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만큼 종교의 역사도 오래됐다. 지금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우리가 흔히 아는 몇몇 종교들이 존재하기 전부터 인류는 미지의 자연현상 등에 경외를 느끼며 이를 신성시 해 왔다. 토테미즘이 발전하고 다른 사회의 것들과 결합해 현재 우리가 아는 종교의 모태가 생겨났을 것이다. 이후 종교는 때로 정치권력과 결탁하고 또는 정치권력 그 자체가 되어 생명을 처단하고 타 종교를 억압하기도 하며 사회에 악형향을 끼치기도 했고, 반면 인류의 문명을 전파하고 사람이 좀 더 사람답게 사는 데 기여했으며 인간의 불완전한 심리를 보완하는 역할도 해 왔다. 그래서 전체 인류 역사를 보았을 때 종교의 좋은 점이 더 많았는가 아니면 악영향이 더 컸는가를 평가하라면 쉽사리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어쨋든 분명한 것은 종교도 많은 좋은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종교는 인간에게 희망을 주고, 현대의 기술 중심 사회에서도 인간성과 윤리를 잃지 않도록 하며, 문명이 발달할 수록 불안해져 가는 우리의 정서를 다독여주고, 또 점점 잊고 있는 사랑하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몇몇 급진적이고 배타적인 그래서 각종 테러나 피해를 입히는 종교를 제외하면 현대의 종교는 꽤나 긍적적으로 보인다.
예전에 어떤 이가 길거리 전도를 하며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사람들을 이해한다고 한 적이 있다. 정말 너무너무 좋아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권하려는 순수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유가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느정도 이해가 가기도 한다. 옛말에도 좋은 건 나누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그들에게 종교는 너무나도 좋은, 행복의 기원인 것이다.
그래도 무리수를 둬서는 안 된다. 며칠전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하나 받았다. 특정 개신교에서 준 '하나님을 믿으라'는 전단지였다. 나름 논리적으로 보이려고 한 건지 성경을 정말로 믿을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이상하다. 왜냐하면 전단지의 논리는, 요약하자면 "성경 말씀은 믿을 수 있는 데 왜냐하면 성경에 쓰여있기 때문이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순환논증의 오류'이다. 삐딱하게 바라보기 시작하니 혹세무민의 기만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예전 SBS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길거리 전도사들의 정체를 다룬 적이 있다. 그들은 성경에 쓰여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며 성경의 글귀를 맹신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일부 목사들이 신도들을 상대로 조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더욱 어이없는 사실은 신학교에서는 성경이 절대진리라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세월이 흐르며 후대에 의해 수정되고 추가 보완된 것으로 켤코 맹신할 수 없다는 점을 목사들은 배웠고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 왜 신도들을 속이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에게는 교회는 장사이기 때문이라는 생각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이 전단지를 받고 얼마안가 또다시 같은 개신교 종파에서 전단지를 받았다. 이번에는 세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 이유란다. 어쨋든 사실 이들은 내게 전단지를 주었을 뿐이지 나를 크게 귀찮게 하지도 불쾌하게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웃으면서 전단지를 받았고 그들에게 무어라 할 마음은 없었다. 그럼에도 다만, 그들이 자가당착에서는 빠져나오길 바란다. 믿음은 자유며 논리와는 별개의 영역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상식과 이성과 시대정신이 결여되고 소통없는 믿음은 위험하다.
최근 이스라엘 폭격현장에서 해변에 의자를 놓고 화염을 감상하던 사람들의 모습은 얼마나 섬뜩하던가? 그들의 수십년 갈등의 역사를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상식과 인간으로서의 기본이 사라진 그 모습은 다시말하지만 너무나도 섬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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