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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전국일주 캠핑

[전국일주 12일차] ② 다시 보는 월출산, 웅장한 도갑사

 

 우연히 맺은 월출산과의 인연

 

내게 월출산은 두 번째 방문이다. 아니, 강진에서 땅끝으로 이어지는 남도답사 코스를 두 번째로 밟는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처음은 10년 전인 2002년 12월이었다. 고3 진입을 앞두고, 나를 포함해 친구들과 넷이서 남도답사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유홍준 선생의 책을 보고 감명해 찾아간 터였다. 계획도 없었다. 우리는 저녁시간 대구를 출발해 광주를 거쳤고 영암에 도착하니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었다. 사방은 캄캄해 상가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무슨 오기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한겨울에 대책도 없이... 지금이라면 온갖 걱정이 눈앞을 가려 절대 그 지경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여하튼 다시 사방이 캄캄한 영암 버스터미널. 우리는 무작정 택시를 타고 기사 아저씨께 말했더랬다. "잘 수 있는 데로 좀 데려다주세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만원어치는 달린 것 같다. 아저씨는 어느 여관과 민박의 중간쯤 되는 낡은 시설의 주인에게 우리는 양도했다. 오래된 집의 특징 그대로 방바닥은 불타올랐고 공기는 찼다. 우리는 이곳이 대체 어디인지도 모른 채 잠자리에 누웠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이곳에 내려다준 택시 기사아저씨는 이 민박 주인과 모종의 거래라도 한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민박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우리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기암괴석을 품은 월출산이 웅장모습으로 우리 앞에 떡하니 서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잤던 곳은 월출산 입구의 민박이었던 것이다. 산의 아름다운 모습에 매료된 우리는 예상에도 전혀 없던 산행을 시작했다. 그렇게 6시간이나 산을 탔다. 도중에 눈보라가 몰아치기도 했다. 방한장비도 아이젠도 없이.. 돌이켜보면 그땐 정말 겁도 없었다.

 

어쨌든 이렇게 사연이 많은 월출산이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먼발치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습하고 덥고 한뎃잠에 그만한 체력이 남아있지 않은 이유가 컸다. 그럼에도 월출산은 여전히 감동적이었다. 암석을 드러낸 바위산은 평지 가운데 우뚝 솟아 동서남북 사위에서 그 자태를 드러내는, 일대에서는 독보적인 산이었기 때문이다.

도갑사 일주문에 다다르기 전 만날 수 있는 고목. 우리는 가장 먼 주차장에 차를 놓고 하천변 탐방로를 이용해 걸어왔다.

 

새로운 절집이 된 도갑사

 

 

도갑사는 이 월출산국립공원의 북쪽, 도갑산 자락을 등진 곳에 위치해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을 감명 깊게 읽은 독자라면 월출산의 자락에 있는 두 절, 도갑사와 무위사를 기억할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도갑사와 무위사의 직선거리는 불과 3킬로미터가 채 안 된다. 하지만 산이 가로막고 있어 두 절집을 모두 방문하려면 먼 길을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북쪽에서 내려오던 차였기에 먼저 도갑사를 들렀다. 월출산과 마찬가지로 내게는 두 번째 방문이었다. 십여 년 전 당시 월출산에 올랐던 친구들과 내가 도갑사 코스로 하산했기 때문이다.

 

도갑사. 가장 먼저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주차료가 2000원이나 한다는 사실이었다. 경차였음에도 말이다. 이제껏 여행을 하며 가장 비싼 가격이었다. 이 돈은 지자체로 갈 것인가? 아니면 국립공원관리공단으로 갈 것인가? 많이 내고 나니 자연스레 의문이 들었다. 나중에 잊지 않으면 찾아봐야겠다.

 

 

그런데 도갑사 경내 모습은 10년 전 기억하던 것과 판이하게 달랐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당시에 대규모 공사가 진행중이었던지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저 웅장한 대웅보전을 기억하지 못할 리는 없을 터인데, 과연 내가 도갑사에 왔었던 게 맞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오늘 본 대웅보전은 인상적이었다.(나중에 자료를 찾아 보며 알게 되었는데, 지금의 대웅보전은 2009년에 완성되었다) 무엇보다 규모가 2층이었고 꾸밈도 매우 화려했다. 하지만 그런 규모나 꾸밈이 결코 싫지 않았다. 또한 매우 넓은 경내에 비하여 사람들의 방문도 거의 없었고 비가 온 뒤라 적막함마저 감돌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규모가 큰 절은 마음에 들기 쉽지 않았지만 나는 이내 이곳이 좋아졌다.

 

 

도갑사는 신라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된 절이다. 고려시대의 자료는 유실되어 전해지는 게 없지만, 조선 이후의 자취는 소상이 남아있다. 사원의 중창은 세조2년인 1456년 수미왕사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당시 국가적 지원을 받아 총 966칸에 달하는 당우와 전각을 세웠고, 암자도 12개나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의 대단함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여타 절집이나 문화재처럼 여러 난과 일제시대, 6.25등을 겪으며 많은 소실이 있었다. 특히 비교적 근래인 1977년에는 참배객의 부주의로 인한 화재로 대웅보전이 전소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도갑사측은 문화재에서 해제된 대웅보전을 해체, 복원했고 마침내 지난 2009년, 550여 년 전의 2층(중층)구조로 대웅보전을 다시 세운 것이다. 현대에 지은 건축물이지만, 허투루 짓지는 않은 셈이다.

 

이번 여행중 들렀던 아우라지 일대가 나름 대형 공원이자 관광지였지만 우리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 처럼, 여행이나 답사의 감흥에는 우리가 머물렀던 당시의 온도, 습도, 햇빛, 붐빔의 정도, 당시의 기분 등 모든 것들이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예전의 추억을 되살리며 찾은 곳에서 '다시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장소의 물리적인 변화가 가장 큰 이유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결론은 나에게 도갑사는 처음 보다 두 번째가 훨씬 좋았다는 점이다. 이는 예전에는 없었던 대웅보전이 자리잡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