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삶은 얼마나 쳇바퀴인가!
출근길에 한번씩 착찹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매일 아침마다 같은 사람을 만날 때다. 같은 시각 같은 전철 같은 사람. 시계바늘은 평생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구심점에 붙잡힌 원반경을 절대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시계가 아침 일곱시면 시계바늘이 어김없이 숫자 7에 다다르는 것처럼 인간 역시 부단히 움직이는 역동적인 삶이구나 착각할뿐 결국 "쳇바퀴 속 다람쥐의 삶을 사는구나"하고 순간 깨닫고는 한다. 출근길 전철에 매일 만나는 타인을 통해 나 역시 그와 같다고 깨달으니 우울하기 그지 없다. 거울을 본 모습이다.
그런데 최근 만난 출근길의 한 다람쥐는 내게 다른 시선을 제시해주었다. 아침 출근길 3호선 종로3가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는 그. 시각장애인이다. 그는 3호선 오금행 열차에서 내려 5호선 광화문역 방향의 열차를 탄다. 인상적인건 환승역인 종로3가의 어려운 환승 구조다. 일반인이게는 평범할지 모르겠으나 계단이 많아 시각장애인에게는 고역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그 어려운 일을 거침없이 단박에 해낸다. 길어봐야 5분남짓 만날 뿐인 그는 그 5분간 55개의 계단 층계를 오르내리고, 1번의 에스컬레이터와 함께 수많은 인파를 지나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청력과 막대 하나에 의지한 채 해내는 것이다. 현실이었으나 너무나 완벽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사람이 시력없이 저렇게 완벽하게 살 수 있는 존재였나.
영화 데어데블에서 주인공 벤 에플렉은 사고로 시력을 잃는다. 대신 동물적인 청력과 그 청력을 바탕으로 한 사물 인지력, 그리고 민첩함과 괴력이 생긴다. 그는 사고의 고통을 딛고 일어나 히어로가 된다. 영화의 개연성은 새당 작품 내에서 자유롭다. 생각해보라. 큰 사고를 당하면 보통 죽거나 큰 장애를 입게 되지 그에 상응하다 못해 인간의 상식과 물리법칙을 초월하는 능력을 얻지는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영화들을 보며 결코 비현실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에서도 흔한 남녀간의 사랑이, 그 사랑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 어설프게 묘사됐을때 비현실적이라 지적한다.
다시, 쳇바퀴 속 종로3가에서 벌어진 일은 지극히 현실이다. 특히 그에게는 꽤 큰 현실의 벽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온몸으로 이겨내고 있는 현실이 내게는 영화보다도 더 비현실적이게 느껴졌던 것이다. 문득 쳇바퀴의 삶을 불평할뿐 내 앞에 펼쳐진 실제 세계에 얼마나 관심있었나 반성하게 되는 대목이다.
그에게 출근길은 그에게 펼쳐진 현실의 무겁고 단단한 벽을 깨고 세상과 만나 결국 평범하게 살아내는, 단순한 일상이면서 특별한 나날들일 것이다. 그렇다. 그에게 종로3가 환승역은 결코 쳇바퀴가 아니었고, 그 역시도 다람쥐가 아니었다. 나는 대체 무엇을 무료히 반복되는 일상이라고 불렀던 것일까. 혹은 종로3가에서 바라본 실제를 대체 왜 비현실적으로 느꼈는가.
결국 다람쥐였던건 오직 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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