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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잡설

달팽이의 여행

by 막둥씨 2012. 6. 9.

그제 밤 욕실에서 발견한 작은 달팽이. 새끼손톱 크기의 1/9정도 밖에 안 될만큼 작은 이 달팽이는 말이 없었다. 좁은 욕조속에 몸을 뉘었을때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 주진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실망하진 않았다. 사실 나도 욕조속에 몸을 뉜건 아니었으니까.

여튼 대형 돋보기를 들이대고서야 찍을 수 있었던 이 작디 작은 달팽이에 귀를 다 기울이고 나자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과연 이 녀석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든 것이다. 워낙 귀여워서 그냥 그대로 둘 까도 싶었다. 하지만 욕실에 습기는 충분하겠지만 먹이는 없을 것 같았고, 그대로 둔 달팽이가 작은 욕실창문을 통해 스스로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그러고 보니 애초에 어떻게 들어온 것인지도 의문이다).

결국 손에 쥐고 - 라기 보단 손가락 사이에 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워낙 작아서 - 집 밖으로 나가 풀밭에 던져주었다. 어둠 저편에서 개구리와 두꺼비 등이 요란하게 울어댔다. 나의 작은 달팽이는 이제 보이지 않았지만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거라고 아무도 못봤지만 기억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이유는 가지가지다.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며 그 사랑을 돈독히 하기 위함일 수도 있고 또는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기 위함일 수도 있다. 또 일상을 떠나 혼자만의 생각할 시간을 가지기 위함일 수도 있고 혹은 좋은 풍경과 문화유적을 답사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물론 이 밖에 수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으며 보통 이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혼재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수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행 후에 사람은 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용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느낀다고 말하지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고 하지는 않는다. 후자도 맞는 표현이긴 하지만 요컨대 내용물을 늘리기 보다는 그릇을 키우길 원하는 것이 여행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여행은 그릇을 크게 만들까. 그것은 여행의 이유가 어찌되었건 일상을 떠날 수 있고 좀 더 나가 아닌 다른 것에 신경을 덜 쓰게 되면서 자기 성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은 그 목적에 관계없이 자아를 위한 여행이 될 수 있다. 성직자와 일반 속인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자기 내면에 귀를 얼마나 기울이냐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를 알고 있을까. 단순히 자신의 능력이나 수치화되는 스펙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에 대한 답을 찾는 것부터가 스스로를 아는 것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 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은 기분 좋은 것과 나쁜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인 것처럼.

나는 나를 잘 모른다. 그래서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거라고 아무도 못봤지만 기억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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