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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잡설

인생에 답은 있다

by 막둥씨 2025. 4. 13.

어느 예능에 그룹 에픽하이의 타블로가 나온 적 있다. 대학교 시절 연애 이야기를 했는데, 사귀던 여차친구가 양다리임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관계를 이어갈 의지가 있던 타블로는 여자친구를 불러 이야기했다. 양다리임을 알고 있노라고. 지금이라도 기회를 줄테니 정리하는 게 어떻겠냐고. 여자친구는 알았다는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타블로는 관계를 정리당했다.

똑같진 않지만 나도 유사한 경험이 있다. 20대 초반 나와 교제했던 그녀는 오래 사귀었다가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자꾸 연락한다며 그를 피하고자 했다. 나는 여자친구의 고충에 공감하며, 그 남자도 미련으로 참 힘들겠구나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와의 매우 짧은 연애가 끝났고, 그녀는 다시 전 남자친구와 결합했고 끝내 결혼까지 했다. 돌이켜보면 그들의 연애사에 끼어든 이방인이 나였던 셈이다. 어쩌면 내가 바람의 대상이었는지도.

갑자기 그녀를 소환한 이유는 그녀와 나 사이 나누었던 대화중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어서다. 기억에 우리의 공통된 대답은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으니 산다.” 내지는 “죽을 순 없으니 산다.”였다. 우리는 삶의 목적 없이 부유하던 20대 초반 예대생들이었고, 인생에 답이 있을거라 상상조차 하지 않던 허무주의에 빠진 감성의 주체들이었다. 고백하건데 군대 휴가 때 간 나이트에서 부킹으로 합석한 여성에게 삶이 허무하지 않느냐고 말한 적도 있다. 후기 중2병의 발병이었던 것 같다. 웨이터는 돈을 벌었고, 부킹은 실패했다.

며칠 전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어느 단체에서 청년 모임을 하는데 참여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무한 경쟁의 고스펙 사회, 기후위기 등 청년이 당면한 문제들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조금은 관심이 생겼는데, 무한경쟁의 고스펙 사회라는 주제는 뭔가 대학생이 더 집중할만한 주제같았다. 주최측에 물였다. 청년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대답이 돌아왔다. “만 39세 이하입니다.” 내 나이 올해로 마흔, 이제는 청년이 아님을 며칠 전에야 알게됐다.

혹하지 아니하는 마흔의 나는 후기 중2병의 나와는 다르다. 태어난 김에 사는 건 맞지만 죽을 순 없으니 살진 않는다. 인생에 답은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선각자들이나 멘토들이 인생에 답은 없다고 말하며 방송에서도 동일하게 떠들어대는데 무슨 소린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잠시 바람을 폈는지도 모를 그녀도 공감 못 할지도.

답을 이야기 한다는 건 그에 상응하는 문제(question)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누가 그 문제를 내는 것일까? 많은 이들에게 출제자는 부모나 엄마 친구 아들딸, 최근엔 SNS에서만 아는 셀럽들인 것 같다. 그런데 출제를 내가 하면 안 되는 건가? 소설가 이외수는 아들이 링 위의 권투 선수들 처럼 무한 경쟁을 해야하는 사회 생활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자 이야기했다. “그럼 경쟁하지 말고 심판 봐!”

인생에 답은 있다. 인생에 답이 없다는 건 평생 부초처럼 살라는 의미가 되니 그래서라도 인생에 답은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인생의 답은 명확하고 확고하여 각자의 삶에 주춧돌과 기둥이 된다. 그럼 답이 무어냐고? 질문이 틀렸다. 나는 답보다 문제 자체에 관심 있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에게 문제인 게 다른 이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 많은 상황들이 있다. 같은 답안지지만, 문제(question)를 어떻게 내냐에 따라 정답일 수도 오답일 수도 있다. 사실 세상에 많은 것들(사실은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정해져있다. 거의 상수값으로 정해져있단 뜻이다. 그래서 답을 바꾸는 건 대부분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내가 출제자가 된다면 그것들이 가능해진다.

흔들리는 것은 바람도, 나무도 아닌 그 피상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다. 심지어 그 마음은 대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일체유심조. 출제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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