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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잡설

느린 학교

by 막둥씨 2012. 8. 14.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헛간에 앉아 잠깐 일을 하는데 라디오에서 관심을 끄는 이야기가 나왔다. 기자인지 아나운서인지 모를 어떤 이가 말하길 이제 곧 개학이라 걱정이라는 것이다. 이유인즉 올 해 대구에선 학생들의 잇다른 자살로 큰 논란이 있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개학이라 걱정이라니... 이 웃기면서도 슬픈 이야기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지 몰랐다.

며칠 전 고등학교 동창들의 미니홈피를 방문해 본 적이 있었다. 정확히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굳이 이야기 하라면 그저 몇몇은 찾아보고 싶었고, 또 친하지는 않았더라도 다들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름도 낯선 이들도 몇명 있었고, 얼굴도 알아보기 힘든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친구의 다이어리에서 나는 얼어붙을 수 밖에 없었다. 

아마 나와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이들은 이 친구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이고, 글 쓴 날짜를 보아도 족히 5, 6년은 흐른 뒤였는데 그녀는 과거의 일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주위의 친구들은 장난으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이다. 참 말이란게 무섭다고 새삼 느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지난 캠핑여행 중 한 스님을 만났다. 차 한잔 하고 가라는 스님의 말에 우리는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셋이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절에서 차를 직접 재배하셔서 그런지 차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셨다. 스님은 요즘 학교폭력이다 뭐다 문제가 많은데 패스트푸드 탓이 크다고 하셨다. 그래서 학교에서 다도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때 정말 황당무계했다. 나중에 절을 나서는데 다시 생각이 났고 역시 황당무계했다. 그런데 그날 밤 자려고 누웠을때 다시 떠올랐는데 그땐 뭔가 묘하게 수긍이 갔다. 설명할 순 없지만 어쨋든 그랬다.

그로부터 한달여가 지난 지금, 이글을 쓰다 보니 다시 생각이 났다. 그리고 스님의 말씀은 일리가 있는 것이었다. 차를 마시며 느림의 미학을 배운다면 많은 것이 개선될 수 있다. 느림은 곧 많은 생각과 스스로에 대한 성찰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인식이 넓어질 때 사람은 성숙한다. 타인을 인식한다.

느린학교를 지향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앞만 보며 달리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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