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의 이끼길은 우연히 검색 통해 알게되었다. 하지만 단양관광지도에 표시된 것은 너무 대략적인 것이었고, 네비나 인터넷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아 찾아가는데 몇 번을 헤매었다. 그리고 인생의 방황이 대개 그렇듯 처음 갔던 길이 맞는 길이었다.
이끼길로 가는 길에 진주터널을 지나게 된다. 그런데 이 터널이 조금 남다른 것이 국내 몇 안되는 신호등 터널인 것이다. 예전에 철로였던 터널에 포장을 해 자동차길로 이용하는 곳으로 차량 두대가 지나갈 수 없어 터널 양쪽에 신호등이 달려 있다. 양방향 일반통행인 셈이다.
알고 간 것이었지만 적잖이 당황했다.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바로 감이 오질 않았던 것이다. 현수막에 큰 글씨로 검지선을 밟고 기다리라고 적혀는 있지만 무엇이 검지선인지는 몰랐다. 다행이 천천히 앞으로 가다 보니 빨간불이 녹색불로 바뀌었다. 옆에 달린 작은 표지판을 보니 꿀벌방지턱 앞이 검지선인것 같았다.
이끼길은 낙석을 방지하기위해 양 옆으로 콘크리트 벽이 설치된 도로였다. 도로의 지대가 주변부 보다 낮은데다, 콘크리트 벽 뒤로 자라는 나무가 매우 울창한 탓에 이 길은 그늘져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이끼가 콘크리트벽 위로 자라는듯 했다.
입구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이 이끼길 구간을 왕복했다. 그늘이 확실한 곳의 이끼는 진한 녹색에 생기가 넘쳤고, 가지사이로 햇빛이 들어오거나 간헐적으로 비치는 곳은 말라죽거나 색이 변한 곳도 있었다.
이끼길 입구에는 표지가 하나 세워져 있었다. 해당 지역기관인 적성면에서 세운 것이었는데 자연이 만든 걸작품인 이끼터널을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도록 훼손하지 말자는 문구였다. 하지만 이끼벽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넘치는 예술혼의 표현장이 되고 있었다. 우리나라 어느지역을 가나 그렇듯 내용도 그닥 개성이 없는 것이어서, 몇주년 기념 커플의 '우리사랑 영원히'류나 동갑친구들의 '우리우정 영원히'류가 주를 이루었고 그 뒤로 '내가 짱'류가 뒤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딱 하나 개성있는 낙서가 있었으니 소년과 소녀의 그림이었다. 누가 이곳까지 와서 그림을 그렸는지 그 심리를 유추해 볼 순 없다. 내용 설명도 없었고 그렇다고 낙서한 이의 이름도 없기 때문이었다. 분명 매우 간단한 그림이었지만 이 그림이 마음에 든 이유는 두 소년소녀가 서로 마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별 생각없이 그렸다면 옆에 그렸을텐데 이렇게 남녀가 마주보는 형상이 되도록 양쪽 벽에 그리다니. 낙서계에서 있어서 꽤나 획기적이기까지 했다.
대체 누가 이 그림을 그렸는지 성별, 나이, 목적 등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기회가 닿아 그림의 주인공이 이 글을 읽는다면, 그 혹은 그녀에게 말하고 싶다. 낙서는 연습장에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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