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에선 한 가지 미리 정해 놓은 것이 있었다. 바로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국도와 지방도만 달리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아무래도 고속도로는 풍경을 감상하기도 힘들고, 달리던 중 생각이 바뀌어도 노선을 변경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주행에서 과정은 그저 고통이며 결과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국도는 길 위를 달리는 것도 여행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도는 느릴수록 좋다.
적성산성에서 내려와 예천 회룡포전망대로 네비를 설정했다. 그런데 한참을 달리다보니 우리는 어느덧 단양IC에 와 있었다. 네비의 길찾기모드가 추천으로 되어있어 고속도로를 경유하는 노선이 채택된 것이다. 급하게 모드를 무료로 바꾸었다. 다행이 가던길을 그대로 가면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게 화근이었다. 처음 적성산성(단양적성비)을 출발할 때 부터 무료로 설정을 했더라면 우리는 남쪽으로 수직으로 뻗은 59번 국도를 타고 쉽게 내려왔을 예정이었다. 혹은 실수로 단양IC까지 갔더라도 조금만 유턴해서 돌아와 927번 지방도만 탔더라도 차선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단양IC를 지나 영주를 크게 우회해서 예천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게다가 더 큰 실수였던 것은 이 길을 이용하면 온전히 소백산맥을 넘어야 했던 것이다. 꼬불꼬불 해발 696미터의 죽령재를 넘으며 이건 기름을 바닥에 뿌리는 멍청한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차도 힘들도 나도 힘들었다. 날씨도 뜨거웠다. 결국 예천읍내에 들러 롯데리아 빙수를 하나 사먹으며 차도 식히고 사람도 식혔다.
회룡포 전망대로 오르는 코스는 두세가지가 있는듯 했다. 우리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장안사코스를 이용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고, 주차관리를 해주시는 분들도 여럿 있었다. 주차장은 크게 아래쪽 주차장과 위쪽 장안사 주차장으로 나뉘었다. 거리가 그리 먼 건 아니었지만 중간에 올라가는 길이 가팔랐다. 위쪽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길은 폭이 좁아 차량 두대가 마주오면 한 대는 후진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우리는 아래쪽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올라갔다. 걸어서 올라가며 보니 전신주에 '크략숀을 눌러 주세요'라는 푯말이 보였다. 폭이 좁아 마주오는 차에게 올라오지 말고 대기하라는 신호였다. 언덕을 오르며 푸딩이 힘들다고 불평했다. 확실히 힘이 들었다.
한참을 등산해야 전망대가 나왔다. 물돌이 마을 답사의 마지막 코스 회룡포. 회룡포의 물돌이는 그각이 350도나 되었다. 그런데 답사 전 사진에서 보았을 때의 회룡포는 조용한 시골마을이었는데, 지금은 넓은 주차장과 캠핑장 그리고 잘 꾸며진 공원까지 만들어진 광광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곤충엑스포와 연계할 오토캠핑장까지 새로 짓고 있어 바야흐로 한 껏 개발된 관광단지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어딜가나 똑같은 공원 그리고 주말이면 미어터지는 사람들. <1박 2일>의 역효과가 이곳에서도 드러나고 있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회룡포마을로 들어갔다. 우리는 회룡포마을에서 1박을 할 예정이기 때문에 차를 가지고 들어가야만 했다. 단순한 구경이라면 이른바 '뿅뿅다리'라 불리는 저 다리를 이용해 사람만 마을 안으로 건너갈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를 이용해 회룡포 마을로 들어가려면 전망대에서 무려 16km나 되는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 강 하나 건너 지척인데 다리가 없으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전망대에는 사람이 넘쳐나지만 막상 마을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있다손 치더라도 일요일 오후엔 숙박손님까지 모두 빠져나가 마을은 조용했다. 전망대에서 캠핑장으로 본 곳은 정말 캠핑장이었다. 샤워시설은 없고 화장실과 개수대만 있는 캠핑장이었다. 그래도 이제까지 수도시설도 없는 정자에서 자다가 개수대가 있는 곳에 있으니 여간 편한것이 아니었다.
텐트를 설치하면서 보니 나무가 조금 아쉬웠다. 만들지 얼마 되지 않은 캠핑장이라 그런지 나무가 모두 작아 그늘을 만들어주지 못했다. 아직 저녁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볕도 기온도 뜨거웠다. 텐트 설치를 마치자 온 몸에 땀이 흘렀다. 짐을 정리한 뒤 강가로 나가 물에 발을 담그고 모래성을 쌓으며 놀았다.
강가에 다녀왔지만 여전히 더웠다. 시원한 무언가가 마시고 싶었다. 자연스레 맥주가 떠올랐다. 시원한 맥주. 캠핑에서 몇가지 아쉬운 점들 중 하나가 바로 시원한 것을 먹기 힘들다는 것이다. 게다가 음료는 낮에라도 사 마실 수 있지만 맥주는 운전때문에 저녁이 아니면 먹을수가 없었다. 혹시나 싶어 마을 안쪽 집들이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아주머니 한 분이 길가에 앉아계시길래 슈퍼가 있냐고 여쭈어 보았다. "슈퍼는 모르겠고 아이스크림정도는 파는데..."라며 옆의 가건물을 가리키셨다. 그리고 깨알같이 <1박 2일>이 묵어간 민박집이라며 뒤편에 있는 꽤나 규모가 있는 황토집을 가리키셨다.
식당같은 곳이 있어 들어가보니 진짜 식당이었다. 다행이 식당에는 소주와 맥주 그리고 음료수를 구비하고 있기에 어렵지 않게 맥주를 얻을 수 있었다. 당장 마시기 위해 스포츠음료도 하나 샀다. 원래 슈퍼가 아니기 때문에 봉지 같은것도 없었다. 아주머니는 한참을 뒤진끝에 오래된 비닐봉지를 하나 구해주셨다. 우리는 그것으로 족했다.
차가울 때 마셔야했기 때문에 당장 잔 - 따위는 없으므로 당연히 그릇 - 을 들었다. 오늘 저녁은 짜장라면을 택했다. 더워서 오래걸리는 요리를 피하고 싶기도 했고 차가운 맥주와 함께 먹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배가 차고 알콜이 오르자 금방 기분좋은 나른함이 몰려왔다.
설거지까지 끝내고나자 금세 해가 기울어졌다. 나른한 지금의 기분에 어울리는 나른한 풍경이었다. 뿅뿅다리를 건너오던 관광객들도 이제 발길이 끊어져 캠핑장 주변엔 아무도 다니지 않았다. 이제 하루를 마무리 해야 할 시간이다.
개수대에서 수영복바지만 입고 등목을 했다. 그런데 하필 그때 남자 하나와 여자 두 명이 마을로 들어와 차를 주차하고선 우리 옆을 산책하며 지나다녔다. 반 나체인 상태라 부끄러웠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채 했다. 여행자는 부끄러울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원래 수영을 할땐 웃옷을 벗으니 이건 별거 아니다 - 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씻다 보니 금방 시간이 흘렀고, 날이 어두워지자 논 위로 박쥐까지 날아다녔다. 나는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개봉하면 꼭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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