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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전국일주 캠핑

[전국일주 13일차] ① 강진 읍내에서의 아침, 영랑생가

 

전국일주 13일차 이동경로 (7월 16일)
강진 월산마을 -> 영랑생가-> 다산초당 -> 백련사 -> 대흥사 -> 해남 만안리

 

7시가 되기 전 아침 일찍 월산마을을 나섰다. 마을회관에서 하룻밤 묵어간 것에 감사를 표하고 싶었으나 마땅히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몇 자 적은 포스트잇을 마을회관 유리에 붙여 놓고 마을을 빠져나왔다. 이장님 댁을 알았더라면 인사라도 드리고 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영랑생가는 강진 읍내에 있다. 그 덕에 10년 전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강진읍내 여관에 묵으며 영랑생가를 다녀왔었다. 그런데 10년이란 세월이 길긴 길었는지 영랑생가의 주변경관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 읍내 한쪽, 아파트와 문방구 틈에 있던 작은 집인 영랑생가는 주차장도 만들고 올라가는 길은 콘크리트 포장도로에서 천연화강석으로 시공한 길도 내어 마치 공원처럼 꾸며져 있었다. 생가터의 넓이도 넓어졌고, 영랑의 시가 적힌 비석의 위치도 바뀐 듯했다. 그런데 나는 정작 영랑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교과서에 실린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정도를 알고 있을 뿐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이 시 하나만 보았던 기억으로 영랑생가를 두 번이나 찾다니. 생각해 보면 신기할 노릇이었다. 그만큼 교과서와 기성교육의 힘이 크다는 방증일수도 있다. (아직도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는 표현의 모순을 분석했던 수업이 떠오른다.) 그리고 시내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은 덕도 크리라.

 

영랑생가에 나와서는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목욕을 했다. 근처에 목욕탕이 몇 개나 있다고 지도가 알려줬지만 정작 찾기는 어려웠다. 대부분 문을 닫은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 만에 남도대중사우나를 찾았다. 우리는 만나는 시각을 정하지 않고 각자의 탕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여자가 더 오래 걸리는 법이니, 나는 최대한 천천히 씻고 온욕을 즐기다 나왔다. 그럼에도 역시나 먼저 나온 것은 나였다. 물어보니 푸딩은 탕에서 제대로 온욕도 즐기지 못했다고 했다. 여자는 참으로 꼼꼼하게 씻나보다.

 

 

이렇게 아침부터의 목욕으로 나른한 몸을 이끌고 다산초당으로 향했다. 다산초당 일대는 강진 여정의 메인 디시다. 그렇다면 영랑생가는 에피타이저쯤 될 터다. 너무 배부르게 먹을 필요는 없다. 적어도 아직 ‘위대’하지 못한 초보 답사자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