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행/전국일주 캠핑

[전국일주 13일차] ⑤ 해남 만안리 공포의 밤

기복이 심한 날이었다. 백련사에서 차와 점심을 대접받고 김치 등 간단한 반찬을 얻은 것은 행운이었다. 그러나 이날 그만큼의 불운도 있었다. 시작은 대흥사 주차장에서 카메라를 떨어뜨리는 대참사를 겪는 것부터다. 액정 보호커버는 살아있었지만, 정작 안에 있는 액정이 깨진 탓에 이제 찍은 사진을 볼 수가 없었다. 나는 특유의 낙천성으로 “필름 카메라 같고 좋지 뭐”라고 푸딩에게 말했다. 슬슬 바꿀 때가 됐다고 생각한 이유가 컸지만, 그래도 이렇게 느닷없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이 카메라를 액정 없이 사용했다.)

 

부서진 카메라와 함께 13일차 밤을 보내기 위한 정자를 찾았다. 밤에 폭우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던 탓에 정자가 더욱 절실했다. 남쪽으로 차를 내달리다 마을회관 앞에 서 있는 제법 큰 규모의 정자를 발견했다. 해남군 현산면 만안리 마을회관 정자였다. 아무리 공공시설이지만 함부로 잘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바로 옆 버스정류장에서 담소를 나누고 계시던 동네 어르신 3분께 정자에서 잠을 자도 되느냐고 여쭤 보았다. 물론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그런데 어르신 중 두 분이 집으로 바로 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들르셨다. 그리고 이것저것 물어보시며 여러 말씀을 해 주셨다. 내용인즉 이런 것들이다. 마을 근처에 어떤 묘가 있는데(돌아와 생각해 보니 윤선도 유적일 확률이 높다), 아무것도 볼 것 없는 곳임에도 사람들이 왜 거길 가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길도 좋지 않다, 지난번에는 자전거 여행객이 위치를 묻기에 가지 말라고 했다는 등의 내용이다. 그뿐이 아니다. 동네에 서울대를 졸업하고 이곳 시골로 내려와 유기농 연구를 하는 딸래미가 있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하셨다. 내가 듣기에는 멋있어 보였으나, 시골 어르신들의 입장에서는 대학까지 졸업하고 다시 시골로 내려온 젊은이들이 못내 아쉬우셨나 보다. 아마 대기업에 번듯하게 취직하는 것이 그 어르신들이 바라는 것일 게다. 

 

한평생 농사를 지으신 시골 어르신들의 바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불똥이 나에게도 튀었다는 것. 어르신들은 이어 나와 푸딩의 직업을 물었다. 푸딩이야 학생이지만 나는 졸업하고 별다른 직업이 없었던 터라 머뭇거렸다. 그러자 어르신께서 말했다. “그래 그 나이에 지금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으면 뭐... 알만하지.” 참 뭐라 드릴 말이 없었다. 크게 개의치는 않았지만, 자존감에 마이너스1 데미지 정도는 입은 것 같았다.

 

 

어르신들이 떠나자 텐트를 쳤다. 큰 정자였지만 천정이 높아 비가 옆으로 들이닥칠 위험이 컸다. 타프 대용으로 사용하는 방수포를 비바람이 불어닥칠 방향을 고려해 정자 기둥 사이에 둘러 벽을 만들었다. 조금은 안심이 됐다. 나중에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께서 우리를 발견하시더니 비가 들이닥치니 안에서 자라고 말씀해 주셨다. 마을 분들은 모두 매우 친절하고 유쾌했다. 만안리(萬安里)라는 마을 이름을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포의 밤은 이른 저녁밥을 준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먼저 찾아온 공포는 푸딩이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린 사건이다. 결정적 계기는 각종 식재료와 조리 도구 등을 넣어 다니는 상자가 있는데, 안에 있던 식용유가 쏟아진 탓에 각종 식재료, 식기구가 기름 범벅이 된 사건이었다. 뚜껑이 꼭 닫혀 있지 않았거나 차가 흔들리는 사이 뚜껑이 열린 것 같았다. 온통 기름 범벅인 각종 식재료와 조미료, 식기 등을 닦아내며 푸딩이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식용유 닦아내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바꿔 ‘그동안 말은 안 했지만 많이 힘들었구나’ 생각하니 미안하고 또 걱정이 됐다. (푸딩의 마음이 가라앉은 다음 날 물어보니 다산초당-백련사 코스에서 모기에 대량으로 물린 것이 너무 힘들었는데 식용유 사건까지 터져 그랬다고 고백했다.) 어쨌든 우리는 라면을 백련사에서 싸준 고마운 김치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기름을 닦느라 지친 마음에 대화는 없이...

 

한여름 오후 길게 늘어진 햇살을 머금은 만안리 마을은 고즈넉한 맛이 있어 포근했다. 이른 저녁밥을 먹고 배도 불렀기에 우리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작은 마을이었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시골 특유의 형형색색 페인트칠이 된 지붕과 대문이 예뻤다. 참새들이 줄지어 날아가는 소리만이 공기를 가로질렀다. 정말 고요했다. 작은 원을 그리며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돌아오는 길. 서녘에는 해가 지고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드리웠다. 푸딩과 나는 무지개를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여름날의 오후녘을 만끽했다. 푸딩의 마음도 어느정도 풀린듯 했다.

 

 

그러나 또 다른 공포가 한밤중에 찾아왔다. 사방이 칠흑에 잠긴 시각, 자려고 누워 드라마 연애시대를 한 편 보고 있는데, 갑자기 웬 아저씨의 욕설이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온갖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퍼붓는데, 나는 이내 그가 통화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경상도의 욕은 격한 억양에서 나오는 맛이 강점인데, 이곳의 욕은 물 흐르듯 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 매끄러운 연속성이 강점이었다. 여하튼 감탄할 때가 아니라 둘 다 놀라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텐트는 꽤나 훌륭한 집이지만 때때로 바깥과의 차단성은 매우 약해 이런 일이 발생하면 도무지 안정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밖에 내팽개쳐진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푸딩의 귀를 막아주는 것 밖에 없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다음날 이른 아침. 이장님으로 보이는 듯한 젊은 아저씨가 마을회관 문을 열고 계셨다. 나는 인기척에 텐트 밖으로 나가 인사를 드렸다. 시큰둥하게 이장님은 “간밤에 비 안 맞으셨죠?” 라고만 말하셨다. 벽에 방수포를 쳐놔서 괜찮았다고 대답하며 돌아서는 순간 나는 어디선가 많이 들은 목소리라 생각했다. .........아!

 

마을회관으로 들어가신 이장님은 동네 방송을 하셨다. 내일 새벽에 동네 주민들이 모여 여수엑스포를 관람할 예정이니 5시 30분까지 회관 앞으로 나와 주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확성기 바로 아래 우리 텐트가 있었던지라 귀가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귀를 막았지만 그래도 이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용건을 모두 말하고 마지막 멘트를 날렸다. “그럼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뢈다.” 경상도 우리 동네에서는 무미건조한 “감사합니다.”로 늘 끝나는 마을 방송인데, 이곳의 멘트는 꽤나 정감이 갔다. 그럼에도 그 목소리는 여전히 씁쓸했다.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13일차가 지나고 14일차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