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포 해수욕장에는 무료로 텐트를 칠 수 있는 캠핑장이 있다. 수도시설과 음식물쓰레기 통도 있으며 화장실은 해수욕장 화장실을 이용하면 된다. 우리가 갔을때에는 아직 휴가철이 시작되지 않은 비수기였지만 성수기에는 샤워실도 운영할터이니 샤워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것을 떠나 물통을 들고 물을 구걸하러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마냥 기뻤다.
도착하자마자 텐트를 설치했다. 항상 민감하게 체크하던 날씨가 밤에 비가 올것이라 예보했기에 텐트위에 방수포를 타프 대용으로 덧씌우는 작업에 시간을 많이 보냈다. 나무에 줄을 매달아 방수포를 잘 고정해야 빗물이 텐트위로 바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땀을 뻘뻘흘리며 설치를 완료하고 밥을 해먹었다. 처음에는 된장찌개나 고추장찌개등을 해먹었는데 이제는 3분 미역국이나 북어국 등을 즐겨먹게 되었다. 한 번 그 간편한 맛에 빠지니 찌개도 손수 끓여먹지 않게 되는것 같았다.
이곳은 채석강이 있는 곳이다. 채석강은 쳔연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된 층암절벽 지역을 지칭한다. 나는 처음 채석강이 무슨 강 이름인줄 알았는데 푸딩이 설명을 해 줘서 알았다. 자기는 어렸을적 와본적이 있댄다. 많이 어렷을 적인지 자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바위가 겹겹을 이루며 넓은 지대에 펼쳐져 있는 모습은 마치 과자 누네띠네와 엄마손파이의 큰 부스러기들 같이 보였다.
그런데 채석강 위를 걸으면 내 발길 닿은 자리마다 무언가 샤샤샥 하고 움직인다. 정체는 바로 갯강구!! 발이 여러개 달린 생물치고 징그럽지 않은것이 없듯 - 그런데 새우나 게는 또 잘 먹는다 - 갯강구도 썩 유쾌하게 생기지는 않았다. 게다가 사람이 다가오면 어찌나 빨리 움직이고 개체수는 또 얼마나 많은지. 채석강 위를 걸으며 푸딩은 연신 내 옆에 바짝 붙어 비명을 질러댔다. 때문인지 채석강의 아름다움이나 신비함보다 갯강구가 더 각인이 되어버렸다.
이곳을 떠난 뒤 채석강 가까이에 윤구병 선생의 변산공동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이나 아쉬웠다. 물론 잠깐 들르는 정도의 일반인 방문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그의 저서를 보면 방문객이 많으면 손님맞이로 농사에 집중이 힘들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방문객들에게 농사를 시키는 묘수를 자아냈다.), 그래도 알고 그 땅을 밟았다는 것과 전혀 몰랐다는 것은 심정적으로 큰 차이가 있었다. 스쳐가며라도 눈여겨 볼 수도 있었을 터이니 말이다.
바닷가엔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수의 가족과 커플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수영복을 가져온터라 물놀이를 했다. 그간의 여행에서 쌓인 더위가 확 날아가는듯 했다. 근처의 민가에서 얻은 한 통의 물로 식사와 세수을 모두 해결해야 했던 요며칠을 생각하면 여긴 말 그대로 파라다이스였다. 물론 샤워시설이 없는것은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게다가 그동안 텐트를 친 곳이 대부분 인적이 드문 길가나 시골 마을의 정자 위였고 캠핑을 위한 공간이어도 우리 외의 사람들이 거의 없어 쓸쓸함과 외로움도 느끼고 있던 터였는데, 이곳은 사람들도 많고 대부분 휴양을 위해 온 사람들이라 활기넘치는 여유가 있었다. 처음으로 느끼는 색다른 분위기에 기분이 났다.
그런데 밤이 되자 분위기가 돌변했다. 캠핑의 맛도 분명 존재하긴 하지만 캠핑장 바로 앞에 위치한 리조트의 네온싸인은 알게모르게 빈부의 격차가 느껴지게 했다. 게다가 여기저기 가건물로 지어진 포장마차 등에서 틀어놓은 뽕짝테이프 소리나 노래방 기계 소리가 어찌나 시끄럽든지. 얼마 후 자연스레 트로트를 흥얼거리고 있는 나 자신도 싫어질 정도였다. 대한민국은 성수기에 조용한 곳이 진정 없단 말인가. 그리고 저렇게 크게 틀어놓은 뽕짝 음악이 과연 포장마차 매출에 영향을 줄까?
어둠이 내려앉으면 잠을 자야 한다. 그렇이 자연의 시간을 따르는 캠핑자의 순리다. -사실은 장비가 열악안 캠핑자의 순리 - 그런데 누운지 얼마 안돼 나는 또 하나의 지독한 캠핑자의 순리를 따라야 했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깜짝 놀라 푸딩에게 말을 걸으니 답이 없었다. 이미 골아떨어져 깨지 않았다. 나는 후레쉬를 들고 홀로 밖으로 나갔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우리처럼 오늘오신 아저씨 아주머니의 옆 텐트에서도 난리가 난 것 처럼 보였다. 나는 어두워지기 전 만약을 위해 텐트 주위로 물길을 이미 내 놓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돼 비를 맞으며 수로를 더 팠다. 타프 대용으로 쳐 놓은 방수포에서 떨어진 물이 벌서 도랑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번개도 계속 쳐 '이러다 번개를 맞는건 아니겠지?'하는 걱정도 들었다. 텐트아래로 물이 들까 노심초사하기도 했다. 비닐을 깔아놓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었다.
수로파기가 일단락되자 텐트로 들어와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고 누웠다. 천둥과 번개가 끊임없이 쳤다. 후두두둑. 텐트위로 쳐 놓은 방수포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천둥소리, 간격 없이 빛을 터뜨리는 번개가 내 얼굴위로 여과없이 드러났다. 텐트에서 야영하는 것의 묘미이기도 하지만 오늘만큼은 공포를 자아냈다. 여행 첫날 동물들이 지배하는 밤을 보낸 이후 두번째로 맞이하는 온전한 자연이었다. 자연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인간존재를 실감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런 와중에 깨지 않고 자는 푸딩은 더욱 감탄을 자아냈다. 나를 믿기 때문일까 아님 피곤했을 뿐인걸까? 내심 기대를 했건만 다음날 물어보니 후자에 가까웠다. 어쨋든 이런 노력 끝에 텐트에 물은 들지 않았으니 다행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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