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은 정말이지 대중적인 식품입니다. 총 155억 개의 달걀이 국내에서 연간 생산되는데, 하루 한 개씩 먹는다면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일주일에 5~6일을 먹을 만큼 많습니다. 그런데 이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소리지만 암탉(산란계)이 필요합니다. 초등학생도 잘 아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산란계의 95% 이상은 철창인 케이지에 감금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비인도적인 산란계 사육 방식으로 꼽히는, 그래서 유럽연합은 일찌감치 금지한 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에서 말이지요. 이건 사실 어른들도 잘 모르는, 매우 비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왜 죄 없는 암탉은 감금되었을까요?
배터리 케이지는 좁은 면적에 많은 수의 닭을 사육하고, 닭의 움직임을 제한하여 사료 섭취량을 줄임으로써 생산성을 극대화한 대표적인 감금·밀집인 공장식 사육 시스템입니다. 배터리 케이지에서 암탉은 비좁은 철창 안에 갇힌 채 평생 날개 한번 펴보지 못하고 달걀만 생산합니다. 닭은 모래 목욕에 대한 본능이 강하지만 배터리 케이지 안에서는 불가능합니다. 횃대에 오르지도 못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닭은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며 동족을 서로 죽이기도 합니다. ‘카니발리즘’이라 불리는 행동입니다. 평생 감금된 닭들이 케이지를 벗어나는 때는 오직 죽을 때입니다. ‘생산성’이란 미명 아래 농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직한 풍경입니다. 생명을 오로지 돈벌이는 수단으로만 여기는 탓입니다. 비인도적인 사육방식으로 유럽연합은 무려 20년 전인 1998년부터 산란계 배터리 케이지 사용 문제를 공론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9년 유럽연합 국가 내 배터리 케이지 사용을 당시로부터 13년 뒤인 2012년부터 전면금지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 국가들은 지난 2012년부터 법적으로 산란계 배터리 케이지 사용을 전면 금지한 상태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상황이 심각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내 산란계 산업의 95% 이상이 배터리 케이지 환경이기 때문이죠. 유럽은 벌써 수년도 전에 금지했지만 한국은 향후 10년 이내에조차 금지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케이지 프리’, 기업에 요구하다
언뜻 생소한 단어로 들리는 ‘케이지 프리(Cage-Free)’는 달걀 생산과정에서 산란계를 철창인 케이지에 가두지 말자는 뜻입니다. 올해부터 동물자유연대가 기업대상으로 케이지 프리 캠페인을 시작하며 새롭게 전면으로 내세운 단어입니다. 사실 동물자유연대를 비롯해 국내 동물단체들이 공장식 축산 금지를 위해 활동한 지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산란계 배터리 케이지는 대표적인 철폐 대상이었고요. 그러나 그간의 활동은 개별 소비자의 소비와 정부의 정책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케이지 프리’ 운동은 대상이 ‘기업’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운동과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일반 소비자의 달걀 소비는 ‘직접 소비’와 ‘간접 소비’로 편의상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직접 소비’는 소비자가 마트 등에서 달걀을 직접 구매하는 것입니다. 지난 8월 23일부터 달걀의 사육환경표시제가 시행되었습니다. 그간 달걀 껍데기에 생산자 고유번호만 적혀 있었는데, 이제는 그 뒤로 1~4 사이 숫자가 하나씩 더 붙습니다. 1은 방사 사육, 2는 축사 내 평사 사육을 의미합니다. 3번과 4번은 배터리 케이지를 의미하므로 소비자가 1번과 2번만을 구매한다면 산란계 감금 철폐에 기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문제는 ‘간접 소비’입니다. 기업의 변화가 중요하지만 국내 전체 달걀 산업에서 가공이나 단체급식, 식당 등에서 사용하는 달걀이 무려 절반 가까이 되기 때문입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의 <2016년 축산물 유통실태> 보고서를 보면, 소매단계에서 유통되는 달걀 가운데 일반음식점이 6.7%, 단체급식소 16.8%, 2차 가공 및 기타 19.7% 등 43.2%의 달걀이 이렇게 ‘간접 소비’에 해당되는 달걀이었습니다. 그러니 만약 음식점이나 가공식품 제조 등에서 기업이 케이지 감금 달걀을 사용해 버리면, 소비자로서는 확인도 힘들 뿐더러 선택의 폭이 매우 좁혀 집니다. 게다가 달걀의 유통이나 판매 과정에서도 기업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실로 달걀 산업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건 기업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 같고요. 그러므로 결국 기업이 스스로 산란계 케이지 사육을 금지하는 ‘케이지 프리’ 선언을 해야 합니다. 기업의 케이지 프리 선언은 산란계 산업을 개선하는데 있어 장점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기업 하나가 바뀌면 개별 기업 당 달걀 소비나 유통량이 크기 때문에 산란계 환경을 한꺼번에 대량으로 개선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선언 이후 이행기 동안 케이지 프리 달걀의 수요도 예측가능하기 때문에, 생산의 변화도 무리 없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선언 기업 300개 돌파한 미국, 한국은?
케이지 프리 선언이 가장 활발한 건 미국입니다. 기업대상 케이지 프리 운동의 시발지라고 볼 수 있는 미국은 사실 국내와 산란계 사육환경 상황이 비슷한 편입니다. 유럽처럼 법으로 배터리 케이지를 금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산란계 대다수가 배터리 케이지 환경에서 사육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미국에 최근 몇 년 사이 변화의 바람이 크게 불었습니다. 관련법이 강화된 것은 아니지만, 미국 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케이지 프리를 선언하고 나선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현재 300개가 넘는 기업이 케이지 프리 선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케이지 프리 선언 기업들의 면면은 다양합니다. 맥도날드, 서브웨이 등 세계적인 음식판매기업과 월마트, 코스트코 등 대형마켓까지 자체적으로 케이지 프리 이행 기한을 설정, 배터리 케이지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케이지를 산란계 사육환경에서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였습니다. 선언 기업에 글로벌 기업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미국이나 북미대륙을 중심으로 하는 선언으로 글로벌 정책은 아닙니다. 예를들어, 미국 맥도날드 본사는 지난 2015년 케이지 프리 이행을 10년 후까지 완료하겠노라 약속했습니다. 영국 맥도날드는 매장에서 사용하는 달걀뿐만 아니라 소스를 만들 때 사용하는 달걀까지 이미 케이지 프리로 이행했습니다. 선언만 한 게 아니라, 영국은 지금 이미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맥도날드는 동물자유연대의 거듭된 케이지 프리 선언 요청에 ‘매장 내 사용하는 달걀’을 동물복지란으로 교체 예정이라는 입장만 내놓았습니다. 여기서 ‘매장 내에서 사용하는 달걀’만 포함하겠다는 건 한국맥도날드가 사용하는 전체 달걀의 일부일 뿐입니다. 햄버거 빵이나 소스를 만드는데도 수많은 달걀이 들어가기 때문이죠. 전체 달걀에 대해 케이지 프리를 약속하라며 여러 차례 공문을 보냈지만 그 어떤 답변도 없습니다. 동물학대적 요소를 중단하는 것보다 한 푼이라도 더 남기는 게 아직은 우선인가 봅니다.
소비자의 힘 보여줄 때
캠페인을 통해 글로벌 기업의 본사가 있는 미국이나 다른 외국 지점에서는 한국보다 훨씬 더 동물에 나은 정책을 내놓고 시행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서 놀라고 또 서운했습니다. 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아마 소비자 일겁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모두 소비자입니다. 그러니 소비자인 우리는 동물학대적 요소를 여전히 고집하는 기업에는 경고하고, 반대로 이를 개선하고 있는 기업에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줘야 합니다. 죄 없는 산란계 암탉이 최소한의 자유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말이죠.
*빅이슈 187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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