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피천득은 그의 수필집에서 아사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아사코와 세 번 만났다. 두 번째 만남 까진 특유의 풋풋했던 감정과 떨어질 수밖에 없는 아련함이 묻어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남을 그는 후회했다. 두 번째 만남 이후 아사코는 결혼을 했고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더는 젊은 날의 아사코가 없었고, 기억 속의 그녀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옛 시절의 그 아련한 감정은 끝내 지독한 현실로 덧칠 돼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로 접어들어 많은 누리꾼들이 피천득과 아사코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했다. 골자는 상대방인 아사코의 의사가 확인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모두 그 혼자만의 착각 내지는 망상일지도 모른다는 것인데, 남성 사회에서 그런 일은 사실 비일비재하다. 웃음 한 번 주었다고 2세 계획까지 생각하는 뇌내 망상 스토리는 흔하다. 물론 나도 유경험자다.
그럼에도 피천득을 이해한다. 그가 가졌던 감정은 진심이었을 것이며, 그것은 온전히 자기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며 자연스레 기억이 미화되었어도 좋다. 누구나 그런 추억 한 두 개쯤은 가지고 있을 테고, 가져도 되니까. 3자에 피해 준 것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훗날의 피천득에게 중요했던 건 아사코 그 자체라던가 그녀와의 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미화된 기억이 산산이 부서지는 일이었던 것 같다. 그게 슬펐던 것이다.
더 나아가면 우리는 현재에 비춰 과거를 재해석하기도 한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는데, 개인의 영역에서도 유효하다. 특히 성숙한 뒤 바라보는 치기 어린 시절들은 이불킥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때로 함께 했던 이들에게 그때는 잘 몰랐던 다양한 감정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리도 나의 재발견된 추억들은 대부분 미성숙한 나로 인한 미안함과 성숙한 상대방에 대한 고마움이다.
5월 나의 기억 속 아사코가 결혼을 한다.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보여 너무나 기쁘다. 하나 피천득과 달리 내게 세 번째 만남은 없다. 그래서 혼자 보는 글로 쓸 뿐이다.
“진심으로 축하해. 그리고 고마웠어, 아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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