이션하라’의 5팀 중 하나로 뽑히며 작년 가을 멘토링을 받았다. 그런데 사전 테스트가 예상보다 늦어졌다. 절수기를 무료로 달아준다고 해도 신청하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다. 귀찮은 이유도 있고 공짜라는 사실에 반신반의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물값이 싼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현재 수돗물 가격은 1톤당 790원 정도예요. 생수 2리터가 1000원이라고 치면 무려 500배가 넘는 가격차이지요. 생수로 샤워를 하라고 한다면 아무도 그렇게 물을 막 쓰진 않을 거예요.” 결국 강동구 지역특화사업단의 도움을 받아 한살림 활동가를 소개받았다. 덕분에 지금은 한살림 동부지구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마침 한살림에서도 물 절약 활동을 하고 있어 서로 도움이 됐다. 게다가 일반 사람들보다 조합원들은 적극적이었다.
박 대표는 절수기를 통해 절약된 수도요금에서 일정 부분 기부를 받을 계획이다. 조성된 기금은 절수기 추가설치에 반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물 부족 국가 지원에 쓰려고 한다. 기부 금액은 아직 정하지 않았는데, 현재의 사전 테스트에서는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테스트에서 나온 자발적 기부금으로 볼리비아 뽀꼬뽀꼬 마을에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필터를 공급할 계획이다.
일석이조? 그 이상!
워터팜이 제공하는 절수기는 샤워기와 주방 싱크대 그리고 양변기 등 총 3곳에 설치된다. 샤워기와 싱크대의 경우 수압은 높이되 물이 적게 나오는 수도꼭지를 설치해 물을 절약한다. 양변기에는 내부에 작은 자석을 달아 물이 빠지는 뚜껑이 빨리 닫히게 만들어, 한 번 이용할 때마다 2리터 정도 절약된다.
물이 줄어들었지만 수압과 세정력은 오히려 더 크다. 사전 테스트에 참여해 절수기를 설치한 한살림 조합원 정효숙 씨는 “물살이 세지니 수도꼭지를 잠그게 된다. 샤워기도 이전에는 물이 많이 나와도 잘 안 씻겼는데, 지금은 한 번에 잘 씻긴다.”라며 절수기의 성능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박 대표는 샤워기나 싱크대의 경우 세정력이 중요한데, 절수기 제품은 물이 적게 나와도 세정력이 탁월하다고 강조했다.
종종 그냥 바로 기부를 하지 왜 이런 번거로운 걸 하냐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한쪽 면만 바라본 말이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물 자원도 절약하고 싶어요. 그저 기부만 하면 우리의 물 낭비는 그대로일 뿐입니다.” 박 대표의 지적이다.
캄보디아의 어느 시골 마을에 설치된 우물. 워터팜은 우리가 낭비하는 물을 아껴 깨끗한 물이 절실한 이들을 돕고자 한다
물만 절약되는 게 아니다. 온수 사용을 줄임으로써 에너지까지 절약되기에 효과는 더욱 파급적이다. 박 대표는 온수를 쓰기 위해 물을 데우는 데만 1톤당 3500원 정도의 에너지 비용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즉, 온수로 샤워하거나 설거지할 물을 한 달에 3톤만 아껴도 만 원 정도의 온수 비용 지출을 줄일 수 있는 셈이다. 결국, 간단한 절수기 설치로 가계의 지출도 줄이고, 에너지도 절약하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물 부족 국가 주민들을 돕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물 자원도 절약할 수 있다.
물 부족 국가에 대한 지원도 단순히 물을 보급하는 게 아니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문제가 물 부족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물을 만들어줌으로써 매일 아이들이 물을 길으러 오가는 시간이 왕복 3시간에서 15분으로 단축될 수 있다. 시간이 생기니 아이는 학교에 다닐 수 있고, 빈곤의 대물림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게다가 물 공급이 원활해지면 마을 주민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어 식량문제 해결과 생계에도 보탬이 된다. 물이 해결되면 다른 긍정적인 효과가 줄지어 따라오는 것이다.
게으르게 협력하라
게으른 협력(Idle Sourcing)이라는 말이 있다. IT기기 등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소비자들이 그다지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워터팜의 서비스에 참여하는 것은 그것보다도 더 쉽다. 돈도 들지 않고 따로 노력할 필요도 없으며, 그저 무료로 달아주는 절수기를 설치하고 이를 이용해 버는 돈 일부를 기부하기만 하면 된다. 워터팜의 절수기 설치 사업은 강동구에서의 테스트 후 오는 봄 서울의 다른 지역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가구 수도 1000가구 정도로 늘어난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워터팜에 참여하는 가정이 1만 가구, 10만 가구로 늘어나야 한다. 그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루어지는 물 절약, 에너지 절약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게 될지 박찬웅 대표는 벌써 가슴이 뛴다. 오늘도 시민들의 작지만 게으른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불철주야 활동하는 이유다.
* 워터팜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pages/Water-Farm/148942948636359
'산문 > 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生의 기록" 후쿠시마 3주기 탈핵 문화제 (0) | 2014.04.02 |
---|---|
“해양투기 중단” 약속 깬 기업들 (0) | 2014.03.04 |
아이 간식 책임지는 엄마들이 떴다! (0) | 2014.02.05 |
자동차가 길을 지배한다! 길 위의 민주주의 (0) | 2014.02.04 |
잘 들어오지도 않는 집을 왜 삽니까? :: 집을 묻다 (0) | 2013.12.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