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보리가 익었다. 이웃집에서 양파밭 한쪽 끝 길가에 심어놓은 보리가 금빛을 뿜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보리나 양파, 마늘 등은 해를 지나 수확하는 작물이다. 가을에 심었다가 겨울을 지나 이듬해 초여름 수확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종종 모내기를 하기 전까지 비어 있는 논에 보리를 심고는 했었는데, 요즘은 곡식도 귀하지 않아 심는 집이 없다. 이제 파란 보리밭 구경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것이다. 이 집도 양파밭 가로 한 줄을 심어 놓은 것이 다인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식혜를 만들 때 필요한 엿기름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한다. 우리 집도 식혜 - 이곳에서는 단술이라고 부르는 - 를 만들때는 그냥 마트에 가서 엿기름을 사온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보리를 키워 엿기름을 만들면 맛이 더 좋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진 식혜를 나도 먹어 보지는 못했다. 집에서 보리를 키우는 시절이 지나간지는 꽤 되었기 때문이다. 부모님 세대에는 콩나물도 두부도 막걸리도 모두 집에서 만들어 먹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 나의 기억에는 없는 멋 옛날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시골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내 손으로 직접 키우거나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먹을거리 뿐 아니라 원한다면 집도 손수 지을 수 있고 옷도 짤 수 있다. 예전에는 대부분 직접 했어야 했겠지만, 현대의 도시화된 삶에서는 대부분 직접 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시골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의 선택의 폭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나는 막걸리 만드는 방법도, 두부를 만드는 방법도, 새끼를 꼬아 멍석을 만드는 방법도 모른다. 벽돌을 쌓는 방법도, 시멘트를 섞는 방법도, 나무를 베는 방법도 모른다. 다행이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는 아직 많이 알고 계시는듯하다. 배워둬야 할 터인데 걱정이다.
+ 6월 13일 추가
오늘 KBS뉴스에서 보니 우리나라의 보리 자급률은 3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마저도 올해부터 정부의 보리 수매가 중단되어 보리농사를 포기하는 농민들이 늘고 있다. 전국 보리 생산량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전북의 경우만 하더라도, 지난해에 비해 보리재배 면적이 10%가량 줄었다고 한다.
내친김에 2010년 기준 곡물의 자급률을 찾아보았다. 사료용을 포함한 총 곡물자급률은 26.7%, 식량자급률(식용곡물)은 54.9%, 주식자급률(쌀+밀+보리)은 64.6%(이것은 2008년 기준)로 나타났다. 항목별로 보면 쌀은 104.6%로 자급률을 웃돌아 부족하지 않았고, 보리 27.8%, 밀 1.7%, 콩 31.7%로 나타났다. 콩 같은 경우는 사료용이 포함되지 않은 식용 콩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 같았고, 만약 사료용이 포함되면 그 수치는 한자리대로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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