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행/전국일주 캠핑

[전국일주 5일차] ① 단양8경 중 2경

by 막둥씨 2012. 8. 6.

 

아침에 눈을 뜨니 안개가 자욱했고 이슬이 많이 내려 있었다. 여름 아침 안개를 만나면 그 날 하루는 날씨가 좋다는 말이 있다. 하늘은 흐린 것 같았지만 내심 맑은 날을 기대했다. 아침은 3분요리로 간단하게 해 먹었다. 카레와 짜장을 사 놓았는데 둘 다 카레를 더 좋아했다. 여기에 고추참치를 하나 뜯어 먹는것이 우리의 정형화된 메뉴인데 약 3000원 어치의 식사인 셈이었다. 이렇게만 먹으면 경비가 극도로 절감되겠지만 하루 세끼 다 이렇게 먹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점심은 대부분 사먹을 수 밖에 없을듯 했다.

 

 

짐을 정리하고 길을 나섰다. 단양으로 가기로 하긴 했는데 대체 네비에 어디를 입력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단양 하면 단양8경이 유명한데 검색해 보니 대부분 무슨 봉 내지는 무슨 암이어서, 잘못 설정하고 갔다가는 차가 산으로 갈 것 같았다. 또 유람선을 타고 관람해야 한다는 정보도 많아 초행길인 우리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다행이 그 중 도담삼봉은 무리가 없어 보였고 오늘의 첫 목적지가 되었다.

 

 

영월 동쪽에서 흐르는 동강과 영월 서쪽에서 흐르는 평창강은 영월에서 만나 남한강을 이룬다. 영월에서 단양으로 향하는 길은 이 남한강을 오른편에 끼고 달리는 59번 국도길이었다. 이틀전 내린 비로 꽤 많은 양의 흙탕물이 강을 메우고 있었다. 길을 달리다 보니 아침에 만났던 안개와 흐린 하늘은 온데간데 없고 눈부신 햇빛이 가로수사이로 부서져내렸다.

 

단양군 읍내는 큰 물돌이구조 안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한강을 오른쪽에 끼고 달리던 우리는 이 물돌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큰 다리인 고수교를 하나 건너야만 했다. 다리를 건너기 전 좌회전하면 고수리와 고수동굴이 있기 때문에 고수교라 이름붙여진 듯 했다. 다리를 건너기 전 관광안내소가 있어 지도를 재차 확인했다.

 

 

도담삼봉은 꽤 번화한 관광지였다. 주차료를 내고 진입을 하면 큰 주차장이 나왔고 왼편으로는 각종식당과 기념품가게 그리고 오른편으로를 도담삼봉이 보였다. 그냥 차만 세워놓고 보면 될 줄 알았는데 주차료가 있어 조금은 당황했지만 다행이 경차라 비싸지는 않았다.

 

단양팔경 중 제1경인 도담삼봉은 강 속에 박힌 세 개의 봉우리였다. 일몰이 유명한 모양인데 아침에 방문했으니 최고의 순간은 아니었다. 그 뿐 아니라 이틀전 내린 큰 비로 흙탕물까지 흐르고 있었다. 일찍이 조선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의 유년시절을 함께해 준 훌륭한 벗이자 퇴계 이황 선생의 시심(詩心)을 흔들어 놓은 명승지라고 하는데 내게는 그저 바위 세 개로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유람선선착장에서는 어찌나 뽕짝을 크게 틀어 놓았던지. 넓은 주차장과 식당에 둘러쌓여 있으니 내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있는지 아니면 단양8경 중 하나에 있는지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렇게 내 기억속의 도담삼봉은 그리 좋은 것이 못되지만 단양군의 설명자료를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었다. 원래 도담삼봉은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당시 정선군에서는 단양까지 흘러들어온 삼봉에 대한 세금을 부당하게 요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어린 소년이었던 정도전이 기지를 발휘해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라 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어 아무 소용이 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니 도로 가져가시오.”라고 주장하여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훗날 정도전은 호를 삼봉이라고 지을 정도로 도담삼봉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고 한다.

 

 

어쨋든 도담삼봉은 이야기만이 매력적일 뿐 실제로는 실망이었는데, 이런 불편한 나의 마음을 녹여준 것이 석문이었다. 나는 이곳에 도담삼봉만 있는 줄 알았는데 다행이 조사를 담당한 푸딩은 석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무척이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도담삼봉 전망대가 나오고 다시 산길을 조금 더 걸어들어가면 석문이 나온다. 설명에 따르면 석문은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 낸 자연유산으로 석회동굴이 붕괴되고 남은 동굴 천장의 일부가 마치 구름다리처럼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에 서서 생성과정을 상상하며 바라보니 더욱 신비감을 더했다. 또한 구름다리 모양의 돌기둥 중 동양 최대 규모라고 하니 새삼 자연이 내린 선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석문까지 보고 나니 확실히 우리가 시간을 잘못 맞춰 온 것 같았다. 흙탕물이 아닌 푸르고 맑은 물이 흐를때나 아름다운 노을이 저 멀리 서녘에서 불타고 있을때면 이 두 경관은 더욱 아름다울 것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으니 유람선선착장의 스피커를 부셔버리는 것이 그것이다. 정도전 선생도 지금같은 상황이라면 혀를 끌끌차며 고개저을것이 분명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