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ius Schorzman
지구상에서 교역량이 가장 많은 품목이 무엇일까? 맞추기 쉬운 편인 질문의 답은 바로 석유다. 산업, 운송, 난방 등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석유의 양을 생각해보면 그다지 신기한 일은 아니다. 놀라운 건 그다음으로 교역이 많은 품목이 커피라는 사실이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아름답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프랑스의 외교관이자 작가였던 탈레랑이 일찍이 「커피 예찬」에서 천국과 지옥을 망라해 매혹적인 커피를 표현했듯, 그 특유의 맛과 향은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실제 커피 소비도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최대 소비국가인 미국의 경우 한 해 13억3428만 킬로그램의 커피를 소비한다. 성인 1인당 한해 557잔을 마신 셈이다. 독일도 5억2980만 킬로그램으로 커피 다소비 국가였고, 가까운 일본의 경우도 4억2786만 킬로그램 정도를 한 해에 소비했다. 우리나라의 1년 커피 소비량은 1억 킬로그램 정도로 앞선 나라들보다 절대량은 적지만, 성인 1인당 한 해 평균 298잔이나 마시고 있다. 일주일에 하루만 빼고 매일 커피를 마셨다는 이야기다.
이제 우리 삶에 일상으로 자리 잡은 커피. 그런데 우리는 이 커피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으며 또 생각할까? 하루쯤은 커피를 마시며 오롯이 커피 자체를 떠올려 보자.
비윤리적인 커피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케냐, 자메이카, 탄자니아, 브라질……. 이 나라들의 이름은 지리 시간이나 세계사 시간이 아니더라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딱히 커피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찾을 수 있는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바로 커피 생산국이라는 사실이다. 앞서 커피가 석유에 이어 세계적으로 교역량이 두 번째로 많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소비량도 많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석유와 마찬가지로 특정 지역에서만 생산되거나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커피나무는 적도를 기준으로 위도 23.5도 사이, 연 강수량은 1500~2000밀리미터 수준이며 서리가 내리지 않는 해발 1000~3000미터의 고산지대에서 잘 자란다. 꽤 까다로운 조건으로, 이렇게 적도를 기준으로 커피를 생산하고 생산할 수 있는 지역을 표시하면 지도에서 마치 띠처럼 이어지는데 사람들은 이를 커피 벨트(Coffee Belt)라고 부른다. 이 벨트에 있는 커피 생산국들은 대부분 개발도상국이며, 2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커피나무를 키워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커피를 마시며 느끼는 행복에는 이 커피 재배 종사자들에 대한 착취가 숨어있다는 점이다. 요즘 커피전문점에서 판매하는 커피 한잔 가격은 아메리카노 기준 4000원 내외다. 이 중 원두 가격은 불과 100~300원 정도이며 이마저도 현지 가격은 20원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리가 4000원짜리 커피를 마셔도 커피를 생산한 농부에게는 고작 20원 정도밖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커피의 최종 소비자가격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나 임대료 등을 감안해도 결국 배를 불리는 건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들이다.
이렇게 현지 생산자의 커피콩 판매 가격이 워낙 싸다 보니 커피 재배농가에서는 온 식구가 매달려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다. 결국, 생계를 위해서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커피 재배 노동을 해야 한다. 때로는 이렇게까지 해도 생계가 어려워 집안의 가장이 멀리 이국땅으로 돈벌이를 나가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할 때도 있다. 우리가 무심코 마시는 커피가 먼 이국땅의 아동 노동력을 착취하고 그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공정무역 커피는 윤리적인가?
그렇다고 커피를 소비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생산자의 생계수단 자체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비윤리적 소비를 고민하던 중 탄생한 것이 바로 공정무역 상품이며 공정무역 커피다. 국내에서도 공정무역이란 용어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또 공정무역 커피의 판매가 시작된 지도 어언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은 소비가 미비한 수준으로 보인다.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업체들도 시민들의 요구에 못 이겨 공정무역 커피콩을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어디까지나 생색내기용 소비일 뿐이다.
한편 공정무역 커피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먼저 공정무역 커피의 가격 책정이 생산자와 생산량 자체를 늘리는데 일조하고 이는 커피 가격 폭락으로 이어져 결국 커피 농가를 어렵게 한다는 시각이다. 게다가 공정무역 커피콩을 재배하는 사람들은 상품의 특성상 유기농 재배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소모되는 추가 인건비와 노동력 등을 반영하면 공정무역을 통한 판매가조차 충분한 건 아니어서 여전히 생산자의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넘어야 할 산이며 풀어야 할 과제일 뿐이다. 커피의 지나친 과잉공급이 계속된다면 생산자를 회유하여 다른 작물을 재배하게끔 하는 것 또한 공정무역 정신의 큰 테두리에 포함될 것이다. 따라서 공정무역 커피가 완벽히 윤리적인 소비라고까지 말할 순 없지만, 덜 비윤리적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공정무역 커피를 수확중인 엘살바도르 노동자들 ⓒAdam C. Baker
기후변화로 커피가 사라진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커피콩은 크게 아라비카(Arabica)종과 로부스타(Robusta)종으로 나눌 수 있다. 아라비카종은 세계 원두의 약 70퍼센트를 차지하는데, 고지대에서 잘 자라며 향미가 풍부하고 카페인 함유량이 적은 것이 장점이지만 병충해에는 약하다. 반면 세계 원두의 약 30퍼센트를 차지하는 로부스타는 비교적 저지대에서 재배된다. 아라비카에 비해 키우기 쉽지만 맛과 향은 덜하고 써 인스턴트 커피 등에 들어가는 원두로 주로 쓰인다.
그런데 앞으로 우리가 평소 즐기던 커피를 마실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커피 멸종론’이 보고되고 있다. 기후변화 탓이다. 커피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라비카의 경우 온도와 습도, 강우량 등에 매우 민감한데, 영국 큐(Kew) 왕립식물원 아론 데이비스 연구팀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시나리오를 적용하면 앞으로 70년 뒤인 2080년 즈음에는 아라비카 생산지의 65퍼센트가 커피가 자랄 수 없는 땅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연구팀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다면 현재 아라비카 커피나무의 99.7퍼센트가 사라진다고 보고했다.
기후변화에 강한 종으로 개량하는 게 당장의 대비책일 듯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현재 재배되는 아라비카종들이 소수의 품종에서 갈라져 나와 대량 재배되고 있어 유전적으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커피의 미래가 걱정되는 이유다.
진정 커피 애호가라면
평소 커피를 즐기며, 식후 커피 한 잔이 필수 코스이신가? 그렇다면 오늘은 공정무역 커피를 선택해 맛있는 커피콩을 제공한 현지 생산자들을 도와주는 건 어떨까? 그리고 내친김에 기후변화법 제정을 위한 빅애스크(Big Ask) 서명에 참여해 멸종 위기로부터 커피를 구해보자. 이 모든 것이 커피 한잔을 통해, 커피 한잔 마시는 시간에 가능하다. 오늘부터는 조금 더 특별한 커피를 만끽해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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