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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전국일주 캠핑

[전국일주 6일차] ② 문경새재 下

문경새재 제1관문 주흘관

 

문경새재도립공원은 주차료만 있을 뿐 입장료는 무료다. 나는 무료라는 사실이 매우 당혹스러웠다. 여행을 하며 어딜가나 입장료를 내다 보니 이젠 무료라는 사실이 나를 당황하게 한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시설도 훌륭했다. 옛길박물관도 있었고 자연생태공원도 있었으며 노약자나 임산부를 위한 셔틀도 운행되고 있었다.

 

문경새재는 임진왜란 후 생긴 총 3개의 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관문인 주흘관과 제2관문인 조곡관 그리고 제3관문인 조령관이 그것이다. 제1관문은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다. 하지만 제2관문과 제3관문은 거리가 멀다. 제1관문에서 제2관문까지의 거리는 3km인데 거기서 다시 제3관문까지 가려면 3km를 더 가야했다. 즉 제1관문에서 제3관문까지는 6km의 거리인 것이다. 못갈것 뭐 있냐싶겠지만 다시 돌아와야 하니 거리는 두배가 된다. 그래서 오늘은 제2관문까지 올라간 다음 다시 내려오기로 했다. 그래도 왕복 7km는 걷게 될 것이다.

 

제1관문인 주흘관은 형태도 온전히 남아있고 또 그 모양새도 꽤나 관문답다. 이 주흘관을 지나면 좌측으로 KBS 오픈세트장이 나온다. 이 오픈세트장은 KBS가 2000년 특별기획 대하드라마 제작을 위해 설치했던 19,891평 규모의 고려촌을 문경시의 제작지원으로 허물고 새로운 조선시대 모습으로 2008년 준공한 것이다. 오늘은 들어가지 않았지만 예전에 가 보았는데, 다른것 보다 마음에 드는 건 광화문 저작거리를 조성해 놓았다는 점이다. 지금의 광화문 모습과 비교해 감상하기에 재미가 쏠쏠하다.

 

문경새재길은 잘 조성된 흙길이다. 맨발로 걸어보길 추천하고 있기 때문에 세트장 부근에 세족장이 있다. 날씨가 더워 신발과 양말을 벗고 세족장을 먼저 들어갔다. 물이 거짓말 안보태고 정말 얼음장 같이 시원했다. 계곡물이 분명했다. 이정도 온도면 계곡에 발정도만 담글 수 있을 뿐 입욕은 절대 불가능하다. 우리는 둘 다 신발을 한 손에 들고 맨발로 흙길을 걸었다. 흘길이 평평해 발이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흙의 온도는 제각각이어서 그늘진 땅을 밟을때면 시원했고, 그렇지 않을때는 따듯했다. 끝까지 맨발로 가진 않았지만 이렇게 한참을 걸었다.

 

제2관문인 조곡관까지 가는 길에는 볼거리가 많다. 그 중 나의 기억에 남는것은 교귀정, 산불됴심비석 그리고 조곡폭포다. 교귀정은 새재길에 있는 정자로 조선시대 새로 부임하는 경상감사가 전임 감사로부터 업무와 관인을 인수인계 받던 교인처다. 지금 있는 건물은 1896년 의병전쟁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99년 복원한 것이다. 비록 복원한 것이라 하나 유일하게 남아있는 교인처라고 하며, 경상감사 교인식 재현행사가 매년 열리고 있다고 한다. 경상북도지사의 인수인계를 형식적으로라도 이곳에서 한다면 그 의미가 남다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산불됴심비는 교귀정을 지나 제2관문으로 가는길에 있는 보기 드문 한글비다. 투박한 돌에 한글로 '산불됴심'이라 새겨져 있는데, 조선 후기의 것으로 추측된다. 문경새재는 장사꾼이나 일반 서민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이었지만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기에 산불을 항상 유의해야 했다. 따라서 일반 서민들이 잘 알아볼 수 있도록 한글 비를 세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장마기간이라 계곡도 그랬지만 조곡폭포의 낙수도 콸콸콸 흘러내렸다. 먼발치서 조곡폭포가 눈에 들어왔을때 사람들이 폭포앞에서 등을 돌리고 먼산을 바라볼 뿐 떠나지 않고 있었다. 단순히 폭포를 감상하는 것은 아닌것 같았는데 그들의 행동의 이유를 우리를 곧 알 수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아저씨의 표현을 빌자면 '천연 에어컨' 바람이 폭포에서 불어왔기 때문이다. 인공바람에는 비할데 없는 상쾌함이 묻어나왔다. 그런데 우리도 한 번 자리를 잡고 나니 발을 떼기가 힘들었다. 결국 새로 도착한 아주머니 무리들이 우리를 밀어내고 나서야 가던 길을 다시 갈 수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즐거운 볼거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리 언급하진 않았지만 가슴아픈 역사의 흔적도 존재한다. 바로 '상처 난 소나무'가 그것이다. 제1관문을 통과해 흙길을 걸어 오르다 보면 중간에 'V' 자형 상처가 난 소나무가 있다. 길 위에 한 그루 홀로 서 있어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 나무는 일제 말기 자원이 부족한 일본군이 지역주민들을 동원하여 연료로 사용하기 위한 송진을 채취하던 자국이라고 한다. 길을 정비하며 베어버릴수도 있었지만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남겨둔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후대의 누군가가 이 나무에 매직으로 광고문구를 적어놨으니 통탄할만한 일이었다.

 

 

목적지인 제2관문을 보고 내려오니 대략 3시간 남짓의 시간이 걸린듯 했다. 아침 회룡포에서 나오는길에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빵과 우유를 사먹었는데 그게 오늘 먹은 것의 전부였다. 게다가 왕복해서 7킬로정도는 걸은 셈이니 허기가 장난아니게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는 새재입구에 식당가가 줄지어 있었으나 비쌀것 같아 점촌에서 먹기로 이야기 했었다. 그런데 막상 나와보니 점촌까지 가다가는 배고픔에 쓰러질 것 같았고 우리는 죽 늘어선 식당중 한곳을 골라 들어갔다. 

 

우려보다는 비싸 않아 1인당 7000원에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나는 묵밥을 시켰고 푸딩은 산채비빔밥을 시켰다. 이곳 식당가는 다른 관광지 식당가와 조금 달랐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아니면 점심시간을 지난 탓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호객행위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어쨋든 이 점이 나를 기분좋게 만들었다. 여행을 하며 그동안 몇번인가 밥을 사 먹었지만 대부분 김밥x국 같은곳에서 먹었고 제대로 된 식당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푸딩도 나도 십수가지 반찬이 나오는 것에 눈이 휘둥그래 졌다. 1식1찬 혹은 1식2찬만 며칠간 했으니 그럴만도 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