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신문 칼럼 기고
일전에 있었던 일이다. 지인들과 저녁을 먹는데 커다란 창밖으로 눈길을 끄는 풍경이 벌어졌다. 한 커플이 맞은편 건물 앞에서 몇 분 동안 부둥켜안고 꼼지락 거리고 있는 것이다. 보아하니 둘 다 취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하필 그 맞은편 건물이 모텔이었다. 수많은 건물 구석 중 하필 저 건물 앞에서라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싶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말했다. 그리고 몇 분 뒤 갑자기 이 두 남녀가 모텔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오오!"하고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금세 여자가 뛰다시피 밖으로 나왔고 남자도 뒤따라 나왔다. 다시 건물 앞. 남자는 계속 뭐라 여자에게 말했지만 결국 이 둘은 저 멀리 골목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나의 일행은 이 모든 광경을 조금이라도 놓칠 새라 집중해서 보았다. 슬픈(?) 일이었지만, 3자의 입장에서 보니 꽤나 재미있는 풍경이었던 것이다. 사실 말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들의 상황을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상상하고 많은 커플이 경험했듯 그런 일이 것이다.
그렇게 그날 밤이 지나가고 다음날 아침. 잠에 깨어 웹서핑을 하다가 때 마침 재미있는 조사결과를 발견했다. 출처가 불분명해 진정성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묘하게 수긍이 가는 자료였다. 이름하여 '첫경험을 하게 되는 요인'.
남자의 경우는 술김에(34.2%), 사랑해서 (27.5%), 그냥 하고 싶어서(18%), 생일 같은 특별한 분위기(10%), 여행 (5.3%) 등의 순이었다.
여자의 경우는 상대방의 요구와 설득(22%), 술김에(18%), 특별한 날 분위기(14%), 강압에 의해(10%), 그냥 하고 싶어서 (10%), 사랑해서(8%) 등의 순이었다. 특히 '상대방의 요구와 설득', '강압에 의해'를 합치면 무려 32%나 되었다. 많은 여성들이 성관계에 있어서 주체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마광수 교수는 연세춘추 기고문에서 진정한 '사랑'이란 성적 합일감(合一感)을 필연코 전제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랑해서 섹스하게 되는 게 아니라 섹스해서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앞의 에피소드에서처럼 아직 설득하는 사랑 혹은 설득당하는 사랑인 것 같다.
이제 변해야 할 때다. 여성들은 과감하게 성의 주체가 되어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그들의 사랑을 이루어야 하겠다. 그리고 이는 남성들이 ‘술김에(34.2%)’라는 결과에서처럼 무책임한 모습을 버리고 여성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설득하는 그리고 설득당하는 사랑에서 벗어나 함께하는 사랑을 기대한다.
* 이 기고문은 예전에 누리집에 써놨던 글을 성격에 맞게 조금 수정한 것이다.
사진 / 종로구 이화동의 명물 벽화
'산문 > 잡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앎과 실천 (0) | 2011.12.09 |
---|---|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존재하는가 (0) | 2011.12.02 |
2009년을 떠올리며 (5) | 2011.10.21 |
배탈이 난 아침 일찍 깨어 쓰는 잡설 (2) | 2011.07.17 |
젊음이 가야할 길 (20대에 경험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45가지) (1) | 2011.07.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