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맞아 직장 선배들과 소귀고개란 뜻인 우이령길 산책을 다녀왔다. 그들은 이미 서너번 째 방문이고 나는 처녀 방문자였다. 사전 예약을 해야만 입장할 수 있는 우이령길은 하루 입장 인원을 10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지나친 이용 압력에 따른 훼손을 막기 위해서인데, 40년간 이용이 통제되어온 탓에 생태보존이 매우 잘 되어있다. 교현(송추)나 우이동 방향 양쪽에서 모두 출발할 수 있는데, 우리는 교현방향에서 출발해 중간즈음에서 돌아 다시 교현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양주시 오봉산의 다섯 봉오리
먼저 감탄을 자아내는 건 저 멀리 보이는 새하얀 봉우리다. 교현에서 출발하면 가는 길 방향으로 멋진 암석 봉우리가 펼쳐지는데, 이 봉우리는 점점 방문자의 왼편으로 다가온다. 양주시 오봉산의 다섯봉오리다. 옛날 원님의 딸과 결혼하고자 한 다섯 형제가 가장 높은 곳에 바위를 올려놓는 사람에게 딸을 시집 보내겠다는 원님의 말에 각자 바위를 하나씩 올려 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그 외에도 몇가지 설이 더 있는듯 한데, 공식적인 팻말에도 앞의 이야기가 게제되어 있다. 바위산 꼭대기 마다 작은 바위(사실은 엄청 크겠지)가 하나씩 올려져 있는 풍경도 색다른 상상력을 이끌어낸다.
삼성각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 석굴을 이 계단길 바로 오른편인데, 분위기가 너무 경건했던 탓에 사진은 없다.
유격장에 도착해 왼쪽길을 택하면 오봉산 석굴암이고 오른쪽길이 우이령길 구간이다. 서너번이나 왔다던 선배들도 오봉산 석굴암은 가본적이 없단다. 마침 입구에서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던 직원분의 추천으로 우이령 본길에서 15분 정도 벗어나야 만날수 있는 석굴암을 가보았다. 오봉산 자락 가파른 산중턱에 자리잡은 석굴암은 산속의 작은 암자가 주는 운치와 속세와의 단절성 그리고 고즈넉함을 모두 간직하고 있었다. 물론 최근 템플스테이를 위해 지은 으리으리한 건물과 아직도 진행중인 확장공사가 없었더라면 말이다. 십년전 일찍이 찾아와 변하기 전 모습을 눈에 담아보지 못한게 아쉬울 정도였다.
오봉산 석굴암에서 바라본 전경
그래도 커다란 암석 바위 아래에 만들어진 나한전과 그 안에 모셔진 부처님의 모습은 경외로웠다. 나무문을 열고 나한전 안으로 들면 매우 고요한 가운데 아늑한 빛이 감돌고 있는데, 왼편을 보면 천정을 떠받치고 있는 커다란 암석의 표면이 그대로 드러나 실로 내가 지금 바위 밑에 앉아 있음을 실감케 한다. 마침 방문했을때 한 분의 불자가 지극정성으로 부처님께 배를 올리고 있었는데, 어찌나 경건하던지 나무문을 드나들며 발생하는 끼익하는 소리마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우이령길 초입에는 눈이 별로 없었지만, 석굴암을 들렀다 유격장을 지나 본격적인 비탈길에 들어서니 겨우내 내렸던 눈이 고스란이 얼어 빙판길이 되어 있었다. 유격장까지의 길이 더 양지바른 탓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자동차나 사람이 석굴암까지는 많이 다니는 탓에 눈이 얼 틈이 없거나 제설이 잘 되어 있는데 반해 걸어서만 갈 수 있는 유격장부터의 우이령길 코스는 차도 사람도 많이 다니지 않아 그대로 얼음길이 된 듯했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괜찮았지만, 일반 등산화나 운동화를 신은 사람들은 쉬이 미끄러지며 때로 우스꽝스로운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교현에서 출발한 우이령길 초입
나 역시 서커스를 피할수는 없었던 탓에, 목표로 했던 중간 반환지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거의 다 가긴 했다). 안전상의 이유도 있고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 않아 배도 고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쉽게 포기할 수 있었던 건, 또 우이령길을 찾게 될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우이동까지 넘어가보아야 겠다. 물론 지금은 말고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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