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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기고

비(非)반려인의 해시태그

반려인구가 늘면서 반려인과 비(非)반려인의 갈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기사 검색을 조금만 해 보아도 이런 ‘반려인 VS 비반려인’ 대립 사례는 터진 봇물마냥 쏟아져 나옵니다. 새로운 사회문제라는 특성상 실제 현실에서 나타난 문제의 크기보다 조금은 유별나게 회자 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반려인구의 비중이 매우 커졌다는 사실, 그에 비하여 관련 제도나 인식, 인프라 등은 여전히 미약하다는 현실에 비추어 보건대 앞으로 나타날 문제의 크기는 더 컸으면 컸지 덜 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동물입니다만’ 꼭지에서는 반려인의 시각이 아니라 지금까지 한 번도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 없고 앞으로도 키울 계획이 없는 어느 비반려인에게 동물과 관련한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몇 가지 사안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개는_특별한가


도전적인 주제군요. 조금 속된 말로 ‘개빠’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 있습니다. 그만큼 개를 사랑하거나, 종종 개를 위해서 타인의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정성을 쏟는 이들을 일컫는 말로 보입니다. 동물의 종은 많은데 왜 유독 개만 갖고 그러냐며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연 개는 특별할까요? 제 생각에 개는 특별한 것도 맞고, 특별하지 않은 것도 맞습니다. 어쭙잖은 양시론에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같지만 요는 이렇습니다. 먼저 국내 반려동물 양육 비중을 보면 개가 압도적으로, 반려동물의 75.3%가 개입니다. 2순위인 고양이(31.1%)보다 갑절 이상 많습니다. 현상적인 수치만으로도 특별함을 방증하지만, 더 나아가 개의 경우 1만~4만 년 전 개 자신의 의지로 인간 사회에 합류했다는 설에서도 그 특별함을 찾을 수 있습니다. 현재 인간과 함께하는 여타 동물과 같이 인간이 잡아서 기른 게 아니었으며, 오래전부터 인간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생활한 유일무이한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개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아니, 특별하지 않아도 됩니다. 개 이야기가 나오면 으레 뜨거운 감자로 개식용 문제가 따라붙고는 합니다. 왜 개만 못 먹게 하냐는 것인데, 저는 그렇다고 왜 굳이 먹어야 하는지가 더 의문입니다. 혹자는 개식용 종식의 이유를 개의 특별함에서 찾겠지만, 저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개가 특별하지 않아도 개식용은 이미 사양산업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그 사례가 거의 희박합니다. 굳이 보전해야 할 만큼 한국사회의 어떤 ‘미덕’인 것도 아닙니다. 개가 아닌 다른 동물이 대상이었더라도 저는 같은 논리를 펼쳤을 것입니다. 개가 특별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길고양이는_유해한가


“길고양이는 백해무익하다. 모두 중성화 수술을 하기 어려우니 안락사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난 2017년 김종회 민주평화당 의원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위 회의에서 한 발언입니다.


길고양이는 도심 속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야생동물’입니다. 인간이 지구를 비롯하여 모든 생물의 절대적 지배자도 아닌데, 지구상 모든 동물을 인간에 유익한지에 따라 그 가치를 매기고 손쉽게 처분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관련하여 제주에서 벌어진 재미난 사례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육지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제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노루는 1970년대 남획 탓에 멸종위기에 몰렸습니다. 이후 사냥을 금지하고 적극적인 보호활동을 벌인 덕에 개체수가 늘었지요. 그런데 개체수가 늘자 이번에는 농작물 피해가 우려된다며 2013년부터는 유해동물로 지정해 노루 사냥에 나섰습니다. 보호대상 동물이었다가 돌연 유해동물이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입니다. 지역 환경단체는 노루가 밭으로 내려와 농작물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본디 노루의 활동 영역이었던 제주 중산간 지대를 인간이 세를 확장하여 밭을 일군 탓이라고 합니다. 노루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노루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것이지요. 노루는 생태계 내에서 늘 그대로 존재했습니다. 그들에게 이름표를 붙이고 때에 따라 다른 가치를 매기는 건 온전히 인간입니다. 야생동물로서 길고양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김 의원의 말대로 길고양이를 살처분한다고 하여 길고양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길고양이는 영역동물이기에 한 고양이를 잡으면 그 자리에 다른 고양이가 다시 유입됩니다. TNR을 통해 적절히 관리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며, 이는 선진국의 사례에서도 충분히 확인되고 있습니다.




#펫티켓을_말하다


펫티켓은 펫(Pet)과 에티켓의 합성어로 반려동물과 관련하여 지켜야 할 매너를 의미합니다. 2017년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의 조사를 보면, 비반려인이 반려인에게 바라는 가장 중요한 펫티켓은 ‘배설물을 깨끗하게 처리하는 것’(83.3%, 복수응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어 ‘외출시 반드시 리드줄을 하는 것’(44.2%), ‘짖지 않도록 훈련시키는 것’(29.5%)이 뒤를 이었습니다. 근래 개물림 사고 이슈가 한 연예인의 반려견 사고로 인하여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기도 했는데요, 이런 직접적인 상해피해뿐만 아니라 개 짖는 소리로 인한 소음 분쟁도 앞으로 가시화될 문제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려동물 관련 에티켓은 반려인만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반려인이 배려하거나 지켜야 할 사항들도 있는데요. 이를테면, 남의 반려동물을 함부로 만진다거나 보호자의 동의 없이 간식을 주는 행위는 삼가야 합니다. 이는 반려인과 비반려인 상호 심리적 갈등뿐 아니라 개물림 등 사고 예방을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일본의 일부 엘리베이터에는 펫버튼이 있어 주민들에게 반려동물이 탑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는 장치도 있다고 합니다. 동물을 무서워하거나 혹은 동물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사전에 알 수 있게끔 만들었다고 하네요. 이런 반려인과 비반려인 모두를 위한 인프라가 충분히 마련되기 전까지 반려인과 비반려인은 서로를 더욱 배려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소_돼지_닭_차별하나


민감한 이슈입니다. 이른바 ‘먹는’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지구상 어딘가에는 소나 돼지, 닭을 반려동물로 여기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 돼지, 닭은 가축으로서 우리의 먹거리로 소비됩니다. 소, 돼지, 닭과 반려동물 개, 고양이의 차별이 언급될 때는 보통 앞서 언급했던 개식용 문제를 옹호하기 위해서거나 혹은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이들을 비꼬기 위해서일 때가 많습니다. ‘개나 소나 같은 동물이니 너네는 먹는 동물들도 사랑해야지. 차별 아니면 위선 아닌가?’ 하는 식이지요. 참으로 소모적인 입씨름입니다. 평소 형평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이 꼭 이럴 때 ‘형평성의 논리’를 꺼냅니다.


인간의 육식은 과거부터 이어져 왔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현상입니다. 저는 이 현상을 부정하지도 않고, 그런 과거와 현재의 인류를 손가락질할 마음도 전혀 없습니다. 다만 육고기 소비를 앞으로 줄여나가는 게 우리의 과제임은 자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온난화부터 비윤리적인 사육환경까지, 현 수준의 고기 소비를 위해 인류가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큽니다. 실제 다양한 이유로 채식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8년새 10배가량 증가했다고 하는군요. 우리가 지향하는 변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공존사회를_위하여


위 설명은 모두 비반려인이 한 것이지만, 얼핏 반려인이 답한 게 아니냐는 느낌이 들지 않았나요? 사실 모든 항목의 질문자도 응답자도 글쓴이인 저 자신입니다. 저는 현재 동물과 관련된 일을 하지만, 동물을 키우지는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키울 계획이 없습니다. 즉, 서두에서 밝힌 비반려인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비반려인이라고 해서 동물과 함께 공존하는 사회에 부정적인 건 결코 아닙니다.


‘공존사회를 위한 조건’으로 구성원이 반려인이냐 비반려인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반려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은 대부분 반려동물을 키우는 반려인이 많습니다. 동물을 유기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대부분 반려인입니다. 결국 공존사회를 위해 필요한 건 반려동물 유무 아니라 구성원의 생명체에 대한 존중 의식과 생명감수성 유무가 아닐까 합니다. ‘반려인 VS 비반려인’의 단편적인 구도와 갈등 의식에서 벗어나 모든 구성원이 생명감수성을 길러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