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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전국일주 캠핑

[전국일주 10일차] ② 고창 선운산 야영장의 이상한 이웃들

by 막둥씨 2013. 1. 7.

며칠전 익산에서 밤늦게까지 텐트칠 곳을 찾다가 결국 포기했던 기억 탓일까? 아침 격포 해수욕장을 떠나며 이미 우리는 고창 선운산 야영장에서 오늘 밤을 보내기로 마음을 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소사를 나올때 쯤엔 아직 시간이 일렀고, 바로 오늘의 목적지인 선운산 야영장으로 가기에는 무언가 아쉬웠다. 일단 목적지를 선운산으로 정해놓고 달리며 조수석에서 푸딩은 스마트폰을 이용, 검색을 했다. 그렇게 찾은 곳이 바로 곰소염전이다.

 

곰소는 마을 이름으로 이곳은 전북 부안군 진서면 곰서리다. 드넓은 논 옆으로 염전 또한 논처럼 펼쳐져 있었다. 무심코 지나친다면 그저 논이라 생각하고 지나칠 수 있을 정도. '이런 곳에 염전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염전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아마 만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때문이리라 여겼다. 

 

과거에는 소금이 아주 중요했다. 그래서 국가의 관리를 받았으며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 이후에도 한동안 소금은 전매품(국가만 팔 수 있는 물건)이었다. 곰소천일염의 생산시기는 3~10월말까지. 여름날씨엔 보름정도 걸리며, 매일 소금을 채취할 수 있다고 한다. 봄이나 가을의 경우는 3~5일마다 채취가 가능하다. 계절에 따라 소금도 달라지는데, 여름의 경우 결정이 크고 봄과 가을의 경우엔 결정이 조금 작은 반면 단단하다고 한다. 

 

 해가 쨍쨍했으면 좋으련만 하늘이 흐려 으레 염전에서 찍는 반영사진은 제대로 찍어보지 못했다. 게다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젯밤 잠자리에 누워 그 무서웠던 번개를 찍어보겠노라 카메라를 만졌더니 ISO가 3200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덕분에 내소사와 곰소염전 사진은 대부분 건져낼 수 없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오후 일찍 선운산 야영장에 도착했다. 이곳은 사이트가 산비탈에 계단식으로 형성이 되어 있었다. 텐트를 치고 선운사를 다녀오든지 할 작정을 했다. 우리 외에도 이미 대여섯 동의 텐트가 보였다. 어디가 좋을까 이쪽저쪽 자리를 알아보는데 저 높은 곳에 있는 취사장에서 낯선 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내용인즉 내가 텐트를 칠까 생각했던 그 자리에 텐트를 치면 물난리가 난다는 것이었다. 급기야 아저씨는 우리가 있는 곳까지 내려와서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으셨다. 우리는 그를 차종에 따라 그랜져 아저씨라 불렀는데, 알고 보니 그랜져 아저씨 부부가 원래 우리가 처음 텐트를 칠까 했던 아래쪽에서 캠핑을 하고 계셨는데, 지난밤 산에서 내려오는 빗물이 마치 계곡물처럼 불어나 그랜져 아저씨 부부의 텐트를 덮쳤고, 아저씨는 밤새 배수로를 파느라 한 숨도 못 주무셨던 것이다. 날이 밝자 부부는 가장 위쪽에 위치한 취사장 옆 시멘트 바닥 위로 이사하셨다고 한다.

 

아저씨는 '여기도 물이 덮쳐서 안 된다, 저기도 물이 덮쳐서 안 된다.' 하시며 걱정에 걱정을 더하셨다. 나는 온몸에 힘이 쫙 빠져버렸다. 텐트를 치기도 전에 낯선 아저씨의 경고를 듣고 겁이 덜컥 났던 것이다. 결국 이래저래 자리를 정하고 텐트를 치는데 한 시간이나 넘게 걸렸다. 땀이 뻘뻘 흘렀다. 괜히 야영장으로 왔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자위에 텐트를 치면 그렇게 물난리가 날 일은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막상 텐트를 다 설치하고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비록 잘못된 장소에 텐트를 치더라도 우리가 겪는 일은 텐트 바닥으로 물이 좀 들어오는 것 뿐이었다. 도착하자 마자 들은 아저씨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에 그만 지레 겁을 먹었고, 나는 마치 홍수나 가서 떠내려가는 것 마냥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쓸데없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 한숨을 돌리고 경직된 사고가 유연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주위가 제대로 시야에 들어왔다. 이곳 캠핑장에는 텐트가 대여섯 동 있었지만 빈 텐트가 많았고 사람이 있는건 고작 3동 정도였다.  나중에 보니 저 꼭대기 취사장에는 그랜져 아저씨가 계시고, 30대의 젊은 남성분이 한 분, 60대의 아저씨가 한 분 계신듯 했다. 특히 60대 아저씨는 온갖 살림살이가 다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 수개월은 이곳에서 사시는 것으로 보였다. 적막한 분위기에 음침한 그늘. 그리고 홀로 텐트에서 살고 있는 각각 30대와 60대의 남성 둘은 우리가 경계하기에 충분한 대상이었다. 무언가 여행이나 휴식을 즐기기 위해 이곳에 계신것으로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아까 내려왔던 그랜져 아저씨는 배수로를 제대로 파려면 60대 아저씨께 가서 삽을 빌리라는 조언을 해 주시며 '그분은 이곳에서 거주중인 매우 이상한 분'이라는 인상을 내게 심어주셨다.

 

 

이런 캠핑장 분위기에 영 마음도 편치 않고 시간도 남아 우리는 텐트와 차를 남겨두고 걸어서 선운사로 향했다. 가까운 거리였다. 엄청 큰 공원을 하나 넘자 곧 매표소가 나왔다. 그런데 선운사도 입장료가 비쌌다. 3000원.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어찌 안 갈 수 있겠는가. 매표소를 지나 펼쳐지는 계곡은 정말 멋있었다. 녹색잎의 반영이 고요한 수면위로 내려앉은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정작 경내에 들어서니 확트이게 넓은 것은 마음에 들었으나 너무 부산한 느낌이 들어 별로였다. 알고보니 다음날 108산사 순례기도인가 뭔가가 있어 행사용 천막이 여기저기 설치되고 있었다. 다음날 우리가 떠날 채비를 하는 동안 전국 각지에서 온 십수대의 버스가 우리 앞을 지나 선운사로 들어가는 것을 보니 부산을 떨 만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더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다면 어디를 가도 한글로 된 문화유적 설명이 일체 없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없기도 힘든데 일부러 치웠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입장료가 아까웠다. 아무런 설명이나 표식이 없어 보물로 지정된 지장보살을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아니 봤으나 모르고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나의 선운사에 대한 기억과 감흥은 그리 좋은 것이 못된다. 도솔암이라고 올랐으면 나았을텐데, 거리도 멀고 시간도 모자라 포기해야 했다.

 

다시 텐트로 돌아왔다. 저녁을 해 먹기로 했다. 그랜져 아저씨가 점령한 취사장 말고도 취사장이 하나 더 있었다. 시설을 둘러보고 싶어 그곳에 갔다가 나는 30대 청년의 것으로 보이는 계란 한판을 봐버렸다. 계란이라니! 나는 주체할 수 없이 흥분한 채 푸딩에게 달려갔다. "저기 계란이 있어!" 내 말을 들은 푸딩도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 글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겠지만 그 당시 우리는 그랬다. 단백질이 부족했다. 특히나 신선한 단백질이. 한여름 뜨거운 땡볕으로 달아오른 차에 모든 짐을 싣고 다녀야 했기에 냉장보관이나 최소한 서늘한 곳에 보관해야 하는 음식은 일절 못먹고 있던 터였다. 근처에 마트가 있는 곳에서 잠을 자는 경우라도 계란을 낱개로 구입할 수 있는 곳은 없었기에 우리에게 계란이란 그야말로 꿈의 식품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여행 일대기에 길이 기억될 딜(거래)이 시작됐다.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양파와 오늘 산 팽이버섯 정도. 나는 이것을 가지고 과감히 그를 찾았다. 그런데 그는 텐트에도 그리고 취사장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양파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저 멀리서 툭툭 하고 무언가를 터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다! 30대의 청년은 런닝 바람으로 자신의 차를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한 번도 말을 섞어보지 못한 낯선이와 대화를 해야 한다. 내성적인 성격인 나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계란만을 바라보고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그에게 다가간다. 5미터.. 4미터.. 3미터.. 2미터... 다음날 아침 우리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계란후라이를 먹을 수 있었다.

 

사람들과도 대화를 좀 텄다. 저녁을 준비하는 사이 준캠핑카 - 탑차를 직접 개조해 만든 캠핑카였다 - 를 타고 노년 부부가 이곳에 도착했다. 화려한 장비를 자랑하는 그들은 타프를 설치하고 모닥불을 지폈다. 우리가 가장 부러워했던 간이 샤워시설도 설치를 했다. 이 노부부와 수돗가에서 간단한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이 부부는 장기 거주중인 60대 할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사이셨다. 그들에 의하면 60대 할아버지는 학교에서 교장까지 하다가 퇴임해 '연금이 꼬박꼬박 500만원씩이나 나오는 부자'였다. 장기간 텐트에서 살고 계시는 현재의 행색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배경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노부부는 할아버지를 저녁에 초대했다. 우리에게도 샤워를 하고 싶음 샤워실을 쓰라고 하시며 저녁에 모닥불가로 놀러도 오라고 초대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들어보니 저기 꼭대기 있는 그랜져 아저씨가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다. 며칠째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있는데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간간히 녹음된 스님의 염불소리가 들려오는 것 외에 이렇다할 활동이 없으니 굉장히 의아하게 여겨지긴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은 오히려 그랜져 아저씨 부부였던 것이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아군도 아니고, 불과 몇시간 만에 경계의 대상이 180도 바뀌는 것을 보고 한 편으로는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여하튼 이제 더이상 캠핑장의 분위기가 신경쓰이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다행히 간밤에 비도 오지 않았다. 타프 대용으로 방수포도 이쁘게 쳐 놨고 비닐도 잘 깔아놓았고 배수로도 잘 내놔서 적당한 비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여기긴 했지만 가장 다행인 것은 아무래도 비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선운사에 대해 너무 안 좋은 기억만 가져가는 것 같아 조금 미안하기도 한데, 이곳은 동백꽃으로도 유명한 편이라  이른 봄에 다시 찾는다면 이번에는 이곳을 좋아하게 될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가의 봄에 맞이하게 될 본당 뒷편의 동백나무 숲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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