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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전국일주 캠핑

[전국일주 6일차] ① 문경새재 上

 

회룡포 야영장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고작 아침 7시 무렵인데도 너무 덥다. 아침식사를 포기하고 일찍 자리를 뜨기로 했다. 텐트와 짐들을 정리해 차로 옮기는데 정말이지 땀이 뻘뻘 흘렀다. 전날 해놓은 빨래도 하나도 마르지 않은 것을 차에 넣었다. 정리가 끝날 무렵엔 온 몸이 땀에 젖었고 햇빛도 완전 뜨거웠다. 상쾌한 아침따윈 물건너간지 오래였다. 주말엔 몰랐는데 월요일이 되니 전투기 소리가 귀를 찔렀다. 이로써 회룡포는 주말도 월요일도 조용한 날이 없을것 같았다.

 

문경은 행정구역의 변경사가 다소 특이하다. 현재의 행정구역도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겐 다소 혼란이 올 수 있다. 왜냐면 문경시청이 있는 중심 번화가가 문경읍이 아닌 점촌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경북 군위군의 가장 번화한 곳은 군위읍이며 이곳에 군청이 있다. 경북 봉화군 역시 봉화읍에 군청이 있다. 그런데 문경은 문경읍이 따로 있고 시청은 다른 지역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전북 정읍시는 과거 정읍면이였다가 읍으로 승격되며 '읍'자가 두번 겹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주읍으로 바뀐적이 있다. 이 정주읍운 다시 시가 되면서 정주시가 되었다가 1995년 원래의 이름인 정읍시로 돌아온 적이 있다. 그런데 문경은 이것과는 또 다른 경우인 것이다.

 

분명 과거 문경군청은 문경읍에 있었다. 그러다 1949년 지금의 점촌(호서남면)의 자리로 군청을 옮겼다. 1956년 점촌(호서남면)이 읍으로 승격, 점촌읍이 되며 세력이 점점 확장되다가 1986년 급기가 점촌시가 되며 아예 문경에서 떨어져나가버린 것이다. 당시 문경은 아직 군이었고 점촌은 시가 되었으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버린 셈이다. 하지만 배꼽이 배를 잡아먹진 못했고 1995년 점촌시와 문경군이 통합, 지금의 문경시가 되었다. 그 덕분에 문경읍보다 점촌지역이 훨씬 더 큰 일반적이지 않은 구조가 되었고, 문경시청소재지와 문경읍이 나뉘어진 형태가 된 것이다. 예천에서 출발한 우리는 점촌지역 외곽을 돌아 문경읍으로 올라갔다. 처음 위의 사실을 몰랐던 나는 혼란함을 느끼며 문경새재로 진입했다.

 

 

문경새재는 몇년전 봄에 형제들끼리 온 적이 있어 오늘은 두번째 방문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큰 변화가 있었다. 새재주차장으로 진입하기 바로 전에 카트를 탈 수 있는 시설이 들어선 것이다. 딸린 주차장도 광활해서 입이 벌어졌다. 사실 문경은 래프팅부터 패러글라이딩, 철로자전거, 사격장, 사계절썰매 등 수 많은 레저스포츠를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차를 주차하고 문경새재로 들어갔다. 얼핏 들어서는 뜻을 짐작하기 힘든 새재는 그 유래가 다양하게 추측된다. 먼저 한자어로 새재를 조령(鳥嶺)이라고 하여, 새도 날아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이다. 또한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라는 뜻도 있으며, 하늘재와 이우리재 사이의 재라 하여 새재(사이재)라 불린다는 이야기, 새로 만든 고개라 하여 새(新)재라는 도 있다.

 

물론 이 중 한가지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의미가 함께 작용해 새재라 불린다고 보는것이 좋겠지만, 공식홈페이지에서도 문경새재(聞慶鳥嶺)라 표기를 한 것으로 보아 새도 날아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에 무게를 좀 더 두어도 될 것 같다.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이 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조선시대의 가장 큰 길- 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였다. 일찍이 조선중기의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조선인재의 반은 영남에서 나고, 영남인재의 반은 선산에서 난다’고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영남인재들이 과거를 보기위해 한양으로 갈 때는 반드시 이 문경새재를 넘어야 했다. 문경새재길을 사람들이 흔히 옛 과거길이라 부르는 이유도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