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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전국일주 캠핑

[전국일주 12일차] ③ 강진다원과 무위사 대웅전

우연히 만난 풍경 강진다원
도갑사에서 나와 무위사에 거의 다다를 때 쯤, 넓은 차밭을 만났다.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풍경에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약간의 비가 내리던 터라 차는 더욱 푸르렀다. 차밭하면 으레 보성만을 떠올리던 문외한인 우리에게는 꽤 신선한 풍경이었다.

월출산 강진 다원은 광복 직전까지 국내 최초의 녹차 제품인 ‘백운옥판차’라는 전차를 생산하던 차 산지였다. 그 후 1980년도부터 주식회사 태평양의 계열사인 장원산업이 산간 지역을 개간하여 대규모 다원을 조성했고 지금의 10여만 평의 다원이 되었다. 현재 전체 차밭 중 8만 평은 일본 품종이 심겨 있으며, 1만9000평에서는 재래종이 재배된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이곳은 예부터 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지역이었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시절 차를 마시며 학문의 깊이를 더하던 곳이며, 명승 초의선사가 우리나라 차 문화 부흥을 기원하며 ‘다신전’을 집필한 곳이기 때문이다. 내일쯤엔 이런 다산의 숨결이 느껴지는 다산초당과 더불어 현재도 야생차를 재배하는, 초의선사가 계셨던 백련사를 들러볼 것이다.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무위사까지는 2km만 더 가면 되는 지척의 거리였다. 


극락보전이 아름다운 무위사

무위사의 첫 인상은 실망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주문 앞에 섰을 때, 우리는 일대의 황량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무라도 좀 심을 것이지...’ 

정말 그랬다. 일주문과 해탈문 사이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함 그 자체였다. 일주문에 걸린 “참 좋은 인연입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공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유는 나중에서야 찾을 수 있었다. 무위사는 최근 2~3년 사이 공사를 했다. 일주문과 해탈문 사이에 있던 주차장을 일주문 밖으로 옮긴 것이다. 우리가 느낀 황량함은, 원래 포장된 주차장이 있던 자리의 아스팔트와 블록을 다 뜯어내고 맨땅으로 복원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누구든 차에서 내려 일주문부터 두 발로 걸어야 한다. 다음번 찾았을 때는 이 공간에 나무도 심 등 무언가 조치를 했으리라 기대해도 될 것 같았다.

사천왕상이 있는 해탈문을 지나 역시 근래 공사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계단길을 오르면 정면에 극락보전이 보이면서 무위사 경내가 나온다. 일주문에서 본 풍경은 황량했지만, 극락보전이 보이는 경내로 들어서자 감싸 안는 포근함이 느껴졌다. 비가 온 뒤라 땅은 더욱 짙은 황토색을 띠고 있었고, 역시 황토색인 극락전의 색과 잘 어울리고 있었다. 

무위사 극락전은 며칠 전 마주한 수덕사 대웅전을 연상케 했다. 둘 다 단청이 없이 수수한 주심포계 맞배지붕 건축이었기 때문이다. 주심포는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나무쪽을 짜 맞추어 올리는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형식을 뜻한다.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사이에도 이런 나무 구조물이 들어간 양식은 다포로서 주심포 양식보다 화려하다. 다만 무위사의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정면 3칸 측면 4칸의 수덕사 대웅전보다 더 작았다. 경쾌한 맛이 일품이었던 수덕사 대웅전과는 다른 아담함이 느껴졌다. 시대적으로 무위사 극락전이 나중에 지어진 것인데, 무위사 극락전은 세종12년(1430년)에 지은 것이고,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말 1308년에 지은 것이다.

무위사 극락전의 정면 3칸은 폭 넓이가 같지 않다. 똑같이 지을 시 가운데 칸이 넓어 보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가운데 칸을 더 좁게 지어 세 칸이 다 같은 넓이로 보이게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에는 그냥 가운데 칸이 좁아 보였다. 어디서 어떤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극락전은 측면 면분할로도 유명하다. 수덕사 대웅전에서 느낄 수 없었던 안정적이고 아름다운 면분할이다. 수덕사 편에 실린 측면 사진과 비교해보면 누구나 큰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유독 무위사는 극락전 앞 배례석이 눈에 띈다. 배례석은 주로 연꽃무늬가 새겨진 널찍한 바윗돌로,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 곳이라 한다. 어느 블로그를 보니 배례석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포토존인 줄 알고 올라가 사진 찍는 일도 종종 있단다. 사실 나도 지금까지는 잘 몰랐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무위사는 주차료 및 입장료가 일절 없다. 가난한 여행자에겐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좋은 구경을 하고 그냥 갈수는 없는 법. 경내에 마련된 복전함에 1000원을 넣고 왔다. 


오늘의 누울 자리를 찾아

강진읍 영랑생가로 향하는 길에 잘 곳을 찾자고 했다. 그리고 강진읍에 다다르기 전 저 멀리 어느 마을입구에 정자를 발견했다. 강진군 성전면 월평리 월산마을이었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가보니 어르신 3분이 정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정자에서 하루 묵어가도 괜찮겠냐고 여쭤보았는데, 한 어르신께서 추우니 마을회관에서 자라고 하셨다. 한사코 사양했지만, 옆에 계시던 두 분 어르신도 괜찮다며 마을회관에서 자고 가라며 부추기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먼저 말씀을 꺼내신 분이 마을 이장님이셨다. 이장님은 댁에서 열쇠를 가져와 문을 열어주셨다.

다소 건물이 오래됐는지 비가 본격적으로 새고 있었다. 바닥에 양동이를 가져놓아야 될 정도였다. 그래도 우리가 잠 잘 공간에는 비가 새지 않았다. 장마철이라 개미가 줄지어 지나가고 있었다. 푸딩은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우리 쪽으로는 오질 않을 터이니 염려 말라고 다독였다. 비가 새고 개미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텐트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 아쉬운 건 씻을 수 있는 화장실이 없었다는 점이지만 대신 싱크대, 가스렌지, TV가 있었다. 방바닥에 누워 TV를 보면서 저녁시간을 보냈다. 마침 방송되고 있던 KBS <남자의 자격>에서는 시내버스만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기를 하고 있었다. 지난겨울에 우리가 했던 여행인지라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비록 실패했지만... 푸딩은 그 화면을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렸다. 연이어 방송된 <1박 2일>에서는 담양편이 방송됐다. 어제 담양을 지나온 터라 재미있게 보았다. 그렇게 TV와 함께한 밤이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