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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잡설

신비의 소나무에서 불운을 기다리며

by 막둥씨 2014. 2. 2.

우리 동네 근처에는 ‘신비의 소나무’가 있다. 물론 나무 자체도 바위 돌을 움켜쥐며 뿌리를 내린 모양세가 자못 신비함을 자아내지만, 이 나무가 유명해 진 데에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예전 인근 마을의 어느 집 어머니가 자식들이 잘 되길 바라며 날마다 이 나무에 기도를 드렸는데, 신기하게 자식들이 모두 하나같이 판검사 등이 되거나 어려운 고시를 패스했다는 전설 아닌 사실이 그것이다. 그 후 이 소나무는 소원을 들어주는 영험한 기운이 있다고 알려지며 지역의 명물이 되었다.

설 연휴 내내 집안에만 있던 터라 연휴 셋째 날 바람도 쐴 겸 드라이브를 했다. 어차피 동네길이라 나는 잘 때 입는 편안한 옷에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 이곳저곳 가보다가 신비의 소나무까지 당도했다. 개인 적으로는 두 번째 방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날 소나무의 앞까지 가보지는 못했다. 소나무가 보이는 언저리에서 그저 바라봤을 뿐이다. 이유인즉, 그곳에 도시에서 온 중년의 여인이 있었는데 너무나도 진지한 표정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문제 인 것 같았다. 여인은 나무뿌리를 만지기도 하고 돌탑을 쌓기도 했으며 이어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기도가 끝나자 지역 주민에게 나무의 효염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 여인의 남편으로 보이는 분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뒷짐을 진 채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먼저 내려가 버렸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지만, 그 분위기가 너무나 진정성으로 가득 차 있어서 슬리퍼를 끌고 온 내가 차마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머리도 식힐 겸 바람 쐬러 나갔다가 오히려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어릴 적부터 나는 무언가를 진심으로 기도해본 적이 없다. 굳이 뽑으라면 배가 너무 아픈데 화장실이 멀리 있을 때, 화장실까지의 여정이 무고하길 빌어본 적뿐이다. 단체로 무언가를 염원하거나, 여행에서 맞이한 신비한 효염이 있다는 각종 조각상, 나무 혹은 종교적인 절대자의 상징물 앞에서 나는 그간 ‘세계의 평화’를 빌었을 뿐이다. 어쩌면 정말 굴곡 없이 살아온 인생인지도 모른다.

나는 스무 살의 나이에 한동안 굉장히 불안했던 적이 있다. 그동안의 인생이 너무나 평탄하고 행운도 많이 찾아와 언젠가는 큰 불행이 닥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행운만 깃든 인생도 없고 불행만 깃든 인생도 없으니, 평생을 놓고 보면 어느 정도 행운과 불운의 균형이 맞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간 행운만이 깃들었으니 이제 불행이 올 차례라 느껴졌다. 그렇게 걱정에 몇 년을 보내다 어느 순간 이 고민 자체를 가맣게 잊어버렸는데 그게 이날 여인을 통해 다시 생각났다.

나도 언젠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멎게 할 만큼 진정성 있으며 간절한 바람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반드시 그럴 테다. 그 때 그 어려운 상황을 현명하게 헤쳐 나갈 수 있길. 혹여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오히려 훌훌 털어버린 채 나머지 인생을 120퍼센트 꽉 차게 살 수 있길. 그리고 내 손이 나와 함께하는 사람의 손을 꼭 붙잡고 있길. 바래, 본다. 언젠가 다가올 불운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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