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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술자리에서 직장 선배들이 언쟁을 한 적이 있다. 도마에 오른 주제는 다름 아닌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였다. 중재를 위한 나의 갖가지 노력은 전혀 소용이 없었고, 끝내 둘의 입장 차는 좁아지지 않았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도, 그렇다고 같은 동네에 사는 것도 아닌 이들이 얼굴을 붉히면서까지 목소리를 높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두 선배의 아파트 생활
그날 언쟁을 했던 선배 중 ㄱ선배는 아파트 1층에 살고 있다. 그런데 위층 가정에 아이들이 있었다. 주말에 늦잠을 잘라치면 쿵쾅거리는 소리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 키우는 집이니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에 참았지만, 소음은 점점 더 심해졌고 결국 관리실에 연락했다. 그런데 인터폰이 꺼져 있어 위층에 연락이 안 된단다. 어쩔 수 없이 위층을 방문했다. 아이들이 놀라기 때문인지 초인종도 꺼져 있었다. 가까스로 주인을 만나 양해를 구했지만, ㄱ선배는 더욱 화가 났다. 위층은 아이들이 사는 집이 으레 사용하는 그 흔한 충격방지용 매트 하나 깔지 않았던 것이다. 자기 집은 시끄럽다며 인터폰과 초인종도 꺼놓으면서 아래층에 대한 배려는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아파트 12층에 거주하는 ㄴ선배는 집들이 날 아래층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모두가 한 번은 하는 집들이니 그날만은 양해를 구하려 했다. 그런데 아래층은 평소에도 계속 참아왔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금은 아이가 있지만, 당시에는 부부만 사는 집인지라 시끄러울 일도 없었고 또 평소 조심하며 생활했기에 황당했다. 게다가 ㄴ선배도 위층의 소음으로 불편했지만, 평소 아파트라면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하고 그간 참아왔던 터라 아래층의 반응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중재 노력에도 선배들의 언성이 커진 건 각자 아래층과 위층을 대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같은 아파트도 아니며 평소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도 다투는데 하물며 아래위 이웃한 당사자들은 어떻겠는가? 사실 층간소음 문제는 시대가 해결해야 할 주요한 당면 과제다. 전 국민의 65퍼센트가 공동주택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만연한 층간소음 갈등
층간소음의 원인은 다양하다. 주로 아이들이 뛰는 소리, 발걸음 소리, 화장실 물소리, 가구 끄는 소리, 악기 소리, TV나 오디오 소리 등이 있다. 실제 지난 2012년 3월부터 2013년 10월까지 환경부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총 4087건의 민원을 보면, 아이들이 뛰는 소리나 발걸음으로 인한 소음 신고가 2998건으로 73.4퍼센트에 달했다. 그 밖에 망치질 186건(4.6퍼센트), 가구를 끌거나 찍는 행위 93건(2.3퍼센트), 악기 86건(2.1퍼센트)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아이들이 뛰는 소리는 무겁고 충격이 큰 이른바 중량충격음으로 가구를 끄는 소리 등 가볍고 딱딱한 소리인 경량충격음에 비해 잔향이 남아 불쾌감이 더욱 커 층간소음 분쟁의 주요 원인일 수밖에 없다.
이웃사이센터의 민원인은 대부분 위층의 소음에 피해를 받고 있는 아래층 사람으로 총 3254건(79.6퍼센트)이었다. 그러나 아래층으로 인한 위층의 불만도 있었는데, 아래층의 직접적인 소음에 인한 피해는 132건이었지만 아래층의 항의에 의한 피해는 3.6배나 많은 484건이었다. 아무리 층간소음을 조심해도 아래층으로부터 항의가 계속 온다면 위층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위층의 민원 신청도 총 616건(15.1퍼센트)이나 됐다.
그럼에도(아니면 그래서인지) 이런 갈등의 골은 흔히 이웃끼리의 다툼으로 이어진다. 작년 11월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110정부민원안내콜센터가 국민 304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4퍼센트는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과 다툰 경험이 있었으며, 말싸움(44퍼센트), 보복(7퍼센트), 몸싸움(3퍼센트) 순으로 이웃과 마찰을 빚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웃과 다투지는 않았지만, 층간소음 고통으로 이사를 하거나 병원치료를 받은 사람들도 각각 8퍼센트와 2퍼센트로, 꽤 많은 사람들이 물적·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문제가 만연한데도 그간 정확한 규정이나 매뉴얼이 없어 주민들은 끊임없는 갈등에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극단적인 사례도 종종 발생했다. 층간소음 문제로 다투다 방화를 일으킨다거나 난동을 부리는 것은 예사고 급기야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불과 지난달인 5월에도 서울시 도봉구의 한 아파트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인한 말다툼 끝에 살인이 벌어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당사자들은 7년 전부터 층간소음 문제로 다퉈오다 2년 전부터는 갈등을 피해 위층에 살던 주민이 본가에서 나와 옆 동으로 분가까지 했으나, 지난달 제사를 지내기 위해 본가를 방문했다가 다시 다툼이 시작돼 결국 참극으로써 7년 갈등의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7년이나 고통에 시달리는 동안 국가의 시스템은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했다.
있으나마나 한 소음 기준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고 있을까? 미국은 아파트에서 소음을 일으키면 관리사무소에서 3회 이상 경고를 하며 또 어기면 강제 퇴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층간소음을 공공성을 해치는 행위로 간주, 거액의 과태료를 물리기도 하며 구류처벌을 할 수도 있다. 독일은 공공이나 이웃을 괴롭히거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소음 배출을 위법이라 규정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한다. 나아가 타인의 수면을 방해하는 일을 밤에는 금지하며, 소음이 발생하는 가사나 정원일 등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특정해 놓기까지 했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공동주택 주거율이 3.9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공동주택 주거율이 65퍼센트인 우리나라는 그간 층간소음에 대한 형사법 적용이 명확하지 않다가 올해 들어서야 국토교통부와 환경부가 뒤늦게 층간소음 규정을 마련하고 나섰다. 지난 4월 공동주택에서 지켜야 할 생활소음의 최저기준을 담은 ‘공동주택 층간소음 기준에 관한 규칙’을 마련해 입법예고한 것이다. 그러나 소음 기준으로 정한 주간 ‘43㏈(데시벨), 야간 38㏈’(1분간 측정한 소음의 평균)과 ‘주간 57㏈, 야간 52㏈’(최고 소음도)은 지나치게 느슨해 실효가 없다는 지적이다. 층간소음으로 고통받는 대부분의 아파트에서 이 기준을 충족하기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와 환경부가 마련한 이번 기준은 지난 2월 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국제 기준과 국내 층간소음 분쟁 현장의 실측 결과를 바탕으로 정한 기준치인 ‘주간 40㏈, 야간 35㏈’(1분간 측정한 소음의 평균)보다 3㏈씩 완화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2005년 6월 이전 사업승인을 받은 아파트는 5㏈씩 더 완화해 주기로 했다. 소리는 로그 척도로 계산되기에 3㏈이면 체감으로 두 배 정도나 크기 차가 난다. 야간 소음이 30㏈을 넘으면 수면에 방해를 받으며 주간 소음이 35㏈을 넘어서면 대화에 방해를 받을 정도의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고 명시한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실효성 없는 기준인지 알 수 있다.
30년 된 아파트가 더 조용하다?
층간소음 문제는 사실상 건물의 설계와 시공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난 5월 국토교통부는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콘크리트 바닥두께 210밀리미터(벽식기준) 또는 바닥충격음(경량충격음 58㏈, 중량층격음 50㏈) 중 하나를 만족하면 되던 기존의 규정을 동시에 충족하도록 시공 기준을 강화해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파트 뼈대 자체를 콘크리트로 연결하는 벽식 구조에선 층간소음이 윗집이 아닌 다른 집에서도 발생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 2012년 경남 창원시에서는 아래층과 위층 간에 가족 난투극이 벌어져 무려 8명이 한꺼번에 폭행으로 입건되는 사건이 있었다. 6년간 함께 살며 아래층은 위층에서 오는 소음으로 스트레스가 쌓였고, 위층은 아래층의 항의에 슬리퍼를 신고 모든 가족이 까치발로 다니는 등 누가 봐도 더할 나위 없이 조심했다. 그러나 결국 이들의 갈등은 난투극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사건 이후 전문가를 불러 정밀검사를 해보자 두 집은 모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소음의 주범은 위층이 아니라 위위층이었던 것이다. 소음이 벽과 배관을 통해 울리면서 층을 건너뛰어 전달된 탓이었다.
아파트를 짓는 방법은 주로 두 가지로 벽식 구조와 기둥식 구조가 있다. 벽식 구조는 기둥이 없이 벽이 천장을 받치는 구조로 위층의 바닥소음이 벽을 타고 아래로 전달되는 정도가 크지만, 기둥식 구조는 천장에 수평으로 설치한 보와 기둥이 천장을 받치는 구조로 공사비가 상대적으로 비싸나 바닥에서 전달되는 소음이 보와 기둥을 타고 분산되는 효과가 있다. 1990년대 이전까지 건설사들은 기둥식 구조로 아파트를 많이 지었다. 그러나 1990년대 전세난을 타파하기 위해 신도시를 지으면서 짧은 시간에 대량의 아파트를 공급하기 위해 시공법을 공사기간이 비교적 짧고 비용도 적게 드는 벽식 구조 방식으로 바꾸면서 층간소음에는 더 취약해졌다.
작년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상은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09년 이후 준공된 500세대 이상 아파트의 91.9퍼센트(70만1779세대)가 층간소음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벽식 구조이고, 전국 아파트의 30.3퍼센트(23만1634세대)가 바닥 두께 기준(210밀리미터)에 미달하는 상황이라 드러났다. 또한, 강화된 기준은 기존 아파트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층간소음 문제는 당분간 나아질 기미가 없어 보인다. 정부가 실효성 있는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갈등 깊어지면 외부 도움 받아야
입주민들도 서로를 배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술적으로 층간소음을 줄인다 하더라도 공동주택의 특성상 모든 소음을 차단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온라인상에서 귀감이 된 사례가 하나 있다. 아래층 입주자가 작성한 글로, 새로 이사 온 위층의 엄마와 아이가 함께 과일이며 음식을 들고 종종 아래층에 방문해 인사를 하고 양해를 구하더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아이 혼자 내려와 도넛을 건네며 인사를 하더란다. 아이 본인이 일으킨 층간소음에 불편함을 겪을 아래층 이웃을 직접 대면케 해 아이에게는 교육이 되고 아래층 주민에겐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혀준 젊은 엄마의 훌륭한 처세술이었다. 아래층 주민은 이제 먹을 것이 기다려지노라 농담까지 던졌다.
하지만 이미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겪고 있거나 위와 같은 일련의 시도도 소용없는 경우가 있다. 그렇더라도 무작정 위층으로 직접 항의 방문을 하는 것은 금물이다. 서로 감정이 상해 더 큰 다툼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도 층간 소음으로 이웃끼리 다툼이 있을 경우 전화나 문자로 항의할 순 있지만, 상대방 집에 찾아가 항의하는 것은 금지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럴 경우 관리실을 통하거나 환경부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를 이용해 갈등 조정을 신청하길 권한다. 그리고 평소 층간소음 문제는 1층과 맨 위층을 제외하면 모든 입주민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아무리 이웃사촌이 옛말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철천지원수가 되어서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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