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오르는 길은 험난했다. 오대산 사고는 월정사에서 4km 정도 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월정사를 지나자 길이 비포장으로 바뀐데다가 사고로 오르기 위해선 다시 좁은 산길을 좌해전 해 올라야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초행길이었던 나는 입구에 서서 차를 타고 가야할지 아니면 걸어가야할지 잠시 고민했다. 도무지 경차가 올라갈 만한 길은 아닌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울퉁불퉁 비포장 산길인것은 둘째치더라도 맞은편에서 차가 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걱정이었다. 회차지점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또한.
다행이 회차할 공간도 있었고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마주치지도 않았다. 어쩌면 괜한 걱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월정사와 전나무 숲길만을 볼 뿐 이곳 사고까지는 오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 한참을 머무르는 동안 아무도 찾지 않아 조용했다.
오대산사고는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 족보인 <선원보략>을 보관하기 위해 지었던 조선 후기의 5사고 중 하나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그 전에 있던 서울(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의 4사고 가운데 전주사고만 남고 모두 불타버렸다. 그 후 선조 39년(1606)에 다시 춘추관, 태백산, 묘향산, 강화 마니산, 오대산에 사고를 짓고 보관하였다. 그러나 인조 때 이괄의 난(1624)과 병자호란(1636)으로 춘추관본이 불타 없어졌고, 그후 정족산,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에 보관하게 하였다.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은 서울대학교에 보관되어 있고, 적상산본은 한국전쟁 중 없어졌다. 오대산본은 조선 말기까지 보존되던 사고였으나 1913년 일제가 오대산사고 있던 실록을 일본 도쿄대학으로 가져갔으며,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거의 다 타버렸다. 남은 잔본은 약간만 서울대학교로 옮겨져 현재 규장각에 보관되고 있다.
현재 이 오대산사고본의 보관처에 대해 말이 많다. 얼마 전 문화재청은 이 오대산사고본을 고궁박물관에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서울대학교 규장각측과 평창군 및 월정사측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서울대학교측은 연구에 차질을 준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편 국비와 도비 등 120억원을 들여 올해초부터 전시관설계를 시작한 월정사측은, 원래의 자리인 오대산사고로 돌아오는 것이 타당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귀추가 주목된다.
오대산사고가 있던 곳은 원래 물․불․바람이 침입하지 못한다는 상서로운 곳이었다고 한다. 사고를 지을 당시에는 실록각․선원각․별관, 그리고 사고를 지키던 수호 사찰로 영감사가 있었으며, 참봉(參奉; 종9품) 2명과 군인 60명․승려 20명이 사고를 관리하고 지켰다. 6․25 전쟁으로 모두 불에 탔으나 1992년에 사각과 선원 보각으로 이루어진 사고의 건물을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오대산사고는 의외로 안으로 들어가볼 수 있게 되어 있다.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계단이 무언가 너무 친숙한 현대식이라 느낌이 낯설기까지 했다. 2층은 창문만 달려 있을 뿐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다. 옛날에는 이곳에 실록들을 보관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책장하나 없이 텅 빈 허무한 공간일 뿐이었다.
흐렸던 날씨가 월정사 전나무숲길에서 개기 시작하더니 이곳에 왔을 무렵에는 절정에 달했다. 볕이 너무 뜨거워 그늘이 아니면 힘들정도로 눈부신 날씨였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사실 어찌가 기뻤던지 푸딩이랑 부둥켜안고 좋아할 정도였다. 3일만에 만난 태양. 우리는 사고앞 공터에서 젖은 방수포와 쌀 그리고 빨래등을 말렸다. 차 외부가 순식간에 열을 받아 빨래를 말리기에 최고였다. 빨래가 말라감과 동시에 이틀내내 비가와서 눅눅한 내 마음도 다시 상쾌함으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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