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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기고

주여, 어디로 가나이까

사과 먼저 드립니다. 제목이 낚시였습니다. 글 제목 주여, 어디로 가나이까에서 표현한 는 종교적 절대자가 아닌 동물원(zoo)입니다. 1세기 로마의 기독교 박해를 다룬 동명의 책에서 따왔습니다. 그리고 책 역시 베드로가 당시 그리스도에 했던 질문을 그대로 제목으로 차용했습니다. 2천 년 전 예수는 박해를 피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고, 입신양명을 꿈꾸고 예수를 따랐던 베드로 역시 마지막에는 순교의 길을 따른 바 있습니다.

 

Oh, Jesus! 동물원에 순교는 없지만, 고통스러운 박해는 숱합니다. 그리고 박해의 가해자는 특정 종교 집단도 정치 집단도 인종 집단도 아닌 우리 모두입니다. 문제 제기는 꾸준히 있었습니다. 지난해 가을 대전동물원의 퓨마 탈출 사건으로 동물원 동물들의 처우와 관리문제가 세간의 뜨거운 조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잠시뿐, 지금도 동물원 동물의 박해는 점점 심화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가정의 달 5월에 이어 한창 나들이 철인 오늘, 아이 손 잡고 가서는 아니 될 동물원의 대표적 형태 3가지를 뽑아보았습니다.

 

 

볕 한 줌 없는 콘크리트 상자 실내동물원

 

특정 동물원을 지칭하지 않으려 했지만, 서울대공원 동물원만큼은 예외로 두고자 합니다. 공공동물원이고 동시에 국내에서는 가장 낫다고 평가하는 동물원이기 때문입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기본적으로 사육을 위한 실내/외 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전통적 동물원의 모습이 아마 서울대공원 동물원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야외에서 키우는 것만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직은 동물의 종에 따라 실내외 시설 모두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생태 습성에 따라 혹서와 혹한을 견디지 못하는 동물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동물은 애초 국내에서 키우지 말아야 합니다만, 작금은 현실은 그렇지 않지요. 예를 들어 저는 기린이라는 동물을 좋아합니다만, 기린이 우리나라 겨울 추위를 나기는 쉽지 않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은 발전하는데 동물원의 수준은 역행하고 있습니다. 실내동물원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지요. 볕 한 줌 들지 않는 좁은 공간에 평생 침침한 전깃불에 의지하여 수많은 동물이 갇혀 있습니다. 실내동물원이 늘어나는 건 아마도 비교적 좁은 공간으로도 동물원을 개장할 수 있어서일 겁니다. 그리고 관람객 입장에서야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니 편리하고요. 그러나 동물에게는 감옥도 이런 감옥이 없습니다.

 

특히, 대형 포유류의 경우 그 상황이 심각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최고시속 80킬로미터에 하루에도 수십 킬로미터씩 이동할 수 있는 사자, 호랑이 등 동물이 한 면은 관람객을 위한 차가운 유리요, 나머지 5면은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고작 가로세로 몇 미터 남짓한 공간에 갇혀 있는 모습을. 우리는 중죄를 저지른 범죄자에게도 볕을 쬐게 하고 야외에서 운동할 수 있게끔 보장하고 있습니다. 죄 없는 동물은 최소 지금보다는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먹이고 만지는 스트레스 체험동물원

 

우리는 동물을 가두고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먹이고 또 만집니다. 물론 반려동물도 먹이고 만지기는 합니다만, 그건 유대관계 속에서 혹은 보호자 및 소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체험동물원은 보통 먹이주기 체험을 기반으로 합니다. 동물원은 먹이 판매로 수익을 올리기도 하지요. 그 과정에서 몇몇 동물원들은 평소 동물의 급이를 제한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평소 배불리 먹여두면, 먹이주기 체험 과정에서 잘 받아먹지 않아 관람객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실 야생동물에게는 은닉할 공간 없이 전시되는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스트레스 상황입니다. 언제든지 천적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체험동물원은 시간이 거듭될수록 동물에 학대적인 방향으로 진화하여, 사람과 동물 사이 최소한의 울타리와 유리벽마저 허물어지고, 급기야 동물들은 언제든지 손만 뻗으면 만질 수 있는 개방된 공간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최근 우후죽순 생겨나며 유행하고 있는 한 프랜차이즈 체험동물원의 경우 이런 기본적인 울타리를 모두 철거한 형태로 관람객들이 대부분의 동물을 너무나도 쉽게 만질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지난해 체험동물원 현장조사에서 한 왈라비 가족을 만났습니다. 왈라비는 캥거루과의 동물인데, 체험동물원에서 만난 어미 왈라비와 새끼 왈라비는 고작 두 평 남짓한 공간에서 관람객에 노출된 채 진열대의 상품처럼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스트레스 탓으로 새끼 왈라비는 이미 어미의 주머니에서 나올 만큼 성장했으나 나오지 않았고, 어미 왈라비는 나오지 않는 거대한 새끼 왈라비를 품은 채 배를 바닥에 질질 끌며 좁은 공간을 이리저리 오가고 있었습니다.

 

 

케이지 안의 삶 이동동물원

 

체험동물원과 함께 최악의 동물원 형태로 꼽히는 게 이동동물원입니다. 이동동물원은 말 그대로 동물들이 이곳저곳 이동하며 전시된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동동물원 운영자들은 주로 학교나 문화센터, 행사장 등을 찾아다니며 동물들을 펼쳐 놓고 수익을 올립니다.

 

이동 과정에서의 스트레스는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케이지에 갇혀 차량에 짐처럼 쌓여 이동되는 것은 물론이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덮개 설치 등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동뿐만 아니라 전시되는 경우에도 케이지에 갇힌 채로 전시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이동동물원의 가장 큰 문제는 동물의 관리 실태를 쉽게 확인할 수 없다 보니 동물들의 먹이나 휴식 공간이 적절하게 제공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습니다. 몇몇 이동동물원은 운영 행태가 사실상 동물 대여업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렇다 보니 사육시설 자체가 그저 동물의 보관소로서만 여겨질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 동물단체들이 조사해 보면, 업체의 등록 주소지가 심지어 일반 주거시설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동물들이 어떻게 관리되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최악의 관리 상태를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동동물원 동물들이 좁디좁은 이동식 케이지에서 해방되는 때는 과연 언제일까요? 죽을 때 그리고 관람객들이 직접 만지고자 할 때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느 쪽도 비극입니다.

 

 

생명 경시 배우는 아이들

 

전문가들은 동물원의 주요 기능 중 하나로 교육을 꼽습니다. 법에도 그렇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동물을 야생에서 분리하여 감금하고, 생태 습성에서 벗어난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평생을 살며, 훈련하여 쇼에 동원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아이들은 어떤 가치관을 갖게 될까요?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삶지는 않을 터, 분명 인간은 으레 생명체인 동물을 막 대해도 된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품게 되지 않을까요?

 

동물원이 당장 없어질 수는 없습니다. 현재 동물원 동물의 다수는 야생성을 잃은 상태로 자연에 방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애초 동물원에서 태어난 동물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동물원은 변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학대가 만연하는 방향이 아니라, 동물을 존중하고 고통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누가 바꿀 수 있을까요? 언제나 그렇듯이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시대는 이제 종교차별, 인종차별을 지나 종() 차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실천을 통해 우리 주변의 것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이동동물원, 체험동물원 등은 당장 사라져야 할 행태로 이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zoo), 어디로 가나이까는 변화 주체인 우리 모두를 향한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