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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잡설

감사 대신 발견으로

by 막둥씨 2025. 9. 16.


요즘 감사 일기를 쓰는 사람들이 많다. 거창한 건 아니고, 하루에 세 가지씩 삶에서 감사한 것들을 찾아 기록하는 방식이다. 매일 해야 하다 보니, 죽음의 위기를 넘기거나 로또에 당첨되는 것처럼 엄청난 사건일 수는 없다. 그런 일은 무신론자라도 신께 감사하게 될 테지만, 매일 세 가지나 찾아야 하니 아주 사소하고 때로는 꽤 억지스러운 것들이 될 수밖에 없다.

무언가를 비교하고 발전시키려면 측정하는 게 용이하다. 하지만 하루 세 가지 감사함을 찾는 이 행위가, 각자에게 일어나는 행운을 측정하고 그 절대량을 늘리기 위한 건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이것은 그저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무심코 지나쳐왔던 내 삶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을 발견하고 새롭게 평가하는 것이다. 그 요소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나의 존재를 지탱해주는 연결 고리를 깨닫자는 뜻이다.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가 있어 모든 생명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도 포함된다.

무엇에 감사해야 하는지는 알겠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대체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가? 감사함은 대상 없이 홀로 존재할 수 있을까? 유신론자들에게는 의문조차 아니겠지만, 무신론자들에게는 상황이 다르다. 이 지점까지 생각하는 무신론자들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우주에서 생명체가 탄생하고 존재할 확률이 하늘에서 바늘을 떨어뜨려 모래사장에 꽂힌 바늘과 부딪힐 확률만큼 낮을지라도, 그건 대단한 일이지 누군가에게 감사할 일은 아닌 것이다.

감사 일기를 써보자고 시작하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이르렀지만, 부정할 수 없는 생각이어서 나는 감사 일기 대신 발견의 일기를 써보기로 한다. 우리는 혼자 존재할 수 없다. 대부분 인식조차 못 하는 상황에서 주변의 영향과 도움을 받는다. 이들을 발견하는 일은 꽤 즐거울 것이고,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게 분명하다. 부모를 깊이 알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나 자신을 깨닫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매일 하기는 어렵겠지. 삶의 중력이 나를 계속 짓누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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