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일주문 지나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초가집이 하나 보인다. 바로 수덕여관이다. 그리고 이 수덕여관을 중심으로 이응로 화백과 그의 본부인 박귀옥 여사, 만공스님, 일엽스님 그리고 나혜석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재 서울경제신문 부회장으로 있는 임종건의 글을 읽으면 수덕여관에 얽힌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는데 도무지 원출처를 찾을 수가 없다.
그의 글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한국 최초의 신시 여류시인 김일엽은 1928년 나이 33에 속세를 접고 수덕사 탄옹스님으로부터 수계를 받고 불가에 귀의했다. 한편 1934년 이혼 후 극도로 쇠약해지고 지쳐있던 나혜석은 수덕여관에 짐을 풀고 김일엽과 회포를 푼다.
여성을 옥죄는 사회에 한없이 원망스러웠던 이혼녀 나혜석은 일엽에게 본인도 중이 되겠다고 하지만 일엽은 만류한다. 결국 마지못해 일엽은 나혜석에게 만공스님과의 면담을 주선해 주지만 만공은 "임자는 중노릇 할 사람이 아니야"라는 말로 일언지하에 거절을 한다.
하지만 나혜석은 포기하지 않고 수덕여관에 5년이나 머무르며 중이 되려함과 동시에 그림 그리기에도 열중한다. 이때 나혜석과 특별한 교분이 있는 청년화가 이응로도 자주 찾아와 이들과 함께 그림에 대한 이야기와 실습으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충남 홍성이 고향이고, 해강 김규진 문하에서 그림에 대한 열정에 불타고 있던 청년 이응노에게는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하고 돌아온 나혜석은 둘도 없는 선배이자 스승이어서 자주 수덕여관에 들르다 결국 같이 기숙까지 하게 된다. 이 때 이응로는 파리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된다.
선배 화가 나혜석과의 인연으로 수덕여관에 정이 들어 버린 이응노는 1944년 나혜석이 이곳을 떠나자 아예 수덕여관을 사들인 다음, 부인 박귀옥에게 운영을 맡기고 6.25때에는 피난처로 사용하는 등 6년간 살면서 수덕사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화폭에 옮긴다.
나혜석으로부터 꿈에 그리던 파리 생활과 그림 이야기를 들은 이응노는 1958년 드디어 21세 연하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박인경과 함께 파리로 떠나 버린다. 홀로 남은 그의 본부인 박귀옥이 여관을 운영하나 글자 그대로 소박떼기 청상과부가 되어 버리고 만다. 머물다 미련 없이 떠나 버린 두 사람과는 달리, 박귀옥 여사는 변치 않는 애정과 절개로 이국땅의 남편을 그리며 수덕여관을 지킨다.
박귀옥여사가 외로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데, 뜻하지 않게 이른바 동백림사건으로 1968년 이화백이 납치되어 형무소에 수감된다. 박귀옥은 한결같은 지극정성으로 이화백의 옥바라지를 한다. 출옥 후 이화백은 수덕여관에서 몸을 추수리면서 그녀 곁에 잠시 동안 머무른다. 여관 뒤뜰에 있는 너럭바위의 추상문자 암각화는 이때 새긴 것이다. 이화백은 "이응로 그리다"라는 사인까지 남겨 놓은 뒤 "이 그림 속에 삼라만상 우주의 모든 이치가 들어 있다."고 말하고는 파리로 또 훌쩍 떠나버린다. 1
박귀옥 할머니는 이 암각화를 바라보며 어느덧 팔순을 앞둔 세월까지 남편을 기다려 온다. 그러나 고암은 1992년 귀국전시를 앞두고 파리에서 눈을 감고 만다. 장례식에도 가 볼 수 없는 박귀옥은 마지막 소원으로 이응로 화백의 유골이라도 돌려받아 자신이 죽으면 함께 묻히고 싶어 한다.
그녀는 고암이 파리로 떠날 때 그의 출세 길에 지장이 될까 봐 이혼수속을 허락해 준 것이 그렇게 후회스러울 수가 없다. 이제 그녀는 고암에 대해 아무것도 주장할 수 없는 법적으로 남남의 처지였던 것이다. 그녀의 방에는 젊은 시절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과 고암이 남겨준 갈대꽃이 핀 강가에 홀로 서있는 오리그림이 걸려 있다. 고개를 내밀고 어느 곳인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꼭 자신의 처지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2001초 수덕여관 주인 박귀옥 여사가 92세를 일기로 돌아가신다.
원글을 보면 위의 인물 외에 일엽스님의 아들인 일당스님의 이야기도 더 포함되어 있다. 또 추상문자 암각화를 새길 당시 이화백의 감정을 추측한 부분이 나오는데 쉽게 공감할 수는 없어 과감하게 드러냈다. 그리고 글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다소 박귀옥 여사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아마 근래까지 살아계셨기 때문에 인터뷰 자료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추측한다.
고암 이응로. 그의 미술학계에서 입지가 어떠한지는 사실 문외한인지라 잘 모른다. 그저 그가 그린 전시관에 있던 수덕사 수묵화가 마음에 들 뿐이다. 하지만 살아온 행적에서 본 그의 행동은 그리 본받을 만한 것이 못된다. 유홍준 선생은 그를 애증한다고 말하며, 그의 삶은 미워하고 그의 예술은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7072119195&code=100100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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