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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잡설

서른일까?

by 막둥씨 2014. 1. 19.

나이가 바뀌고 마신 첫 커피에 담긴 세상

친구들이 서른이 되었다. 나는 아직 아니다. 1 ,2월에 태어난 사람은 나이를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 굳이 몇살이냐 묻는다면 나는, 29.5세랄까?

나이의 앞자리가 바뀐다는건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 스무 살이 되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의 반열에 올라서고, 마흔이 되면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며, 오십이 되면 이제 나도 늙었구나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서른도 어렸을 적바라보았을 때는 꽤나 의미 있는 나이였다. 그런데 막상 문턱에 들어서고 보니 정말 보잘것 없다. 옛날처럼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는 적령기가 아니기 때문이라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뉴스에서도 종종 떠들듯 대학생활이 길어지고 취업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청년들이 독립을 빨리 하지 못하고 부모슬하에 있는 기간이 길어졌다. 이제 서른은 그저 이십대의 연장이 되었다.

김광석은 '서른 즈음에'라는 명곡을 남겼다. 군대 갈 친구를 노래방에 불러놓고선 '이등병의 편지'를 불러주듯, 서른에 가깝거나 서른이 된 청춘들은 노래방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서른 즈음에'를 불러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기는 커녕 같이 있던 친구들에게 욕을 먹곤 한다. 김광석의 서른은 어떠했을까? 그는 기대와 달리 머물러 있지 않는 청춘을 바라보며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고 노래했다.

오늘날의 서른도 헛헛하다. 그러나 김광석의 서른처럼 쓸쓸하거나 공허하지는 않다. 당시의 서른은 한 번 채워졌다가 다시 비어버린 나이였지만, 지금의 서른은 아직도 채우기 바쁜 나이이기 때문이다. 있다가 없어진 빈자리는 크지만, 원래부터 없었던 빈자리는 그리 크지 않다. 적어도 내생각은 그렇다. 나의 서른(혹은 서른 가까운)은 그렇다.

냉장고의 찬거리가 떨어졌다. 집에 갈때 계란 한 판 사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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