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계속 내린 탓에 아우라지에서 고스란히 하루를 더 보내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루종일 텐트 안에서만 시간을 보낼 순 없어 마트도 들러볼 겸 아우라지가 있는 여량면 여량리를 산책했다.
우리가 묵고 있는 공원을 빠져나가려면 먼저 철길을 건너야 했다. 그런데 이 철길 건널목은 좀 색다르다. 관리자가 직접 나와 조작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기차가 지나가지 않는다는 점이 그것이다. 동네로 나가려는데 때마침 빨간불이 들어오며 바리케이트가 내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기차대신 지나간 것은 바로 긴 레일바이크(철로자전거) 행렬이었다. 요즘은 정선을 비롯해 삼척, 문경등 많은 지자체들이 이 철로자전거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고 있다. 대부분 과거엔 석탄을 나르를 주요한 이동로였겠지만 이제는 폐광으로 인해 더 이상 기차가 다닐 일이 없어진 철로를 이용한 것이다.
'막장'이란 말이 있다. 탄광 갱도의 가장 깊숙한 안쪽을 뜻하는 말로, 더 이상 더 갈 곳이 없는 막다른 곳이다. 하지만 막장에는 본래의 뜻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이는 속된 의미의 또 다른 뜻이 있다. 바로 인생을 갈 때까지 간 사람 그리고 그들의 인생을 막장이라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과거 어렵던 시절 몸뚱이 하나에만 의지, 이곳 탄광촌으로 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는 증거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사연을 하나씩 품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한 시대였다.
그런데 탄광의 전성기가 오기 전, 이곳 정선에서는 또 하나의 전성기가 있었다. 바로 목재의 운반이활발하던 시기였다. 아우라지는 조선시대 남한강 1천리 물길을 따라 목재를 서울(한양)로 운반하던 중요한 뗏목 터였다. 특히 1865년 대원군의 경복궁 중수때, 필요한 목재를 전달하기 위해 수많은 뗏목꾼들이 아름드리 적송으로 뗏목을 엮어 서울로 향했다. 이때 서울까지 무사히 목재를 배달하면 큰 돈을 만질수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떼돈을 벌다'고 할 때의 '떼돈'의 어원이라는 설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강원도의 골짜기에서 저 멀리 서울인 한양가지 오간것은 목재나 '떼돈'만이 아니었다. 바로 사람의 입을 통해 소리(노래)도 함께 퍼지게 되었으며, 그렇게 정선아리랑(아라리)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뗏목을 끌고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네도, 한양으로 목재를 나른 뗏목군도 소리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리랑을 '소리'라고 부르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아리랑은 삶과 일상 그 자체였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아우라지는 아리랑의 본고장이 되었다.
비가 온 탓인지 조용했다. 상가가 있는 큰 도로로 나가니, 면소재지라 농협이 있었고 농협 하나로 마트가 있었다. 겨우 3일차에 이것저것 먹고싶은것이 많이도 생겨 났지만 냉장고가 없어 모두 보관할 수 없는 것들이거나 한 번에 먹기에는 양이 많았다. 결국 우리는 팽이버섯 3봉지를 샀다. 그런데 마트를 나가려고 보니 입구에 세워둔 우리의 장우산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맞은편에 우리것보다 조금 더 좋아보이는 장우산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 바꿔 들고간 것을 직감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저 우산을 가져가리라 생각했다. 조금 낡힌 했지만 더 좋은 우산이라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 생각했다(그것을 떠나 비가 오는데 우산없이 나갈수는 없었다). 하지만 잠시뒤 주인은 나타났고 우리의 우산을 제자리로 돌려 주었다.
텐트로 돌아와 팽이버섯 된장찌개를 해 먹었다. 된장맛이 이상한지 다시다를 많이 넣었는지 정체모를 맛이 났다. 하지만 반찬은 시장이었다. 아우라지를 보니 비가 오는데도 동네 어르신들이 우산을 들고 산책을 나오셨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하루종일 지켜보니 정말이지 자주 나와 아우라지를 산책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보통 시골동네는 비가 오면 아무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것을 알기에 더욱 신기했다. 마치 그들에게 아우라지는 외지인이 바라보는 그 이상의 무엇인것 같았다. (어쩌면 어머니의 포근함과 같은 것이 아닐까?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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