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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전국일주 캠핑

[전국일주 15일차] ① 강진, 푸른 것을 만나다1

15일차 이동경로
강진 석문공원 -> 청자박물관 -> 보성 차밭(대한다원) -> 강골마을 -> 벌교

 

오랜 기간 떠나는 여행이 매일매일 특별할 리가 없다. 잊을 수 없는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각종 해프닝으로 추억에 남는 날이 있다면, 그저 하루 종일 무얼 해도 고만고만해서 기억도 잘 나질 않고, 기억이 난다 해도 특별히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 없는 날도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 아닌가 싶다. 

 

물론 많은 지역 다양한 동네에 들렀고 많은 것들을 보았다. 하지만 깊이 있게 다가온 것은 그다지 없었다. 오해 마시라. 방문했던 장소들이 매력이 없었던 것이 절대 아니다. 그냥 계절, 시각, 날씨, 배경지식, 피로도 등이 뒤섞여 나에게만은 훌륭한 여행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뿐이다. 아아! 이날은 개인적인 카테고리 분류상 ‘채우는 여행’이 아니라 ‘비우는 여행’이었을지도 모른다. 쉽게 말해 생각 없이 풍경들을 둘러봤다고 해야 하나.

 

강진 석문공원에서 맞이한 아침. 다행히 밤사이 고양이들의 공격은 없었다. 여행 첫날부터 누차 이야기했지만, 평상시에는 한낱 길거리 동물들로 밖에 여기지 않았던 고양이였지만 사람 없는 야생에서 홀로 마주하면 공포의 대상이었다. 특히 그들이 떼로 있다면 더욱.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고양이들이 덤벼들었다면 내 여행기는 더욱 다채로워지지 않았을까? 뻥을 좀 더해 야생 짐승들과의 사투정도로 극화시켜서 들려줄 수 있는 좋은 소재를 놓친 것도 같았다.

 

강진은 다산의 유배지로도 유명하지만 청자로도 역시 유명하다. 차를 달리다보면 산의 한 사면에 나무를 청자모양으로 심어 가꾸어놓기도 할 정도다. 오늘의 첫 목적지를 청자박물관으로 정한 이유다. 

 


강진 청자박물관

 

한자문화권에서 푸를 청(靑)으로 표현하는 색감을 우리말에서는 푸르다 혹은 파랗다고 표현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초록의 산도 파란 바다도 모두 푸르며 파랗다고 표현한다. 하물며 신호등을 지날 때도 신호는 분명 빨간색과 녹색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우리는 ‘파란불’일 때 건넌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일까? 푸를 녹이 뜻하는 녹색의 경우는 대칭되는 우리말이 없기 때문일까? 대칭되는 우리말이 없다는 건 굳이 이 두 색을 구분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아니면 단순히 한자문화권에 이미 하나의 청(靑)이라는 색감으로 써왔기 때문일까? 나는 오늘 여행에서 이 의문을 품게 되었다. -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강진군 대구면에 있는 청자박물관과 석문공원과의 직선거리는 불과 10킬로미터 정도로 가까웠으나, 육지로 움푹 치고 들어온 강진만이 가로막고 있어 강진읍을 통해 둘러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10킬로미터의 거리는 30킬로미터로 불어났다. 어제 다시 갔던 길을 되돌아와야 했던 완도읍과 고금도가 육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면 두르지도 않고 남해바다의 절경을 구경하며 청자박물관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마량항과 고금도를 가보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청자박물관이 강진군에서도 외곽인 이곳 대구면에 자리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곳은 과거 청자를 구워내던 가마터가 있던 곳이다.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한 가마터는 꾸준히 그 모습을 드러냈으며, 1991년 조사에서는 총 188개소가 확인되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현재까지 확인된 가마터보다 고려 당시에는 훨씬 많은 수의 가마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 그 엄청난 규모를 짐작케 한다.

 

 

강진군에서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지 박물관 일대는 엄청난 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미 번듯한 박물관 건물과 부속 상점건물 등이 있었지만, 그 맞은편으로 거대한 규모의 구조물들이 또 올라가고 있었다. 관광단지를 조성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허허벌판에 미리 조성해 둔 넓은 아스팔트길이 나의 추측에 더욱 신뢰를 보태주었다. 과연 무엇이 들어서게 될까? 여느 유명한 사찰 앞이나 국립공원 입구처럼 무분별하게 난립한 상권으로 관광객들의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뚫고 청자박물관으로 들어섰다. 강진의 청자박물관은 총 175점의 완품 청자와 3만여 점의 파편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 중 65점의 완품과 410점의 파편이 전시되어 있다. 진열된 것은 모두 진품이다. 설명을 보니 주말에는 경매가 진행되는데, 이렇게 경매를 통해 팔리는 것은 현대 작가의 작품이라 한다. 우리는 찬찬히 박물관 내부를 관람했다. 은은한 청자의 빛은 푸른 계열임에도 차갑지 아니하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구석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청자를 모양에 따라 상부가 부풀어 오른 역삼각 형태와 하부가 부풀은 모양인 삼각 형태의 청자로 나누는데 나는 후자가 더 마음에 들었다. 확실히 무게감이 아래에 있어야 안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상부가 부풀어 오르고 바닥이 좁은 모양의 청자는 부담스러운 느낌이 크고 불안하다. 그러나 우리가 청자 하면 흔히 떠올리는 것은 상부가 넓어 어깨가 우람한 장점을 연상케 하는 매병의 모습일 것이다. 교과서에도 대표적으로 나와 있고(국보68호, 상감운학문 매병), 산허리에 조경으로 만들어 놓은 모양도 그것이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왼편에는 상점이 있다. 수많은 상품들 중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이른바 ‘원샷잔’이다. 여성의 가슴모양을 한 원샷잔은 젓꼭지 부분이 아래를 향하고 있어 바닥에 세워둘 수가 없는 구조다. 따라서 잔에 술을 따르게 되면 반드시 다 마셔야만 술잔을 내려놓을 수 있다.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보면 분명 호호 허허 웃으며 좋아할 디자인이리라! 물론 나도 허허허! 그러나 물론 구매하지는 않았다. 믿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