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마을에서 12일차 아침을 맞이했다. 이 마을은 입구에 넓은 공터와 함께 정자를 두 채나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에서 잠을 잔 것이다. 기지개를 펴며 상쾌한 기분으로 근처를 산책했다. 마을입구이자 정자가 있던 곳 바로 옆에는 숯을 만드는 공장이 있었다. 공장을 지나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니 바로 노인회관이 나왔다. 맞은편에는 넓다란 들판이 펼쳐졌다. 꽤 넓다. 비로 인해 습기를 머금은 대지위에 물안개가 피어 올랐다. 노인회관 마당에는 수도가 설치돼 있었다. 이곳에서 세수를 했다. 서너분의 마을 주민들과 마주쳤다. 인사를 드리니 모두 누구냐고 물으신다. 정자에서 하루 묵은 여행자라고 하니 활짝 웃으며 지나가셨다.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가 잤던 정자에도 전기콘센트와 형광등이 설치돼 있었다. 발견 했더라면 쓸까말까 고민이라도 했었을 텐데 아쉬웠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미리 보았더라도 사용하지 않았을듯 하다. 정자를 빌어 잠을 자는 것도 황송한데 소모재인 전기를 함부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종종 많은 여행자들이 무모한 여행으로 현지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곤 하는데 나는 이런 사실이 매우 불편했다. 다행히 우리는 차가 있어 휴대전화 충전 등을 큰 지장없이 할 수 있었기에 당장 전기가 꼭 필요하지는 않았다. 아침식사로 남아있던 오이를 썰어 넣고 짜파게티를 해 먹었다. 여행중에는 이처럼 끼니가 불량한 적이 많았는데, 오늘은 그래도 신선한 오이가 있어 꽤나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오이 하나로 이렇게 행복해질 줄이야
출발준비를 하며 텐트 등 각종 짐을 차에 옮겨싣고 있는데, 푸딩이 도로가에서 장수풍뎅이를 발견했다. 장수풍뎅이? 장수하늘소? 이름이 헷갈렸다. 어디가서 시골 출신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럽겠구나 하고 느꼈다. 친구들은 곤충도 잡고 뱀도 잡고 낚시도 즐겼지만 나는 어느것 하나 좋아하지 않았다. 대체 어린 시절을 무얼 하며 보낸걸까. 갖가지 생각을 떨치지 못한채로 장수풍뎅이와 기념사진을 찍고 연동마을을 떠났다. 현재를 달리기 시작하니 과거는 다시 기억 저 편으로 사라졌다.
오늘의 첫 목적지 소쇄원까지는 10여 킬로미터의 길로 멀지 않은 편이었다. 비가 온 뒤, 게다가 아침이라 그런지 소쇄원 주차장은 한산하며 조용했다. 여타 관광지처럼 큰 규모의 유료 주차장이 아니어서 좋았다.
소쇄원은 조선 선비 소쇄공 양산보의 주도로 15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중반즈음 무등산 자락에 지어진 민간 정원이다. 1400여 평으로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다. 정원과 관련해서는, 아주 오래전 내가 아직 10대일 때, 어느 수업에선가 들은 기억이 있다. 일본식 정원은 돌이든 나무든 자연의 것을 캐다가 집 마당에 심어 조성하지만, 우리의 조상들은 자연 그대로의 멋이 깃들어있는 곳에 집을 지었다고 한다. 영주 부석사가 무량수전 앞으로 펼쳐진 풍경을 고스란히 끌어안는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구분하여 부르는 사람들은 정원이 아닌 원림(園林)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양산보는 어떻게 이곳에 원림을 조성하게 되었을까? 이는 그의 젊은 시절로 거슬로 올라간다. 양산보는 나이 열다섯 되던 해에 정암 조광조 문하에서 글공부를 했다. 그리하여 1519년 현량과에 급제하였으나 숫자를 줄여 뽑는 바람에 낙방하게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중종이 그를 친히 불러 위로의 말과 함께 지필묵을 하사하시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해 겨울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화순 능주로 유배되어 사약을 받고 죽은 것이다. 이에 양산보는 원통함과 울분을 참지 못하고 세상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산으로들어가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이곳에 소쇄원이라는 별서정원을 짓고 두문불출하며 스스로를 소쇄옹이라 불렀다. 그 후에도 외부에서 여러번 벼슬길에 나갈 것을 권해왔으나, 끝내 버티며 나가지 않고 한가롭게 산중에서 사람의 도리를 연구하며 지냈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2차선 도로를 건너면 계곡을 낀 길이 나온다. 표지판에 소쇄원 가는 길이라 적혀있다. 계곡을 오른쪽에 두고 걷다가 다리를 하나 건너면 계곡이 다시 왼편에 자리잡는데, 그 너머에 소쇄원이 있다. 아니, 그 전체를 소쇄원이라 해야 옳을 터이다. 소쇄원 내에는 건물이 두세 채가 전부다. 그 중 광풍각이 가장 눈길을 끄는데, 총 세 칸 집에 방은 한 칸이고 나머지는 툇마루다. 방보다 툇마루가 월등히 큰,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굉장히 이상한 구조다. 하지만 덕분에 툇마루에 앉으면 소쇄원의 모든 풍경이 곧 정원이 된다. 광풍각 내에는 영조 31년(1755) 당시 모습을 목판에 새긴 소쇄원도(瀟灑園圖)가 남아있어 옛 원형을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한 칸 방이지만 난방을 위한 아궁이도 있다.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같은건 보이지 않는걸 보니, 정말 이곳은 휴식공간이구나 싶었다. 사람이 살았다면 솥을 걸 부뚜막이라도 있어야 밥을 해먹을수 있지 않겠는가.
광풍각 뒤 담벼락에는 글이 새겨져 있다. 한자치인지라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았다. 소쇄처사양공지려(瀟灑處士 梁公之廬). 소쇄처사 양공의 조촐한 집이라는 뜻으로 송시열 선생의 글씨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둘러보면서도 정작 소쇄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하지 않은것을 한참 후에나 깨닫게 되었다. 소쇄원(瀟灑園)의 소쇄 양산보의 호에서 따온 것으로 물이 맑고 깊을 소자에, 씻다 깨끗하다는 뜻의 쇄가 합쳐진 말로 맑고 깨끗함을 의미한다. 세속과 단절하고 낙향한 양산보를 일컫는 말로도 풀이한다고 한다.
비가 온 뒤라, 마치 폭포와 같은 경사각을 가진 소쇄원 계곡의 물은 시원하다 못해 무섭게 흘렀다. 빨려들어갈 것만 같다. 좁은 다리 위를 지나며 아찔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물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시선은 담벼락 아래로 치닫는다. 소쇄원은 계곡의 물길 흐름을 막거나 바꾸지 않고서도 담을 둘렀다. 막돌을 쌓아 계곡 중앙에 기둥을 만든 덕분이다. 소쇄원에서 가장 유명한, 모두가 극찬해 마지 않는 구조다.
이쯤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밀려 왔다. 과연 우리의 역사에서 담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소쇄원도 그랬다.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가치관에서 담은 분명 불필요한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치장을 하고 의미를 부여해도 담은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몇가지 추측을 해 보았다. ①맹수로 부터 사람을 보호 ②하층민의 접근을 차단하는 권위의 상징 ③길 혹은 타인의 땅과 내 땅이 모호해지는 것을 방지 ④심리적 안정감 정도가 당장 내 머리에서 떠오르는 것들이다. 정보의 바다에 키워드를 넣어봤으나 의미있는자료나 해석도 잘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좀 더 신경을 써서 찾아보거나 건축가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 이와는 또 다른 의미로, 근래에 담장 없애기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잃어버렸던 공동체 의식이나 미덕을 되찾자는 의미라고 한다. 흔히 아파트를 그 예로 들듯,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작은 극복책이다. 물론 이런 개인화가 기존의 우리 전통과는 분명 다르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는 좀 더 고심해보아야 하는 문제인것 같다.
어디든 그렇지 않겠냐만은, 특히 소쇄원은 잠깐 관광으로 다녀가는 사람들은 그 진가를 알기는 힘들듯 하다. 물론 멋지고 아름답기는 하다. 하지만 그곳에 오래 머무르며 느끼는 바는 또 다를 것이다. 하지만 누가 이를 허락하리. 이제는 그 누구도 양산보가 되어 이곳을 바라보지 못하리라. 지정된 문화재는 사람의 발길을 제한한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을 품고 다시 길을 나섰다.
바로 근처에 가사문학관과 식영정이 있으니 가볼만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광주로 향한다. 체력 안배를 잘 해야 했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여행의 아쉬움은 바로 이런것들이다. 체력적인 한계 그리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보게 될 때 떨어지는 감각과 감흥. 이런 이유로 눈 앞의 것들을 종종 건너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광주의 마트에 들러 양식을 보충하고 남도로 떠날 것이다. 날은 덥고 비가 오락가락했다. 장마철 여행은 두배로 힘이 든다.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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