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ㅈ형의 이야기를 잠깐 꺼냈을 때 사실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ㄱ형.
그는 누구보다 곧은 사람이었다. 위계질서가 철저히 지켜지던 세계에서 만났던 그는 나의 상사였지만 나는 그가 금새 좋아졌다. 그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팍팍함이나 괴팍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직함과 곧은 성격에서 우러나는 그런 카리스마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나 뿐만이 아니라 모두들 그를 좋아했고,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고 나서도 그와의 인연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미처 알지 못했다. 곧은 것은 쉽게 휘진 않지만 한계를 넘으면 부러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그를 보냈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동료들 중에서도 유독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던 나와 운이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상주의자였던 우리에게 '무엇을 하는가가 아닌 어떻게 사는가'의 문제에 대한 일종의 해답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배신감도 섞여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생의 마지막으로 했던 선택은 평소 그가 가장 비난해 마지않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견고한 주장에 우리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동조했지만, 이제 우리의 이런 믿음의 근원은 그와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안감. 누구보다 강했던 그 사람의 마지막은, 그보다 연약한 우리도 언젠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에 무릎꿇을 수 있다는 사실의 암시였다. 이럴진대 누가 과연 확신에 찬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단언을 일삼을 수 있겠는가. 알 수 없는 미래의 나자신에, 어쩌면 존재하지도 않을 나의 미래에 불안해 질 수 밖에 없었다. 마치 매일밤 불꺼진 거실에서 나는 발소리를 당연히 가족의 것이라 여겨 편안하던 마음이, 어느날 밤 그 형체는 가족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은 그런 불안감이었다. 가능성의 불안감이다.
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것이 조금은 안타깝다. 하지만 신랑도 신부도 없는 결혼식에 하객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산 사람의 욕심이 그들을 떠나게 한 것일 테니까...
슬프고 불안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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