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cc) via 제동환 / flickr.com
속옷이 가관이다. 너덜너덜한 건 기본이고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다. 이 상태가 된지도 벌써 오래되었지만 지금까지 견뎌왔다. 평소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정도는 아니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한 수도승의 책이다.
<프랑스 수도원의 고행>은 향적 스님의 프랑스 카톨릭 수도원의 체험기다. 스님과 카톨릭 수도원이라니. 꽤나 흥미진진한 조합이 아닌가? 그렇다고 거부감 들 정도는 아니었다. 왜냐면 카톨릭과 불교는 개신교와 달리 타 종교에 대해 포용적인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군대 있을 적 주말 종교 참석 시간에 나는 절에 다니다가 성당으로 갈아탄 적이 있었다. 나의 군 동기는 교회(개신교)에서 성당으로 갈아탄 친구였다. 종교의 역사나 맥락을 보자면 내가 더욱 몰매 맞을 변절자(?)였지만, 성당 선생님께서는 오히려 내 친구를 보고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 “성당이나 절 사이를 오가는 사람은 많지만... 교회(개신교)에서 온 사람은 거의 없어요!”
아무튼, 향적 스님의 경험은 꽤나 흥미진진했다. 실제 에피소드는 20년도 훨씬 전인 1989년~90년대의 것이었어도 말이다. 그 중 내가 너덜너덜한 속옷을 입고 있는 이유는 향적 스님이 수도원 수사들의 청빈함에 크게 놀라는 대목 때문이었다. 수도원의 방 자체도 세면기와 책상, 스탠드, 침대가 전부인 것(심지어 침대는 사과상자 두 개에 베니어판을 올려놓은 것)도 그랬지만, 수사들은 양말은 물론 떨어지고 해져 찢어진 속옷까지 몇 번이고 천을 덧대며 기워서 입었던 것이다. 아마 한국에선 걸레로도 활용하지 않을 정도로 누더기에 가까웠을 것이다. 향적 스님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 한국의 수도승들은 양말도 잘 안 기워 입는 것에 비하니 크게 부끄러웠다고 한다.
나는 수사도 수도승도 아니다. 하지만 나의 존재가치를 소비에서 찾지 않는다면, 이런 종류의 실천은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약간은 불편함도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행동의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수사와 수도승이 찾고 있는 어떤 진리나 깨달음의 경지일까? 분명 그런 것들은 아니지만(힘들지만), 어느 정도 내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기 위한 노력의 하나라고 할 수는 있을 듯하다. 뭐, 게다가 일찍이 많은 덕망 높은 선생들이 “버리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나 “무소유”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아무도 관심 없을 나의 누더기 속옷에 대한 포장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자. 아직 더 입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든다. 허리의 고무 밴드도 늘어날 대로 늘어났다. 방금 새로운 속옷을 주문했다. 개당 4000~5000원 가량이다. 부디 튼튼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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