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무작정 가기에는 힘들 것 같아 인터넷을 통해 사전 조사를 했고, 그렇게 결정한 코스는 다음과 같았다.
사당-수원역 / 7770번
수원역 환승센터 -백암정류장 / 10번
백암정류장-죽산터미널 / 10-1번
죽산터미널-광혜원정류장 / 17번
광혜원-진천 / 무번호
진천-청주 / 711번(상당공원)
청주(상당공원)-미원 /211번
미원-충북 보은군
보은-화령
화령-상주 / 300번
상주-선산터미널
선산터미널-금오산네거리 / 120번
금오산네거리-왜관정류장 / 111번
왜관남부정류장-만평네거리 / 250번
인지초교-동부정류장 / 708번
동부정류장-영천공설시장 / 555번
영천공설시장-아화정류장 / 753번
아화정류장-경주역(우체국) / 300번
영국제과-모화역 / 600번
모화역-공업탑 / 412번
공업탑-노포동터미널 / 2300번
준비물
핫팩, 지도, 수첩, 필기구, 인쇄물(기차표포함)
후불교통카드, T머니
현금(천원권, 만원권)
카메라(충전기, 여분배터리), 휴대폰충전기
서울에서 부산까지, 미완의 시내버스 여행
이번 여행은 크게 두 가지의 주요한 테마가 있었다. 하나는 가장 메인되는 것으로서 시내버스만을 이용,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여행길에서 지인들을 만나 맛있는 밥을 먹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내버스 여행을 장난삼아 무전취식 여행이라고 불렀다. 사실 밥도 밥이지만 오랫동안 보지 못한 사람들을 본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1년에 꼭 한 번은 찾아온다는 13일의 금요일이었다. 서양권에서는 불길한 날이겠지만 우리는 아니니 사실 별 생각이 들진 않았다. 날씨는 주중에 비해 풀려 견딜만한 추위였다. 새벽 5시 20분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6시가 되기 전 집을 나섰고 첫 출발 정류장인 사당역으로 향했다.
사실 과연 잘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조금 들었다. 찾아본 바로는 하루 만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들의 일정표를 보건대 쉽지 않은 것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우리는 애초에 이틀을 잡고 부산까지 가기로 했다. 첫 날의 목표치는 대구였다.
대구가 중간은 아니었다. 사실 첫 날 대구까지 간다면 둘째날은 비교적 쉽게 부산에 당도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렇다면 왜 첫 날의 목표가 대구였을까? 그것이 바로 두 번째 여행의 테마인 ‘무전취식’을 위함이었다. 첫 번째 만나야 할 지인이 대구에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시내버스여행 코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수원 천안과 대전을 거쳐 영동에서 추풍령을 넘어 김천 구미 대구 경주 부산으로 빠지는 코스와 수원 진천을 거쳐 상주 넘어가 선산 구미에 당도하는 코스가 그것이다. 예전에는 대전을 거쳐서 많이 갔지만 요즘은 상주를 가쳐서 가는 것이 버스를 타는 횟수도 적고 빠른 듯 했다.
우리는 당연히 후자를 택했다. 그런데 항상 산맥을 넘거나 도를 넘어가는 길에는 버스가 많이 없다. 전자의 코스에서 영동에서 김천을 넘어가는 추풍령이 첫 고비라면 후자의 코스에서는 충청북도에서 경상북도 상주로 넘어가는 길이 걱정이었다. 처음 계획했던 코스는 용화를 거쳐서 상주로 넘어가는 일정이었는데 출발 전날 무심코 하던 검색에서 용화에서 상주로 넘어가는 버스가 하루에 고작 두 대 뿐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결국 우리는 청주를 거쳐 보은에서 화령을 거쳐 상주시내로 들어가는 코스를 택했다. 그나마 버스가 가장 많은 길이였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가지 걱정 탓인지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 피곤했음에도 졸지 않고 사당역에 도착했다. 몇 번 왔었던 곳이라 친숙하게 수원역행 버스인 7770번 승차장으로 향했다.
사당->수원역 환승센터 (7770번, 경진여객, 06:54~07:30, 2000원)
승차장에 가니 7770번 버스가 대기중이었다. 당장 출발할 기세는 아니었기에 다소 여유롭게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런데 내 앞에 타던 아저씨가 운전기사 아주머니와 목적지를 이야기 하더니 다시 내리는 것이 아닌가? 뭐지? 분명 하나의 노선으로만 운행할 텐데 이상했다. 그래서 나는 버스에 오르며 “수원역 가죠?”하고 재차 물으며 버스카드를 찍었다(아무리 확인차원이라고 하지만 대답도 듣기 전에 카드를 찍을거면 왜 물어본건지 지금 생각하니 우습다). 기사 아주머니는 갑자기 당황하며 내 카드를 막으려 손을 뻗었다. “북문에서 회차해요!!” 기사님의 손짓은 이미 늦었었지만 다행이 단말기가 카드를 다시 대라고 말하는 바람에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다음 버스를 탔다. 그런데 버스정보 어플에서 아무리 찾아봐서 북문이 나오지 않았다. 여행이 끝나고 여행기를 정리할 때에야 나는 북문이 장안문을 지칭하며 기사 아주머니가 회차 할 곳은 장안공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 출발부터 삐걱거릴 뻔 했지만 겨우 면할 수 있었다. 역시나 불안감에 버스에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수원역을 향해 달렸다.
수원역 환승센터->백암정류장 (10번, 경남여객, 07:50~09:38, 환승 800원)
수원역 환승센터에 일행보다 먼저 도착했다. 날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겨울인지라 춥긴 추웠다. 10번 버스를 한 대 보내고서야 일행이 도착했다. 다행이 아직 30분이 지나지 않아 환승이 됐다.
공복에 버스를 오래타서인지 살짝 멀미기가 있었다. 집 앞 김밥xx에서 사온 참치김밥을 먹었다. 10번을 타면 백암까지 한 번에 가긴 하는데 종점에서 종점인지라 엄청 멀었다. 버스 창 위에 붙은 노선도를 보니 40~50정거장은 족히 돼 보였다. 가는 동안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일일이 세어 보았더니 세상에! 무려 80정거장이 넘었다.
어제 최종점검을 하며 우리는 우리가 지나가는 정류장 수가 총 몇 개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대략적으로 추측컨대 300~400개 가량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첫 버스에서만 무려 80여개 라니. 앞으로 스무번은 더 타야 할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수의 정류장을 지나야만 했다.
백암정류장->죽산터미널 (10-1번, 경남여객, 09:44~10:07, 환승 300원)
내린 장소에서 바로 다시 타는 방식으로 청주까지 갈 수 있다고 자료조사에서 봤었는데 막상 백암에 내리고 나니 정류장 표지판 하나 없는 길가였다. 처음엔 당황했는데 잘 둘러보니 건너편에 허름한 건물의 정류장이 있었다.
길을 건너 정류장에 가니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둘러 본 결과 우리가 가려는 광혜원은 반대방향 즉 우리가 내린 쪽에서 타야 하는 것 같았다. 정류장 표시가 없어도 일단 반대방향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정말 정확하게 우리가 내린 그 자리에 조그맣고 귀여운 10-1번 버스가 들어왔다.
처음엔 손님이 우리 뿐이었으나 중간중간 할머니들이 탑승했다. 작은버스의 운전기사님과 할머니들이 이런 저런 짧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풍경도 논 밭이 펼쳐지고 조금 시골의 정취가 느껴졌다. 광혜원에서 갈아타야 할 버스는 10시와 11시 30분에 있었다. 아무래도 10시 차를 타기에는 몇 분 늦을 것 같았다. 정말 간발의 차로 한시간 반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만 더 일찍 나올껄 하는 마음이 자꾸 들었다.
죽산터미널->광혜원 (17번, 백성운수, 11:30분~11:52, 1000원)
하차하고 나자 사진에서 봤던 낯익은 편의점이 눈에 들어왔다. 맞게 내렸구나 싶었다. 고개를 돌리자 정말 허름한 버스 정류장이 눈에 들어왔다. 정류장 안에 들어가 시간표를 확인하니 역시 다음 차는 11시 30분이었다. 우리는 한 시간 이십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자주 있어 눈 앞을 여러차례 지나가는 고속버스가 얄미웠다.
화장실이 가고팠는데 정류장은 허름할 뿐 더러 딱히 화장실이 보이지 않았다. 시간도 많이 남았겠다 읍내 안쪽을 걷다 보니 도서관이 보여 그곳에서 볼일을 봤다. 다시 정류장쪽으로 돌아와도 시간은 많이 남아 있어 우리는 김밥헤븐에서 돈까스를 하나 시켜 먹었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미리 사둔 핫팩 중 신발에 넣어서 쓰는 것을 개봉했다. 발바닥이 따뜻하니 좀 살 것 같았다. 우리가 타야할 17번 버스는 사실 도착할 때부터 정차되어 있었다. 출발 십여분쯤 전이 되자 기사님이 시동을 걸었고 탑승을 할 수 있었다.
기껏해야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젊으신 버스기사님은 내가 이제 것 살며 본 기사님들 중 최고로 친절했다. 어르신들이 오르내리실 때마다 인사를 드리고 부축해 드렸고 무거운 짐도 들어 주셨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각 시골 정류장에 설 때마다.
광혜원->진천 (번호없음, 진천여객, 12:12~ , 1600원)
광혜원 또한 지은지 수십년은 돼 보이는 오래된 정류장이었다. 버스터미널 이라곤 하지만 버스가 따로 터미널로 들어오는게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길에 정차할 뿐이었다. 날씨도 추웠고 눈발도 날리고 있어 일단 터미널 건물 안에서 기다렸다.
버스는 지역을 넘어가는 탓인지 추가요금이 붙었다. 지금까지 왔던 것 처럼 무심코 카드를 찍었다가 진천까지 가려면 추가요금이 있다는걸 나중에 알고 다시 한 번 더 찍었다. 시골길을 한참 달리다 보니 진천읍내가 나타났다. 초입에 진천버스터미널이 있었고 우리는 그 사실을 몰랐기에 읍내를 한 바퀴 돌고 버스가 다시 터미널에 들어가서야 내릴 수 있었다.
711번을 알아왔는데 청주역으로 향하는 714번이 정차해 있었다. 도청쪽에서 타야 한다는걸 어렴풋하게 알고 있는 정도라 도청으로 가는지 물어보니 다음에 들어오는 711번을 타야 한다고 했다. 준비해 온 뜨거운 차를 마시며 기다기다가 711번에 탑승했다.
진천->청주(상당공원) (711번, 동일운수, 13:00~14:00, 3150원)
상당공원에 내려서 도청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211번 버스가 없었다. 한참을 헤매다 다시 상당공원에 가보니 211번 버스가 있었다. 내린 자리에서 탔으면 되는 것을 괜히 헤맨 것이다. 덕분에 시간을 조금 지체했다. 철저히 조사하지 못한 탓이리라.
청주(상당공원)->미원 (211번, 우진교통, 14:34~15:28, 2800원)
차는 곧게 뻗은 왕복 4차로를 쌩쌩 달렸다. 새벽부터 출발해 추위에 떨었더니 피곤했었나 보다. 가는 내내 고개를 푹 숙인 채 졸았다. 미원에 접어든 것 같았으나 도무지 어디에서 내려야 할 지 몰랐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우체국 앞에서 내렸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결국 회차하는 종점에서 내렸는데 그곳엔 말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두세정거장을 걸어 다시 우체국쪽으로 돌아왔고 지나가는 어르신들에게 물어보았다. 큰 길 쪽으로 가면 터미널이 있다고 했다. 왜 우리가 타고 온 버스는 터미널에 들어가지 않은 것인가 의아해 하며 터미널로 갔다. 그런데 그곳은 고속버스를 탈 수 있는 터미널이었다. 보은으로 향하는 고속버스는 매우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사람들에게 물어 결국 시내버스는 새마을 금고 앞에서 타야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마냥 기다렸다. 해도 점점 서녘으로 기울어가는데다 그늘인 정류장 거기에 바람까지 더해져 매우 추웠다. 결국 우리는 한 시간이나 넘게 기다려서야 보은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미원->보은 (번호없음, 신흥운수, 16:42~ , 1050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조금씩 어긋나 버스를 기다리다 보니 아직 경상도에 접어들지도 못했는데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보은 가는 버스 안에서 스마트 폰으로 차시간을 검색해 보았다. 우리는 보은에서 화령까지 가서 상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상주까지만 가면 어떻게는 구미나 대구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보은에서 화령까지 가는 버스는 두 시간 마다 있었다. 그런데 화령에서 상주로 가는 막차가 6시 45분이었다. 보은에서 화령까지는 갈 수 있지만 화령에서 상주로 넘어가지 못할 것 같았다. 화령에서 1박을 할 만한 곳이 있을지도 미지수였고, 만약 1박을 한다고 해도 다음날 부산까지 가야 할 일정과 만나야 할 사람들 생각에 우리는 고민했다.
마치며
결국 보은에서 상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아화에서 경주까지 가는 코스가 어렵기로 소문이나 그곳에만 신경을 썼지 경상도로 넘어오는 또 하나의 난코스를 신경쓰지 못한 것이다. 결국 우리의 시내버스 여행은 미완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시도였다. 비록 부산까지 당도하지는 못했지만 하루 만에 빠듯하게 가서 기록을 세우는 것 보단 천천히 느긋하게 가는 게 의미 있는 여행 같았다. 완행의 묘미는 단순히 버스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끝으로 여행길에 만난 모든 낯선 사람들 그리고 나중에 대구와 부산에서 만나 맛있는 식사를 제공해 준 지인들께도 감사한다. 덕분에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좋은 기억 한가득 안고 돌아갈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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